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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삶

by anarchopists 2020. 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삶

4.

“지배․피지배 속에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샤르댕(Pierre Theilhard de Chardin)의 진화론적 영성에 영향을 받은 함석헌은 생명이란 모름지기 끊임없이 반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그런가. 저항은 곧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 나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격적 자주성, 노예와 같은 인간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의 도약을 위해서이다. 아나키즘의 논리와 잘 들어맞지 않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아나키즘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상을 알아보았다면, 마찬가지로 함석헌도 어떠한 이념과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상을 꿈꾼 사상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과 같이 하면서 하승우는 함석헌을 아나키스트로 보고 있다. 특히 그의 민중 혹은 씨알사상에서 민중의 깨어남 혹은 씨알의 깨어나서 ‘꿈틀거림’이 있어야 한다는 함석헌의 말을 빌려 그를 아나키스트로 평가한다. 물론 아나키스트는 다양한 사람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쩌면 현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유로운 낭만을 나타내는 용어로도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은 강력한 어조로 말한다.

“아나키즘은 권력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 속에서 권력을 폐기하고, 종속을 강요하기 위한 법과 메커니즘을 폐기하며, 모든 문벌조직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협약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그것과 더불어, 아나키즘은... 사회적 관습의 고귀한 정수가 없다면 그 어떤 인간사회도 동물사회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나키즘은 모든 종속과 권력을 폐기하고 오직 자유를 위한 인간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도 억압과 종속, 착취는 금지되어 마땅하다. 그것이 크로포트킨이 주장하고 있는 것의 “사회적 정수”이자 건강한 의사소통의 사회적 합의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사회의 “상호부조”를 외친다. 평등과 연합, 일치단결은 인간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크로포트킨은 모든 생물 세계에서 바로 그와 같은 상호부조 혹은 사회 구성원의 상호의존의 도덕 원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동물적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도 경쟁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헌신과 자기희생, 이타주의, 그리고 관용이라는 도덕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남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는 위계적 지배와 질서를 타파하는 평등성까지도 포함된다.

논자는 아나키즘이 모든 지배와 위계적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위해 저항을 해야 한다고 해서 동물과 인간이 전혀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크로포트킨이 주창한 상호부조라는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인간의 지배적 욕망이 자연에 대한 지배적 욕망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그것을 위해서 자연과 인간의 상호부조라는 측면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연은 정복이나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 어울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이 말하고 있는 상호부조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울리면서[相互] 서로 곁에서 돕고 사는 것[扶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이 자연에 대한 자기희생과 이타주의, 그리고 관용과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자본과 정부(국가)가 결탁되어 자연과의 어울림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인위적 지배와 통제 속에 가두며 또 자연을 수단화해서 인간의 문화나 여가 혹은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려고 하는 근시안적 정책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아나키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나키즘은 이러한 발상 자체에 제동을 걸고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일 함석헌이 말하고 있듯이 ‘자연이 인간 의식의 표현’이라면, 우주의 끝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자연은 산 생명이며 우리의 어머니이자 스승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을 지배할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의 뿌리요 근원인 자연을 소유하고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기억을 지워버리고 존재를 영원히 망각하며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처럼 ‘자연의 아들’인 인간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녹색사회를 꿈꾸며 그 사회 내의 온갖 차별과 배제를 철폐하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먼저 인간 스스로 인격적 주체로서 권력적․폭력적이며 반생태적 구조에 대한 저항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2010.11.18.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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