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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

함석헌, 그리고 생태아나키즘

by anarchopists 2020. 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그리고 생태아나키즘

[어제 계속]더욱이 아나키즘은 모든 억압이나 강압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오히려 자본과 정부가 부추기는 적자생존의 경쟁이나 성공 지향적 삶이 아니라 자연을 돌보고 함께-살고[共存], 함께-즐거운 사회[共樂]로 전회하자고 주장한다. 논자는 여기에 아나키즘의 중요한 생태적 언어와 사상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나키즘 혹은 아나키스트의 언어는 경쟁적 언어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이며 공생적인 사유가 담긴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거칠고 메마른 경쟁과 소외된 언어는 공존과 공락이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 언급한 ‘전복’과 ‘저항’이라는 말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공존, 공락, 공영, (상호)공생, 상호호혜 등은 모두가 아나키즘이 표방하는 사상과 세계적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것은 만일 아나키즘의 생태적 언어들이 삶의 세계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놓지 못한다면 자본과 정부 그리고 그와 밀접한 연관관계에 있는 인간과 자연은 모두가 공도(共倒)될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따라서 아나키즘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 만물이 저마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하는 생태아나키즘은 “어떻게 자연과 인간 사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태아나키즘의 선봉에 서 있는 머레이 북친(M. Bookchin)의 생태철학적 논의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문제의 배경에는 사회문제 즉 인간의 지배에서 발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위계적 구조를 비판하고 종래의 생물중심주의의 관념적 성격의 반(反)인본주의를 벗어나서 인간이성을 포기하지 않는 생태휴머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태아나키즘과 맥을 같이하는 사회생태론은 인간의 도구적 이성이 가지고 온 폐해를 지적하고 약육강식의 지배나 사회, 그리고 자연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물종간의 상보성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위하여 참여의 정치를 통한 민중화된 힘을 결집시키고 그로 인한 민중화된 정치를 지향한다. 이것은 결국 생태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민중 곧 씨알의 세계 경험과 인식의 성찰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생태공동체의 삶을 위한 경제적 행위 또한 변화를 가져와야만 한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 공동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지탱 가능한 삶의 세계를 보장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소비주의와 비도덕성을 만연시키는 자본주의적 산업주의를 해체”하고 자연다움(natureness)과 인간다움(humanness)을 위한 생태친화적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태친화적 도덕경제를 이루게 될 때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적 위계 구조를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연 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주체 즉 외부적인 억압과 지배로부터 탈피하여 자유로운 존재 사유와 행위를 통한 생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이다. 물론 이러한 생태공동체는 자본과 국가가 요구하는 물신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도덕원칙을 수립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아나키스트 골드윈(W. Goldwin)은 일찌감치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온갖 악덕을 인간에게 강요한다.”

골드윈에 의하면 “모두가 자연이 주는 축복을 공유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회에는 편협한 이기심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나키즘은 타인에 대한 어떠한 지배도, 또한 그에 대한 정당화도 거부하고, 인간은 자연을 공유하는 공존의식, 공생심(사심이나 이익이 아닌)을 가져야만 한다. 이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극복하면서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을 정복하는 주인으로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이 말한 것처럼, 인간 사이의 연대와 동료의식 뿐만 아니라 상호부조(mutual aid)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야만 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상호부조가 원시사회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일관하여 왔으며, 그 중에서 연대감이라는 것도 일종의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자연적인 조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별적인 투쟁을 최소화하면서 상호부조를 해왔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윤리적 진보 혹은 윤리적 진화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 하나 하나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상호투쟁이 아니라 상호지원(mutual support)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홍규는 이러한 상호부조의 삶을 인디언의 아나키 민주주의로부터 배운다. 인디언의 삶이야야말로 무권위, 무권력, 무국가를 표방하며, 그들은 자립, 자유, 자족, 자치를 위한 질서, 조화, 단결을 중시한다. 자연을 존중하며 지혜와 자비를 가지고 자연의 생명을 친족으로 여기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족이란 동족이나 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모두를 형제라는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2010.11.16.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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