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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논단

생태아나키즘, 그리고 함석헌의 인간과 자연

by anarchopists 2020. 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9 06:50]에 발행한 글입니다.


5.
인간은 “자유, 존엄성, 창조성에 근거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며, 자신의 운명을 가능한 한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경제체제 속에 살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학자이자 무정부사상가라 할 수 있는 촘스키 역시 자유란 인간의 본성이며 자유를 의식하는 것이 인간본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나는 자유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아주 독특한 조건으로 자유가 보장될 때 지성이 계발되고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유란 국가가 부여하고 할당하며 규제하는 그런 완전히 공식적인 자유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자유는 그 이름에 합당한 유일할 자유로서, 개개인에게 잠재해 있는 물질적이고 지적이며 도덕적인 모든 힘을 발전시켜 준다. 또 내가 말하는 자유는 오직 우리 인간 본성의 법칙에 의해서만 제약을 받는다.”

그러므로 자연이 자유를 쟁취하고 모든 인간의 지배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삶이 물질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스스로 지금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오염은 먼저 인간의 정신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이성이 부단히 저항하는 이른바 ‘생태적 레지스탕스’가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태적 레지스탕스, 혹은 생태적 저항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연 해방의 쟁취에 있다.

이를 위해 머레이 북친은 “생물권적 민주주의” 즉 “독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은 자연관을 주장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생물권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한 척도는 생명적 세계, 삶의 세계에서 어떠한 독재의 형식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함석헌은 이러한 독재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를 등치시키면서 그것이 도시문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시골의 문화는 그와 같은 지배형태를 탈피한 자연과 대조화를 이루는 평화와 협조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를 구분하고 있다.

그는 평소에 “미국 자본주의의 하수도가 우리다”라고 말할 만큼 자본주의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페티시즘에 물들고 그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사회혁명을 부르짖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제도를 뜯어 고쳐야 하며 민중이 사회적 기풍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적 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체[혹은 한, 全]로서의 개인[낱]의 정신과 영혼의 생명적 가슴에 나와야 한다. 개인의 정신이 깨어남, 곧 종교나 국가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개별적인 존재가 사회의 물신숭배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인간 마음의 지배자는 종교이고, 인간의 욕망을 지배하는 것은 소유욕(property)이며,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정부이다. 정부는 노예상태를 유지시키는 요새로 온갖 공포를 조장한다. 종교! 종교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인간의 영혼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타락시키는가, 종교는 신이 전부고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無)에서 신은 너무나 전체적이고 너무나 독재적이고 잔인하고 가공스러운 왕국을 창조했다. 신들이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이땅은 무가 아니라 어둠과 눈물과 피가 지배했다. 아나키즘은 인간을 깨워 이 검은 괴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한다. 자신의 정신적 족쇄를 끊으라고 아나키즘은 말한다. 당장 모든 진보에 가장 큰 장애인 어둠의 지배를 스스로 제거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물신주의를 비판하고 그 자본에 노예가 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의 자기 결정과 자유, 그리고 지배자의 굴레에 속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맘몬제일에 젖어 있는 인간이 그 맘몬을 위해서는 자연의 자유를 빼앗아도 된다는 폭력적 사고와 행위가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인간의 정신적 진보를 방해하는 장벽을 꿰뚫고 나아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은 인간에게 자신을 자각하게 해주는 유일한 철학이다... 아나키즘은 인간을 포로로 묶어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대한 해방자이다.” 더 나아가서 “아나키즘은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감을 내세우는 주장이다. 아나키즘은 정치 변혁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적 자기 결정 행동이다.”

그러나 생태아나키즘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자유와 해방, 의식의 진보와 자기 결정권을 토대로 자연의 해방과 인간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미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인간 자신의 자유를 상실한 채 모든 삶의 중심은 자본가에게 의탁하고 노동자는 그와 같은 삶의 중심과 욕망을 위해서 그 지배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삶의 중심은 인간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연도 그 중심에 서거나 인간으로부터 부여받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생물권적 민주주의의 실현은 곧 모두가 생명의 중심이라는 것, 그래서 모든 생명들에게 낯선 타자가 되어줄 것을 강요할 수 없고 스스로 인간을 위한 수단이 되어달라고 압력과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아나키즘이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면서 체제를 흔들거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의미로 인식하는 데서 벗어나서 인간의 외압적인 통제나 강요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6.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 자신 이외의 어떠한 존재에게도 의탁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세계화, 그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는 실체가 없으면서 자본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처럼 기능하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대해서 새로운 성찰과 함께 삶의 세계에 대한 겸허한 인식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촘스키는 아나키즘이 고정된 것도, 자폐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개인과 사회 세력들이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우려를 불식시킨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운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어떠한 억압과 강제성,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 인간다운 삶,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라고 외친다. 시간이 갈수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등치시켜 생각했던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도 중요하고, 사람만큼이나 자연도 중요하다는 깨우치고 새로운 실천을 낳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얽어매고 있는 여러 지배 혹은 지배체제와 위계적 사슬들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인간의 세계는 다 포착될 수 없는 보다 이념적인 것이며, 그 세계는 공동의 세계이자 삶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그 선봉에 씨알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연히 일어나 씨알의 꿈틀거림이 지축을 흔드는 위대한 힘이 되어야 할 것을 설파한 것이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자연의 오염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정신의 오염이라는 것을 지적한 그는 자연을 위대한 스승이자 어머니로 인식하였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속에서 도시가 어떻게 병들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차린 그는 자본주의의 폐단과 물신주의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자연의 해방에 대해서 부르짖은 한 사람의 아나키스트이자 생태 아나키스트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나키즘에 대해서 새롭게 평가, 해석하고 인간의 세계 경험에 대한 오만한 인식에 대해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비판,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계 내의 인간은 강제, 강압, 속박, 구속, 지배라는 존재의 수치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서 자유와 해방이라는 언어로 새로운 틀, 자연과의 공존, 공생적 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아나키즘은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다.(2010. 11.19 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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