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

향후 함석헌 연구와 운동의 방향: 단일론적 큰 이야기에서 다원론적 작은 이야기로

by anarchopists 2021. 1. 15.

향후 함석헌 연구와 운동의 방향:

단일론적 큰 이야기에서 다원론적 작은 이야기로

 

1. 훈고학적 함석헌 연구를 넘어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필자의 함석헌 연구가 ‘텍스트’(text)에 집착해서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습니다. 항상 필자가 서 있는 ‘콘텍스트’(context)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먼저 던지고, 그 다음에 텍스트에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함석헌훈구학자는 아닙니다. ‘함석헌 왈’(曰)이라고 하면서 함석헌의 본래 이야기와 운동의 성격을 짚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함석헌의 사실(fact)조차도 이미 해석되고 가공된 사실입니다. 사실이 가공되었다는 말에 대한 곡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석헌의 역사적 사건이나 말과 글이 거짓이라는 말이냐, 혹은 환상이라는 말이냐, 라는 반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듣고 보는 뉴스라는 것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석학적 보도입니다. 기자의 해석과 판단이 들어가 있으며, 방송으로 송출할 때도 이미 어떤 프레임을 통해서 씨ᄋᆞᆯ들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나 신문조차도 그야말로 사실을 말했다고 단정지으면 안 됩니다. 그에 따른 민중들의 이성적인 비판적 인식과 해석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함석헌의 어록, 함석헌의 강연, 함석헌의 역사, 함석헌의 글과 말도 해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사실로서만 받아들일 때 그가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교조주의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앞에서 말한 ‘사실’이라는 ‘fact’는 ‘만들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factum’에서 온 말입니다. 거기에서 파생된 영어 중에 ‘공장’을 뜻하는 ‘factory’도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애초에 사실이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감각, 기억, 언어의 어휘적 표현, 개념의 정확한 선택, 소리의 명료성의 정도에 따라 그 때 그 사건이나 경험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한계나 확실성의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위 그림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오리’처럼, 혹은 ‘토끼’처럼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의 그림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성은 때에 따라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기도 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함석헌의 언어나 사건에 대해서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그에 대한 해석과 느낌, 언어적 표현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함석헌 자신의 오류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필자의 입장은 훈고학적 연구학자는 아닙니다. 굳이 밝힌다면, 특정 학자나 문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깊게 따져보려는 성리학적, 현상학적, 해석학적 연구학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가장 오래된 텍스트가 생성된 그 자구적(字句的)인 함석헌의 의도를 훼손하면서까지 뜻을 풀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필자는 콘텍스트의 문제를 비판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구적 고증학보다는 의미론적 해석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그 때 그 때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서 그렇습니다. 성서(聖書)도 자구대로 따지기만 하고 의미의 재생산을 하지 못하여 시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에 그 경전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루한 문서로 취급받고 말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해서 훈구학적 성격이 짙었던 예수의 제자단보다는 주자학적 성격이 강했던 바울이 그레코-로만 문화권에 해석학적 진리 혹은 상황적 진리를 전함으로써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문화가 유럽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진리의 재생산과 재해석은 텍스트의 어떤 문자가 파리똥인지 쉼표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함석헌이 하루에 식사를 한 번 했느니 두 번 했느니 하는 증언보다 세계 변화를 위해서는 훨씬 중요한 힘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함석헌의 범주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함석헌을 그리스도인, 퀘이커(Quaker), 민족주의자, 아나키스트(anarchist, 김삼웅의 함석헌평전 참고), 평화주의자로 보는 시각 등 여러 시각이 있었습니다. 범주(Kategorie)는 대상을 잘 인식하는(erkennen) 하나의 형식(Form)입니다. 형식이 있으면 질료(Material)를 파악하기 쉬워집니다. 쳐낼 것은 쳐내고 품을 것은 품을 수 있으니 간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주의가 강해지면 범주 바깥의 의견(잡다한 질료)이나 다양한 시각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 마르틴 부버(M. Buber)는 관계의 범주로 나아갑니다. “처음에 관계가 있다. 관계는 존재의 범주(Kategorie) 준비, 파악의 형식, 혼의 주형(鑄型)이다. 관계의 아프리오리(a priori), 그것은 ‘타고난’ ‘너’(das eingeborene Du)이다. (…) 사람은 ‘너’에게 접함으로써 나가 된다”(M. Buber, 표재명 옮김, 나와 너, 문예출판사, 1980, 40-41).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8개, 독일 근대철학자 칸트(I. Kant)는 12범주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문헌에서는 왜 범주의 가짓수가 그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전제 혹은 선험적 형식이기 때문에 굳이 규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범주는 더 생성될 수도 있습니다. 범주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범주는 물론 선험적(a priori)입니다. 경험을 인식하고 개념화하기 위한 틀로서 작동하는 어떤 원칙과 법칙입니다. 그것은 경험 이전의 것이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을 종합하는 틀로서 기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할 수 없습니다. 사태나 사실, 그리고 경험을 더 근원적인 데서 볼 수 있으려면 ‘사태 그 자체’(zu den Sachen Selbst)를 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입니다.

