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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67

[제2강] 권력 비판하자, 어용논객들 비방 나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3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권력 비판하자 어용논객들 비방 나서 김삼웅(전독립기념관 관장) 함석헌은 1958년부터 1970년대 중반기까지 15여 년 동안 줄기차게 민중의 언어로 반독재 비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평론은 아카데미즘의 지성과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춘 저널리즘 활동이었다. 일반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감히 겨냥할 수 없는 영역과 대상을, 직설적인 언어로 비판하고 폭로했다. 먼저 1950년대 이승만정권 시대에 맞선 비판활동을 살펴본다.함석헌의 언론비판 국민은 점점 못살게 만들면서 정치한다고 문패만 크게 건 국회ㆍ정부ㆍ관청 위에, 감옥보다 더 높은 돌담을 쌓아놓고 고운 말로 꽤어 온 가엾은 심령들을 가두어 쪽쪽 울리며 겉 옷, 속옷을 홀딱 다 뺏아.. 2020. 2. 8.
[제3강] 함석헌- 독재와 싸운 평화주의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4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독재와 싸운 ‘싸우는 평화주의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오늘날 정치권의 행태나 대형교회들의 짓거리, 보수세력의 걸핏하면 친북좌경으로 몰아치는 매카시즘,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반세기의 시공을 뛰어넘는 함석헌 언론사상의 빼어남을 접하게 된다. 함석헌은 일제, 공산주의, 이승만, 박정희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세력과 피나는 싸움을 벌였다. 그때마다 옥고를 치르고 고난을 겪었다. 싸우는 방법은 비폭력저항이었다. 하여 ‘싸우는 평화주의자’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다음으로 1960년대, 박정희 시대에 집필한 논설 중에 몇 대목을 발췌한다. 박정희의 5ㆍ16군사쿠데타로 온 나라가 살얼음판이 되고 언론인ㆍ지식인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 2020. 2. 8.
[제4강] 정신분열증 환자, 제5열 소리 듣고도 '할 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6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4일 정신분열증 환자, 제5열 소리 듣고도 ‘할 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같은 ‘박달나무’의 적반하장격인 논거와 주장은 향후 군사정권을 옹위하고 찬양하는 지식인ㆍ언론인들의 이론체계가 되었다. 이 거물급 언론인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다. 함석헌은 또 비슷한 시기에 한 일간지에〈정부당국에 들이대는 말〉을 몇 회에 걸쳐 썼다. 이에 대해 같은 지면에 이(李) 모라는 사람이 “예의와 겸손이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으며 일체의 권위를 병적으로 부정하고 계십니다. 지나친 현실부정으로 사회질서에 무엄한 도전을 하였습니다.… 무녀의 주문같은 글귀나 마법사의 요술처럼 꽈배기 논조로 군인을 후리치고 군인간의 이간을 획책하시니.. 2020. 2. 8.
함석헌- 언론게릴라전, 전사로 나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7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언론게릴라전 주창, 전사로 나서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 무렵 함석헌은『사상계』에 한국언론사상 ‘유별난’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제안이라기보다 주창이고 자기확신의 선언이었다.「언론의 게릴라전을 제창한다」는 글은 함석헌 언론철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글은 본래 서대문형무소로 장준하『사상계』사장의 면회를 갔다가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장준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왕초”, “존슨이 온 것은 한국 청년의 피를 더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가 국가원수 모욕죄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글의 일부를 발췌한다. 말인 즉, 대통령을 밀수왕초라 했고 존슨이 온 것은 한국 청년의 피를 더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기 때문.. 2020. 2. 8.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 창간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8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6일 개인잡지 『씨알의 소리』창간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박정희는 1969년 3선개헌을 해치우고 영구집권 체제에 들어갔다. 장준하의『사상계』는 고사 과정을 거쳐 부완혁에게 넘어가고, 3선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섰던 무소속 논객 함석헌은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되었다. 민주주의는 날이 갈수록 형해만 남게되고 씨알의 권리는 사정없이 짓밟혔다. ‘언론게릴라전’을 주창했던 함석헌은 스스로 게릴라로 나섰다. 함석헌이 개인잡지『씨알의소리』를 창간할 때 우리 나이로 70살이었다. 요즘이야 평균수명이 70살을 훨씬 넘어섰지만 당시에는 ‘인생70 고래희’의 시대였다. 개인이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마무리를 할 연배였다. 주위에서 말렸다고 .. 2020. 2. 8.
시인 함석헌을 말한다- 김경재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29 07: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인 함석헌을 말한다(1) 김경재(한신대명예교수) 2020. 2. 8.
시인 함석헌을 말한다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30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시인 함석헌을 말한다(2) 2020. 2. 8.
[제1강]김경재 교수가 말하는 함석헌의 역사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31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역사관의 바탕은 ‘생의 철학’ 1. 함석헌 ‘생의 철학’의 특징 나는 독자들에게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사상적 바탕으로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풍미했던 유럽의 ‘생의 철학’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 적어도 함석헌의 한국사상사적 자리매김에서 그가 한국적 ‘생의 철학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철학사에서 ‘생의 철학’은 앙리 베르그송(1859-1941), 프리드리히 니이체(1844-1900), 빌헬름 딜타이(1833-1911), 게오르그 짐멜(1858-1918)등으로 대표되는 뚜렷한 사상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함석헌의 역사철학을 잘 이해하려면 ‘생의 철학’의 일반적 특성을 바르게 이해.. 2020. 2. 8.
[제2강] 역사에서 개인과 공동체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01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에서 개인과 공동체 함석헌의 역사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마가 개인과 집단인격체와의 관계이다. 쉽게말해서 좁게는 개인과 민족의 관계성문제이고, 크게 말하면 개인과 지구 인류공동체 관계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와 후자를 강조하는 집단주의가 양극화 할수 있으나, 함석헌은 어느쪽도 사실적 진실에서 빗나간 생각이라고 본다. 함석헌은 국가주의를 부정하지만 민족이라는 실재는 개인보다도 항구적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삶으로서 사실자체가 두면을 불가분리적인 것으로 본다. 전자를 나무의 씨라고 말한다면, 후자를 나무의 숲이라고 본다. 씨 맺자는 것이 숲의 바램이고, 숲 이루자는 것이 씨의 꿈이다. 민족이라는 집단적 인격체 자궁 ..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