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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

[김영호 제7강] 함석헌,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by anarchopists 2020. 2.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0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강연-김영호]


함석헌는 말한다.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세계역사는 위대한 교향악이다.
왜 함석헌은 민족주의는 아니라고 말하는가. 역사가로서 그는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기 때문이다.(전집4:69) 그는 사회와 역사의 진화를 신봉한다. 직선적 진화가 아닌 나선형적인 진화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민족주의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민족국가 시대에 제 노릇을 못하고 민족전체가 남의 종이 되었다.(전집14:111) 그는 세계주의를 말하고 세계화를 예측했다. 그렇더라도 민족이 할 역할은 남아있다.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 없는 역사, 문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은 특정적이지 일반적이 아닙니다.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나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이 되면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질 때는 달라져도 그때까지는 나의 서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입니다.”(전집14:327)

그 주장의 배경으로 다원주의적 독특성과 전통 및 문화의 보존, 발전을 염두에 두고 음악 연주에 비유한다.

“세계역사는 한 위대한 교향악이다.... 한국이라는 악기는 어떤 음색을 가지고 어떤 음색을 내고 있는가.... (각 악기가) 제소리를 내서만 참 조화가 나오는 것 같이, 한국은 한국식을 드러내고, 중국은 중국식을 드러내서만 세계역사는 옳게 진행된다.“(전집1:63)

여기에 근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제창되는 ‘세계와 지역의 유기적 관계론’(glocalism)의 모형이 들어있다.
민족주의(nationalism)와 더불어 지나가야할 것으로 함석헌은 국가주의(statism)의 극복을 강조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인간이 아직 어린 시절 한 때 우리를 이끄는 선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그 정도를 지나쳐 자랐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것이 죄악이다. 청산해버려야 한다.”(전집12:287)

그 청산대상은 엄격히 말해서 민족지상주의, 국가지상(신성)주의 또는 정부지상주의이다.(2:76;14:284). 국가가 중앙집권화를 통해서 개인과 지역의 권리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간디도 국가권력의 집중을 반대한다는 맥락에서는 함석헌의 생각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디는 민족주의를 고수하면서 함석헌처럼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국가주의초극론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반국가주의는 함석헌이 줄기차게 제기한 주요한 의제로서, 따로 논의해야 할 거대담론이다.)

함석헌은 민족주의와 민족을 구분한다. 민족주의 시대가 가도 ‘민족’은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에 자기 몫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가 한국역사를 기술할 때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고구려 강역의 상실이다. 신라의 통일로 민족의 영토가 3분의 1 정도이하로 줄어진 사실을 민족역량의 축소로서 보고 두고두고 한탄했다. 삼국시대 이후의 민족의 수난이 이로 말미암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한국사에는 상실된 국토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다 좌절한 인물들이 (묘청, 최영, 윤관, 임경업 등) 역사의 영웅들로 묘사된다. 나중에 그는 앞으로 중국의 강대국화와 국력신장을 경계했다. “8억을 자랑하는 중국 민족이 민족 감정으로 교만하게 미칠 때 세계의 장래가 어찌하겠나?”(12:287) 그 같은 우려가 현실화하는 징후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북한정권 붕괴에 대비해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 하나다.


최근에는 이시하라 동경도지사가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이 통치해야한다는 말까지 뱉었다. (그런데 이 발언에 대해 정부 쪽이나 보수진영이 침묵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고 나라를 지키지 않는 사대주의일 뿐이다. 보수해야할 대상은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이 아닐 것인가. 이들이 보수파가 아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파임을 다시 들어냈다.) 말년에 함석헌은 역사가 되풀이될 것을 내다보고, 깨어나는 중국에 맞서는 동남아연방 같은 것이 절실함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간디가 인도의 분열을 아쉬워하는 이유와는 다른 차원이다. 간디는 인종적, 종교적으로 공존해온 다원주의적인 전통을 깬다는 점에서 파키스칸의 독립을 반대했다. 그리고 분리한다고 해서 독립된 두 나라에서 두 종교(힌두교, 이슬람)가 국민구성에서 명확하게 양분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독립 후 파키스탄이 걸어온 역정은 험난했다. 거기에다 나중에는 더 분리되어 한 쪽은 방글라데시로 독립되어 나갔다.

둘 다 인도보다 더 가난한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차라리 인도연방 체제에서 인권과 지위를 보장받는 길을 모색했다면 구태여 분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간디의 반대가 타당함이 들어났다. 인도 같은 거대한 나라가 그렇거늘 한국 같은 작은 나라야 어떠하겠는가. 함석헌의 역사해석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에 대한 입장과 접근에서 간디와 함석헌이 합치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간디가 좀 더 전통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함석헌은 더 개혁적이고 사회진화론적인 모습이다. 대안 제시의 측면에서는 함석헌은 간디처럼 구체적이지 않다고 볼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가 역사발전의 기미를 감지하고 마치 미래학자처럼 확신을 가지고 보는 점이 있지만, 그 구체적인 전개는 인간이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로 돌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그때 가서 인류 스스로가 의식의 상승과 더불어 선택, 결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낼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나 정치/경제체제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새 종교, 새 제도가 나와야하고 결국 나오겠지만 그 구체적인 형태는 하나님이 할 일, 즉 성숙해진 씨알들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함석헌은 한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의 역할을 못 다한 것을 지적하고 그 몫을 완수하고서야 다음 역사발전단계로 이행할 수 있음을 표명했다. 따라서 분단된 민족과 국토의 통일은 필수적이다. 민족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를 끝내야 그것을 단위로 하여 새로 구성되는 세계주의 체제로 당당히 진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적어도 여기까지는, 간디와 함석헌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왜 분단과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민족공동체를 굳게 다져놓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지, 간디와 함석헌의 통찰에서 그 근거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아무 철학도 신념도 없이 지도층이나 국민이 모두 다 이욕과 이기주의의 늪에 빠져 각개약진을 하는 이 형국에서 새롭게 되새겨야할 지침이 또 따로 있을까.

간디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라와 인류전체 만이 아니라, 버러지 같은 미물이라도, 모든 생명과 하나 됨을 깨닫기 원했다. 생명경외의 전통을 이어받아 온 생명의 일체성을 강조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부르고 그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다. 나의 민족주의는 우주처럼 폭넓다. 그것은 하등동물까지 그 범주에 포함한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그 범주에 포함하며.... 나의 민족주의는 전 세계의 복지를 포함한다. 나는 우리 인도가 다른 국가들의 잿더미 위에 올라서서 상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인도가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착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인도가 강해져서 그 힘으로 또한 다른 나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1986:534)(김영호, 내일 계속됩니다)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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