  니체가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취해야 할 이상적 인간상을 위버멘쉬(Übermensch, Overman; 극복인, 초인)로 본 것처럼, 함석헌은 ‘민중’(씨ᄋᆞᆯ) 개개인이 나아가야 할 씨ᄋᆞᆯ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굳이 하나의 틀로서 그리스도인, 민족주의자, 퀘이커라고 한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함석헌에게 씨ᄋᆞᆯ은 무전제의 전제인 것처럼, 순수사유요 순수존재로서, 뜻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전제를 하지 않고 풀어야 더 넓은 의미에서의 함석헌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른바 함석헌을 ‘관점주의적 해석학’(Perspektive Hermeneutik)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F. W. Nietzsche, 정동호 옮김,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364).

  1965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일우사) 4판 머리말에서 함석헌은 국가주의, 종파주의, 심지어 성경만이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고 선언함으로써 무교회주의까지도 넘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은 자신을 어느 정체적 존재의 범주에 가두지 않는 야인(野人)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함석헌은 마침내 ‘성서’라는 범주 대신에 ‘뜻’이라는 순수존재로서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뜻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다 통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순수사유나 순수존재로부터 기원하는 시초의 것으로서의 뜻은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의 ‘무’(無)를 극한까지 밀고 간 사유와 실천을 보여준 대목입니다. 유무(有無)가 상통할 수 있는 존재론적 개념, 나아가 유나 무를 넘어서는 개념인 뜻으로의 일대 전환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일 수 있었겠으나, 그가 예언한 것처럼 ‘뜻’은 절대니 상대니 하는 것을 넘어서고 구원의 대중화, 대승적인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해석이 되었습니다. 함석헌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함석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일우사, 1965, 8-11).

  필자가 함석헌을 한 사람의 아나키스트라고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해석학적 관점이라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라는 오역은 악의적 번역입니다)의 어원이 되는 아르케(arche: 원리, 원칙, 태초, 시작, 처음, 근원, 지배 등)와 아르코스(archos: 선장이 없는 배, 선원들의 평등한 의사소통적 합의 중요)가 가진 개념적 성격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함석헌을 가장 원본적 사실, 뜻의 형이상학의 빛에 비추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원리(arche)란 “운동과 변화가 자연적으로 처음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고 싸움은 비방으로 생겨났다”(Aristoteles, Metaphysica Ⅴ, c.1, 1013a 5-10; 유대칠, 대한민국철학사, 이상북스, 2020, 304 재인용)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함석헌의 뜻(1960년까지는 『성서로 본 조선역사』였지만, 그 이후로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뀜)은 민중이 살아가는 시공간을 편견과 선입견이 없이 직시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민중에게서 그 편견의 안경을 벗겨주기 위한 해석학적 장치 혹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함석헌의 해석학적 변화와 유연성에 따라 민중도, 씨ᄋᆞᆯ로서의 (해석)학자도 시대에 맞춰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양성과 다원성은 하나의 진리로 고착,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진리는 생성, 변화하는 콘텍스트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 Derrida)가 ‘차연’(差延)이라는 신조어로 번역될 수밖에 없는 ‘디페랑스’(differance)를 발명한 것은 탁견이었습니다. 진리의 개념, 하나의 로고스는 차이와 지연을 통해서 그 때 그 때 검증되고 합의될 뿐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 부여된 개념과 의미, 그리고 소리가 그 존재나 대상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 되는 것은 자칫 폭력이나 배타성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뜻’관념과 형이상학은 민중을 위한 보편적 개념으로서 선택된 함석헌의 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함석헌은 경계가 없습니다!

