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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

[김영호 제9강]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정신

by anarchopists 2020. 2.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3 13: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발표강연]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公共)정신

간디와 함석헌은 평생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간디와 함석헌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정신과 교훈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철저한 공공(公共)정신이다. 이들은 평생 일관되게 사사로운 삶이 아닌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함석헌이 비록 공‧사 대립을 초월한 경지까지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넘어 그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들의 인생은 사인으로서 남긴 것이 없는 무집착, 무소유의 생애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1931)에 간디는 그의 소유물을 이렇게 열거했다. “나는 비렁뱅이 수도사다. 내가 속세에서 가진 것이라곤 물레 여섯 개, 감옥 밥그릇, 염소 우유 한 병, 수제 허리-옷 여섯 벌과 수건, 그리고 별로 값이 나갈 리 없는 내 명성이 전부이다.”(1990:39-40) 간디는 소유할 것이 있다면 ‘무소유’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소유와 무집착은 동의어다. 집착은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게 하는 요인이다. 해탈, 구원을 막는 장애물이다. 소유할수록 해탈, 완전해방, 자유는 더욱 멀어진다.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함석헌도 여기서 멀지 않다. 40대부터 시작한 하루 한 끼 식사에다 한복이 그의 소박한 삶의 상징이었다. 친구들이 모아서 사준 재산인 집(원효로)은 오산학교에 기부하고 자기 신체까지 생물표본으로 쓰라고 유언했다. 그는 일제시대, 소련 점령 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 모든 험난한 시대에 투옥(‘인생대학’)과 수난을 밥 먹듯이 당했다.

두 위인은 무소유의 공생(公生)을 산 공인들이었다. 이 시대 표준으로는 희귀종이다.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진정한 공인이나 공인정신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개인은 누구나 공생활과 사생활, 공인과 사인 양면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공익은 간데없고 사익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이것을 지적하는 내부 고발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부패사회, 인권부재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

지구공동체를 보자. 세계의 국제적인 갈등과 혼란은 지구공동체를 구성하는 단위조직인 국가들이 당장의 국가이익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들 자체는 안녕한가. 국가를 구성하는 인종, 사회계층과 정당, 지역공동체들이 각기 자기이익을 앞세우느라 편안하지 않다. 더 내려가면 가족이나 개인들이 오로지 자신의 명리와 사익을 도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회사도 사익(社益)이요 개인도 사익(私益)이다. 공익은 사전에만 있는 말이 되었다. 선진국 반열에 턱거리를 시도하고 있는 이 사회를 보면 명약관화하다. 남과 북, 동과 서, 혈연, 지연, 학연, 종교, 등 각종 차별적 구분으로 핵분열 직전의 형국이다. 정치계와 경제계를 보라.

가히 아수라장 아귀다툼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단연코 ‘돈’, 재산(부동산)이 화두요 목표다. 돈이 가치이므로 가치관의 전부다. 공익보다 사익이 우선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살벌한 형국이다.’ 두 인물은 이 시대에 다시 불러내야할 공인의 거울이 된다. 돈에 대한 함석헌의 경고를 들어보자.

“이 세상은 돈의 세상이다. ‘일만 악의 근본이 돈을 사랑하는 데 있다’고 벌써 2천년 전 사람이 말했다. 돈을 이겨야 사람이다. 이 다음 우리 세계는 돈이 아니고 사는 세상이어야 한다. 돈의 지배아래 있는 참 문명이라 할 수 없다. 돈을 이기면 나를 이긴 것이고... 돈이 뭐냐? 물질적 향락의 약속이다. 예수, 석가는 돈을 몰랐다.”(전집2;322-3)

‘공공’(公共)은 사적(私的)이 아닌 공적(公的)(public) 요소와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共同體)적 요소를 함축한 말이다. 두 위인은 나나 가족이 아닌 전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 일차적인 관심은 민족공동체, 나라였다. 공공정신은 ‘나’(자아)의 철학적 이해와 종교적 깨침, 체험적 확증에서 나온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무아(無我)의 원리, 하나님이나 신적 질서에 대한 신앙, 전체론적 사유에 도달한 결과이다.

인도인의 목표인 해탈(moksha)은 간디에게 ‘보편적인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모든 중생과 하나가 됨으로서 이기적 자아의 감정이 없어진 상태’를 의미했다.(1997:102) 해탈이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 같이 함석헌도 막연한 천당, 극락을 바라보기보다 역사의 현장, 현실 속에서 이타적 실천을 강조했다. “참이란 것은 지금 여기뿐이지, 또 다른 시간이 있다든지, 또 다른 곳이 있다든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시간이라는 것도 빈 생각이다. 또 다른 곳이라는 것도 빈 생각이다.(2001:241)(김영호, 내일 마지막회가 나갑니다.)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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