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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도덕경 강의

노자와 함석헌의 만남- 노자의 일생

by anarchopists 2019. 1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19 06:46]에 발행한 글입니다.


노자의 일생(1)

중국의 노자(老子; 생물연대 미상)는 춘추시대(BC. 8~5세기) 도가학파의 창시자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중국의 춘추전국(BC. 8~3세기)는 백가쟁명(百家爭鳴: 여러 학자들이 사물의 이치나 사회현상에 대하여 자유롭게 자기주장을 펴면서 토론하고 논쟁을 말함)의 시대이다. 그리하여 노자가 창시한 도가학파, 공자(孔子; BC. 551~479)가 창시한 유가학파, 묵적(墨翟; 墨子, B.C. 470?~391?)이 창시한 묵가학파 등 세 학파가 정립(鼎立; 세 발로 된 솥이 서 있는 현상을 말함, 옛날이 정鼎은 나라를 세우거나 천하를 평정했다는 뜻으로 쓰였음)하고 있었다. 유가는 치자(治者) 중심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도가와 묵가는 인간과 자연 중심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영정(嬴政; 진시황, BC 259~ 209)이 세운 진(秦, BC. 221~202)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그 뒤를 이어 유방(劉邦; 한고조, BC 256~195)이 세운 한(漢:BC 206~AD 220)에 이르게 된다. 한대 경제(景帝, BC 156~140) 때 동중서(董仲舒, BC 176?~104년)가 음양오행설과 유가사상을 결합하여 통치철학을 마련하였다. 이후로, 유가사상이 중국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자 유가사상은 치자들과 관변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면서 중국사상의 주류가 되었다. 반대급부로, 인간과 자연 중심의 도가사상과 목가사상은 통치자의 관심 밖의 주변사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탓으로 유가사상은 날로 발전하여 공맹사상을 낳고, 이어 중국 송(宋, 960~1278)대에는 주자학(朱子學, 性理學)으로, 명(明, 1368~1636)대는 양명학(陽明學)으로 청(淸, 1644~1911)대는 고증학(考證學)과 실학(實學)으로 학문적 진화를 거듭하며 발전하였다. 반면에 권력과 출세지향적 지식인들의 관심 밖의 학문으로 전락한 도가사상과 묵가사상은 학문적 발전을 하지 못한 채, 피지배층인 민간인들의 관심 대상으로 부각된다.

어쨌든, 노자의 도가학파는 통치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낫지만, 중국 고대의 철학과 사상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노자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한 사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史記》, 〈老莊申韓列傳〉(사기, 노장신한열전), 《史記》, 〈孔子世家〉(사기, 공자세가), 《장자》(장자) 〈天道〉(천도), 〈天地〉(천지), 〈天運〉(천운), 〈田子方〉(전자방), 〈知北游〉(지북유), 〈德充符〉(덕충부), 〈應帝王〉(응제왕), 〈在宥〉(재유), 〈庚桑楚〉(경상초), 〈則陽〉칙양, 〈寓言〉(우언), 〈養生主〉(양생주) 등이다.

이들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생물(生沒; 태어남과 죽음)연대와 그가 살아있을 때 거처했던 공간(지역)에 대하여서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시종(始終)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래서 당(唐, 618~907)의 황제들은 노자의 성이 자신들과 같은 李(노자 이름은 李耳임)씨라 하여 "“玄元聖祖”(현원성조: 현원은 시작이라는 뜻이고, 성조는 위대한 조상이라는 뜻임)로 추앙하고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 라는 칭호를 올렸다. 그리고 도교(道敎)의 신도들은 노자를 “太上老君”(태상노군: 살아있는 노자, 또는 가장 존귀한 도교의 시조라는 뜻, 노자의 존칭임)이라 하여 자신들의 시조로 모셨다.

이렇게 노자의 생몰연대에 대하여 알 수 없게 되자, 어떤 학자들은 그가 춘추시대 말기(BC 5세기)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그가 상왕(商王) 무정(武丁) 9년(약 기원전 12세기)에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주(周)나라 유왕(幽王)시대(기원전 8세기)의 현자(賢者)였다고 말한다. 또 어떤 학자는 그가 신농(神農)과 황제(黃帝)등 삼황(三皇; 十八史略에서는 삼황을 太昊伏羲, 炎帝神農, 黃帝軒轅을 말하고 있다. 태호복희는 사람에게 사냥법과 불의 활용법을, 염제신농은 태양신으로 인간에게 농업과 상업을 가르쳤다. 그리고 황제헌원은 인간에게 의식주를 가르치고, 수레 발명, 문자 발명, 천문과 역산, 의료술을 가르쳤다.)과 요ㆍ순ㆍ우ㆍ탕왕(堯舜禹湯) 등 제왕(帝王)의 스승이었다고도 한다.

또 어떤 학자는 전국시기(기원전 5~3세기)의 “博大眞人”(박대진인;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자라는 뜻) 이이(李耳)라고도 한다. 이렇게 학자들이 노자에 대한 많은 신비한 전설들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역사에서 성인이나 국가를 창설한 시조들에 대하여 후대 사람들이 신비한 전설이나 설화를 만들어내듯이 노자도 ‘성인의 전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노자 탄생의 신비와 삶의 수수께끼는 성인 예수와 고구려 건국자 주몽, 신라 건국자 박혁거세 등에 붙어 다니는 신비한 전설과 같은 성질이다. 그의 탄생설화를 보자. “노자의 어머니는 당시 81세였는데, 유성(流星)이 입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노자를 잉태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이나 임신하다가 해산하게 되었는데 오얏나무 아래서 음부가 아닌 옆구리를 통해 노자를 낳았다”(《史記》 卷63, 〈老莊申韓列傳〉 第3, 출처: 《四庫全書薈要》, 吉林出版社, 1997, 28권 11쪽上, 이하 같음) 그래서 노자의 성이 이(李, 오얏나무 이))씨가 되었다는 신이(神異)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2011. 3.5,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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