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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by anarchopists 2020. 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간의 세계 경험과 인식의 성찰,
그리고 아나키스트 함석헌의 생태철학

1.
우리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는 세계-내-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란 이미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의 지평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세계는 온전히 포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세계는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 있다면 세계는 인식의 대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그 경험의 세계를 자신의 존재 지평으로서 판단하고 심지어 대상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이하 자연의 영역을 포함)는 단지 인간의 경험과 인식으로서의 수단이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인간이라는 주체의 삶의 세계이자 생명의 세계이다. 삶의 세계 내에서 인간의 삶은 생명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그 생명의 의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문제는 삶의 세계 내에는 다양한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계 곧 삶의 세계나 자연은 인간의 삶의 세계로만 국한돼서는 안 될 것이다.

논자는 이러한 사유와 태도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탈중심적 세계, 탈중앙집권적 삶을 외치고 모든 인간의 권력이나 외부의 강제성에 대해서 저항하려는 ‘아나키즘’(anarchism)의 사유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간의 삶의 세계나 자연 세계에 대해서 폭력을 가하고 지배하고자 했던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실존적 상황은 지속적으로 삶을 위협하고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무모한 권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지배뿐만 아니라 자연의 영역 안에서도 근본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논자는 어떤 의미에서 아나키스트적인 사상가이자 행동가라고 볼 수 있는 함석헌과 연관을 지으면서 그의 생태아나키즘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생태철학이 갖는 아나키즘적 성격과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의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아나키즘이란 일반적으로 ‘무정부주의’라는 꼬리표로 규정된다. 그러나 그 단순한 정의만큼이나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논조와 행동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근본적인 정신은 인간의 자유를 우선으로 하며 중앙화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외부의 강요나 집중화 혹은 위계적인 권위에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나키즘의 기본 골조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열망하는 정치, 사회적 자율의 모형은 아나키즘적이며, 그 정신도 아나키즘적이다”에서도 간파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아나키즘은 국가나 정부, 그리고 이미 최소 국가를 넘어서 버린 거대 기업이나 자본의 강제성에 대해서 절대적 자유를 지향하는 철학적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모든 현상들은 인간의 지배와 통제, 자본으로 인해 물화된 정신들이 되다 못해 인간 존재가 지닌 고유의 정신세계를 잠식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M. Kundera)의 소설 제목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인간은 마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몸서리치며 자유의 날개짓을 퍼덕여 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자본과 국가는 인간의 삶을 좀먹고 지배와 통제, 그리고 심지어 죽임으로 몰아가는 것을 볼 때 과연 인간의 근본적인 사유와 행위를 떠받쳐줄 사조는 무엇일까를 처절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고 본다.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삶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제적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게임’으로 보는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이다. 아나키즘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소외의 원인은 ‘사람들의 수요충족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에 있다는 확신을 마르크스와 공유한다.”

이러한 아나키즘의 사유는 선택에 기로에 서 있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에 대해서 철저하게 해체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철학이 세계의 ‘변혁’을 위한 철학이라면, 아나키즘의 철학은 세계의 ‘전복’과 ‘저항’이라고 말을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저항이라는 어감자체가 갖는 묘한 메타포와 수사학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항과 전복은 단순한 감정적 어투나 허무한 카타르시스를 위한 개념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판단을 위한 이념과 행동 지침이다. 인간의 삶의 세계에서, 생명적 세계 자체를 수단화 해버리는 자본은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키고 착취하며, 정부는 자본에 종속된 또 다른 형태의 자본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국가는 자본을 위해서 자연을 유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인간의 삶의 세계와 자연의 생명 세계를 정치와 물신적 게임의 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에 대해서 아나키즘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2010. 11.13,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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