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함석헌, 영성

[김대식 제3강] 종교는 건강한 인간을 만든다

by anarchopists 2020. 1.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01 09:59]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는, 한 마디로 그 뜻을 찾자는 운동이다!”

종교는 인간의 자아와 대상을 건전하게 인식하며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종교의 기능이란 건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건강한 인간이란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인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머리만 발달한 인간은 가슴이 차갑기만 할 것이고, 감정만 앞세우는 인간은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 판단이 흐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는 이러한 이성이나 감성과 함께 영성을 덧붙임으로써 그 고유의 성격을 규정하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인간이라 함은 종교적 사유와 행위를 종교적 정신에 걸맞게 형성된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정신(spirit)에 걸맞는 것이 영성(spirituality)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에, 불교는 부처의 정신에, 유교는 공자의 정신에, 이슬람교는 무함마드의 정신 등 각 종교의 정신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만을 혹은 배타적인 종교적 정신만을 강조하면서 그 편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함석헌은 종교를 ‘그 뜻을 찾자는 운동’으로 정의합니다. 각자의 종교가 추구해야 하는 정신을 찾고 그 삶을 살아가는 ‘제 뜻 찾기’가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함석헌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생각하는 씨알, 올바로 사유하는 백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하지 않는 인종은 살 수 없다”고 말한 함석헌의 말은 종교에 대해 철학하지 않거나 이성적 성찰 없는 종교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자칫 맹목적인 감성주의적 집단이나 본질이 퇴색된 종교성을 가진 무지렁이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생각은 생명의 자발(自發)이다...... 살려거든 생각해야 한다. 제 철학을 가지고, 제 종교를 가지고, 제 역사를 가지고, 제 세계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논조를 새기고 또 새겨야 할 일입니다.

생각이 살아야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이 있어야 종교적 세계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이 없다면 세계는 온전하게 그려질 수가 없습니다. 종교는 세계를 형성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종교가 가지고 제 나름의 생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세계의 형성은 곧 인간의 정신 형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양철학, 특히 가다머(H.-G. Gadamer)의 해석학에서는 ‘형성’을 나타내는 말을 ‘Bild’라고 표현함으로써, ‘forma’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성에로의 고차적인 형성’(Herder)이나, ‘육성’(Kultur, Kant)으로, 혹은 ‘보편적인 정신적인 존재’(Hegel)로 의미를 이어갔습니다.

종교가 그 뜻을 찾고 그 뜻에 따라 살자는 것이라면, 종교의 무늬와 삶의 꼴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고차적인 정신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신앙형성, 영성형성, 정신형성을 위한 노력들이 결국 지나친 감성주의에 전도된다든지, 아니면 왜곡된 영성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종교는 종교 고유의 제 뜻을 찾기보다는, 혹은 신의 뜻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상적 심리에 경도되어 참다운 인간 세계와 종교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염려한 바 있습니다. “모든 잔혹, 악독은 이상심리에서 나오는데 그 이상심리를 일으키는 것은 종교적 자아분열이다....... 그렇기에 사회도덕, 사회주의, 세계평화, 새 질서 운운하면서 종교에 의한 인격의 분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을 통일하는 종교가 되려면 그것은 인생을 통일하는, 인격을 통일하는, 자아를 통일하는 종교가 아니면 아니 된다.” 따라서 종교적 세계와 인간의 삶의 세계가 건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종교인을 형성해야 합니다.

또한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제 뜻에 대한 기억들’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각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 사려 깊은 분별력과 건강한 종교 감정을 고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 뜻에 대한 기억들’에 대한 이성적 반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종교의 이성은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 잣대를 판단하는 비판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종교의 영성이 살아야 희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앙적 지성과 신앙인의 제 생각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건네주려는 본질적인 제 뜻이 무엇인지를 판별하고 그것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종교가 후대의 인간의 삶에, 그리고 인간의 세계에 무엇을 물려 줄 것인가 하는 것은 각기 ‘제 기억들’을 ‘제 뜻’에 맞게 찾아내어 풀이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이성, 종교적 감성, 종교적 정신을 균형을 이루어 종교적 자아분열과 인격의 분열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