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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종교

[김영호 제1강] 함석헌과 불교사상

by anarchopists 2020. 1.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13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과 불교사상

1. 머리말
‘함석헌과 불교’, 생소한 주제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종교인으로서 함석헌은 일차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산학교 시절과 그 이전부터 그가 함께 성장한 한국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었다. 그가 조직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고 오랜 동안 비정통적인 무교회주의신앙에 몰입했지만 그것도 역시 기독교의 울타리였다.

그런데 ‘불교’라니 무슨 말인가.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이다. 하나는, 한국인은 4세기 이래 1600 여년이상 불교에 노출되고 불교문화 속에서 성정해왔으므로 개인 함석헌도, 의식하건 안하건 간에, 자기 유전자나 무의식 속에 불교적 세계관과 사유방식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는, 그 자신이 펼친 사상과 종교관은 어떤 한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함석헌은 그가 우연히 (또는 운명적으로) 선택하게 된 기독교 신앙전통의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종교마당에서 불교와 만났다. 스스로도 이 점을 인지했다.

함석헌은 그의 역작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역사의 진행을, 특히 한국인의 고난사의 고비마다, 으레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돌린다. 이때 하나님은 단순히 기독교적인 신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그의 신관과 진리관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것이었다. 함석헌은 한 종교에 대한 신앙을 견지해온 신앙인으로 살았지만 그의 신앙은 전통적이고 서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몸을 담았던 무교회주의신앙과 퀘이커신앙을 통해서 들어난 바와 같이, 자기화하고 토착화한 비정통적인 것이었다. 불교와 만나는 여지가 늘 있었다는 말이다. 함석헌의 의견을 들어보자.

“기독교나 불교나 근본적인 면에서는 같다고 봐요. 어느 종교라도 근본에서 말하면 다를 리가 없다, 똑 같은 지경을 체험했는데 그 사람의 개성이 다르든지, 그 민족의 문화관계 이런 걸 따라서 말이 다르게 발표됐을 뿐이지,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전집 19:144)

문화적으로 한국인은, 불자이건 아니건 간에, 불교와 무관할 수 없다. 싫던 좋던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불교적 세계관과 언어로 다분히 침윤되어 있다. 유형 문화유산의 가장 큰 덩치가 불교와 연관된 것들이다. 일부러 피해가는 종교배타주의자면 몰라도 지식인은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같은 경전이나 선(禪)불교 전적이나 에피소드를 접하거나 어느 정도 알고 있게 마련이다.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고전이요 민족문화의 보고인 삼국유사는 불교 설화와 역사로 엮어져있다. 실제로 함석헌은 그가 ‘인생대학’이라 부른 감옥에서 주요한 불교 경전들을 읽으면서 “그걸 보니 그 얘기가 기독교 이치와 같다”고 느꼈다. (저작집 25:55)

동서양 종교를 대표하는 기독교와 불교의 관계는 서양에서는 이제 배타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서로의 탈바꿈(상호변용)과 보완을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함석헌이 앞에서 말한 ‘개성’과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현실은 어떤가. 탈바꿈은커녕 종교간 대화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평균적으로 대표하는 대통령의 종교관에도 잘 들어난다. 서울시장 재직 시 그리고 대통령후보와 당선자로서 노골적인 종교편향을 보여 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씨알의 소리』202호 특집 〈대통령과 종교〉참고)

이처럼 불교는 한국종교의 큰 축을 이루는 세계종교이며 동시에 동양종교의 대표이다. 서양종교의 대표인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함석헌이 불교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던가. 그가 불교에 유난히 심취하거나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산발적으로 불교사와 교리의 핵심을 여기저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특히 선불교에 등장하는 일화나 화두, 교리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의 불교이해는 상당히 깊다. 근본원리를 꿰뚫고 있는 듯하다. 교리의 이해에 그치지 않고 대승불교 보살도의 진정한 실천자라고 할 만한 모습도 보인다. 마치 힌두교신앙을 견지한 간디를 그를 오랫동안 수행한 스탠리 존스 목사가 기독교정신에 가장 충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함석헌은 우리 옆에 왔던 보살이나 부처(각자)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불교사상의 요체에 비추어서 함석헌이 불교와 접촉점을 갖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오늘날의 불교는 석가모니의 교설과는 다른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기독교도 물론 예수가 오늘날의 교회를 보고 놀라겠지만, 석가모니 부처가 오늘에 다시 출현했다면 이건 아니라고 아연실색할 모습이 오늘의 불교에 많이 덧 씌어져 져있다. 물론 그 뿌리와 정신은 바탕에 깔려있다고 하겠지만 교파분열을 가져온 교리와 수행방편, 그리고 신앙적 측면에서 불교는 그 발전과정에서 두꺼운 더께가 끼었다. 그 가운데는 창시자인 석가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한 면도 들어있다.

함석헌은 그가 심취한 바 있던 무교회주의에서처럼 종교전통의 잡다한 이질적 신앙요소들을 배제한 순수한 종교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불교의 근본정신과 가르침에 비추어 함석헌이 불교사상과 얼마나 큰 접촉면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영호, 내일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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