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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by anarchopists 2020. 1. 1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12 06:21]에 발행한 글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석헌의
말마디에서 “누구든지”라는 말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함석헌의 열려 있는 종교적 사유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어요. [......] 하나님의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 그의 신앙관에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종교적 신념이 녹아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어도 믿는 줄 모르는 종교/ 의인도 하나 없고 죄인도 하나 없는/ 신자 아닌 사람, 사람 아닌 삶의 종교”라는 시구처럼 종교란 없이 믿는 듯이 믿어야 하고, 아니 믿는 듯 믿어야 그 경계와 구분을 초월하여 신과 합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위적인 구분을 초월하여 그런 신앙에 서 있던 사람들이 마침내 하나님과의 일치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에 대해서 사유하고 그 실천을 삶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에 이미 예수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미 하나님의 모습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단언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삶숨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석헌“행해야 합니다. 생활해야 합니다. 실현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삶답고 사람다우려면 삶이라는 움직씨에 자국이 남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삶은 신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범인(凡人)이 아무도 본 적도 없는 그 발자국을 찾아서 따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발자국을 찾고 자신의 팔자인 양 줄기차게 그 길로 간 사람이 예수라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를 통해서 신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의 삶, 말씀, 죽음, 부활이 내 삶이 된다면 내 마음속에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고, 타자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발자국, 신의 모습의 구체적, 실질적 형식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이에 대해서 함석헌“사랑은 하지 않는 자에게는 언제나 묵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입니다”[괄호는 필자의 첨언]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하나님은 내 속에 숨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내 속에서 ‘숨어 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는 구체적으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몰랐네/ 뭐 모른지도 모른/ 내 가슴에 대드는 계심이 있네/ 몰라서 겪었네/ 어림없이 겪어보니/ 찢어지게 벅찬 힘의 누름이었네/ 벅차서 떨었네/ 하도 야릇해 가만히 만졌네/ 만지다 꼭 쥐어보니/ 따뜻한 사랑의 뛰놂이었네/ 따뜻한 그 사랑에 안겼네/ 꼭 안겼던 꿈 깨어 우러르니/ 영광 그득한 빛의 타오름이었네/ 그득찬 빛에 녹아버렸네/ 텅 비인 빈탕에 맘대로 노니니/ 거룩한 아버지와 하나 됨이었네/ 모르겠네 내 오히려 모를 일이네 벅참인지 그득참인지 겉 빔인지 속 빔인지/ 나 모르는 내 얼 빠져든 계심이네.”

그러므로 참얼이신 존재 안에 나라는 유한한 존재는 언제든 그분의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 초월적 존재의 영역에서 노닒의 삶을 꾸려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 안을 드려다 보면 얼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고 무아 속에서 무(nada)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그 지난한 과정을 “됨”(becoming)이라는 말로 풀이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되어-감일 뿐입니다. 존재(being)은 되어-감(be-coming)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나는 되자는 것이지 되자는 목적과 그것을 위해 하는 힘씀이 없다면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되고 되고 한없이 끝없이 되자는 것이야말로 사람입니다. 돼도 돼도 참으로 될 수 없는 것을 돼보자고 시시각각으로 기를 쓰고 애를 쓰는 것이 삶이란 것입니다”라는 그의 수양적 태도가 그것을 대변해줍니다.

함석헌의 이러한 인생과 신앙의 수양적, 수행적 태도는 그 유명한 “생각했던 것은 하나도 실현해본 것이 없고 나간 것은 한 걸음도 내가 내켜 디디었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날껏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오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참얼에 의해서 되어-감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되어-감은 자신의 얼을 통해서 참얼로 되돌아-감입니다. 그래서 끝임 없이 되고 되고 또 되어서 참얼로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되돌아-감은 하나님의 발치에 앉아 자유로운 사람, 참뜻(진리)의 사람, 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종교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이 모든 사람 안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것 즉 각자의 마음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언어나 행위가 아니라 참얼의 스스로 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에 의하면, “성숙한 사람이란 곧 익숙한 사람이다. 익숙은 익혀야 얻게 된다. 그 익은 지경을 자행자지(自行自止)라 한다. 스스로 가고 스스로 멎는다. [......] 저절로 하게 되어야 정말 제가 하는 것이요, 제가 스스로 해야 정말 한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온갖 인위를 벗어나 스스로, 저절로, 까닭 없이 주어지는 것에 내어-맡겨 참나의 흘러감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이 그토록 강조했던 ‘생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단지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을 없이 하는 생각 그 자체입니다. ‘내가 있다’라는 생각으로 인해서 나라는 망상적 존재가 태어나고 욕심과 욕망이 꿈틀대면서 타자를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람노릇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함석헌“사람노릇의 문제점은 생각함에 있다. 참은 한 점이다. [......] 천만 가지, 생각을 잊음이, 생각하지 않음으로 하는 생각이 참 생각이다. 자유의 신비가 거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내가 만든 생각이란 결국 망상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생각하지 않음이 참 생각’입니다. 이것은 욕망과 욕심의 생각을 하는 자아, “내가 아닌 자아”를 타파하는 참 생각을 가진 궁극적인 참나를 찾는 것과 동일한 근원성을 가집니다.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나 아닌 나를 절대화시키는 것을 제거하고 참 생각을 하는 진정한 참나를 참얼에서 찾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그럴 때 비로소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예수의 모습,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식, 2010.6.12)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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