  함석헌도 역사에서 수많은 씨ᄋᆞᆯ 중에 한 명의 위대한 씨ᄋᆞᆯ일 뿐입니다. 그가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씨ᄋᆞᆯ이라면 이제 새로운 씨ᄋᆞᆯ이 나와야 합니다. 아니 수많은 깨인 씨ᄋᆞᆯ이 나올 수 있도록 시대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시대를 읽고 자신의 삶의 장에서 씨ᄋᆞᆯ로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책무가 있습니다. 씨ᄋᆞᆯ은 고착화된 존재가 아니라 생성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씨ᄋᆞᆯ이 씨ᄋᆞᆯ로서 서로 연대하고 힘이 있는 주체적 씨ᄋᆞᆯ이 되어야 합니다.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은 씨ᄋᆞᆯ입니다. 자기 생각, 주체적인 사유, 용기 있는 행동은 자기가 씨ᄋᆞᆯ이라는 주관적 보편성의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실험과 싸움, 그리고 진리의 인식과 실천을 위해서 이제는 다양한 영역에서 함석헌을 해석하고 우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거대담론으로 일관했던 함석헌 연구를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미시담론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문제를 다루면서 함석헌을 잘 적용할 수 있는 연구와 접촉점을 찾는 일도 시급한 일입니다. 함석헌이 지금과 미래에도 여전히 필요한 철학이요 사상이라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성애, 인권, 어린이, 장애인, 동물권, 여성, 포스트휴먼, 인공지능윤리, 노인, 생명, 환경 등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기후(날씨) 변화입니다.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영원한 화제. 모든 병의 근원, 늘 불평을 듣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날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급박한 현실과 삶의 문제입니다. 함석헌을 통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 속에 있는 인간의 세밀한 삶도 소중합니다. 그것을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접근해서 담론과 운동으로서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사회에는 함석헌에 관한 원숙한 연구자와 그분에 대한 과거의 경험이 축적된 지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틈새에서 함석헌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려는 젊은 세대와의 연대와 병행 연구 그리고 본이 되는 실천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함석헌에게 금기(taboo)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유미주의(唯美主義)라고 합니다. 예술 외적인 분야는 과감하게 추방하여 각기 고유의 표현영역을 탐구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서구 유럽의 예술계 동향을 비판하고 나온 바우하우스(Bauhaus)는 이른바 예술은 공예로 돌아가야 하고 종합예술이 되어서 실제생활과 맞닿은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화, 조각, 건축, 음악, 연극 등 모든 예술을 종합하는 실용예술 혹은 대예술(大藝術)을 창조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산업혁명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생긴 피할 수 없는 수공(手工)과 기계와의 갈등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달리 급변하는 현실에 발을 맞추기 위한 예술계의 운명이었을 것입니다(권명광, 바우하우스, 미진사, 1989, 7-22).

  이런 맥락에서 함석헌을 위한 ‘함석헌주의’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습니다. 오직 함석헌만이, 혹은 함석헌에 대한 훈고학적인 태도로서는 앞으로 함석헌의 철학, 사상, 운동,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너무나 진부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함석헌에게 덧씌우려는 금기는 없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금기는 없어야 합니다. 씨ᄋᆞᆯ 자신에게도 거듭 지속해서 생성, 발전해 나가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금기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함석헌 연구나 실천에 있어서도 금기는 없어야 합니다.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니체(F. W. Nietzsche),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 하이데거(M. Heidegger), 사르트르(Jean-Paul Sartre), 허균(許筠), 김시습(金時習), 박지원(朴趾源) 등은 당대의 금기를 깬 사람들입니다.

  함석헌을 종합예술로 승화시키고 큰 이야기로만 일관할 것이 아니라 작은 이야기로 풀어서 실제 생활로 연결지으면서 이론과 실천, 그리고 운동을 아울러야 할 것입니다. 함석헌에게 결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듬으면 수많은 좋은 결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을 금기시하고 오직 함석헌주의로만 가자고 한다면, 새로운 함석헌, 새로운 씨ᄋᆞᆯ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뜻의 힘은 막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말 단 하나의 (함석헌)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답변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자유, 녹산(鹿山), 형암(炯庵)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