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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18

알림_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61주기 추모 한마당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30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 한마당을 엷니다. 주 최 : 함석헌평화포럼 후 원 : 주한 인도대사관 시 간 : 2009년 2월 3일(화요일) 오후 3시~6시 장 소 : 김대중도서관 대강당(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평화재단 내) ☐ 모시는 말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간디(1869-1948)를, 한국의 사상가로 함석헌(1901-1989)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상아탑 지식인이 아닌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시대양심이었습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인도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울릴 만한 보편성을 지닙니다. 21세기의 세계는 아직도 많은 갈등과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두 위인이 공유하는 비폭력평화 사상, 다.. 2020. 2. 4.
[김영호-제1강] 함석헌과 간디의 유산- 들어가는 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13 10:18]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 교수의 함석헌을 말한다-함석헌과 간디의 유산-1] 오늘부터는 지난 2월 3일 함석헌 20주기와 간디 61주기 추모 학술모임에서 강연되었던 글들을 연재로 싣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김영호 교수님의 "함석헌과 간디의 유산"을 싣습니다. 글차례 1. 머리말/ 2. 비폭력 사상 및 실천/3. 종교관/ 4. 민족주의, 세계주의, 전체론 /5. 공인정신/ 6. 맺는말 1. 머리말- 우리사회는 유기적 공동체인가 지구 공동체는 지금 안녕하신가. 가령 우주의 다른 쪽 공동체 사람들(외계인)이 지구의 안부를 묻는다고 상상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통계를 보면 밝은.. 2020. 2. 3.
[김영호 제2강] 함석헌- 비폭력 사상 및 실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14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의 함석헌을 말한다-2] 비폭력 사상 및 실천 함석헌의 핵심사상은 비폭력이다. 간디하면 비폭력 투쟁이 연상될 정도로 비폭력주의는 간디의 핵심사상으로 자리매김 된 개념이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바로 이 사상 때문에 ‘한국의 간디’로 불릴 만큼 함석헌도 비폭력주의와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다. 비폭력사상은 두 인물의 주요한 접점이 된다. 간디를 몰랐더라도 함석헌이 폭력주의를 선양했을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채택한 기독교나 그가 속한 한국 및 동양 종교전통이 평화주위와 비폭력주의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비폭력을 사회민주화의 도구로 주창한 것은 간디를 통해서였다. 그가 번역한 간디 자서전과 간디에 .. 2020. 2. 3.
[김영호-제6강] 함석헌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19 09:1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추모학술모임-원고] 함석헌과 간디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전체주의 간디와 함석헌의 민족주의는 보편적 민족주의다. 간디와 함석헌은 평생 자기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애국자였다. 둘 다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다. (함석헌은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혀있다.) 진리와 하나님을 찾고 받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이들에게 왜 또 나라인가. 나라가 곧 진리와 하나님을 찾는 통로요 삶의 현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신의 속성인 사랑과 자비의 실현 대상인 가장 가까운 이웃들의 집합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무엇보다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었다. 간디는 명시적으로, 함석헌은 함축적.. 2020. 2. 2.
[김영호 제7강] 함석헌,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0 09: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강연-김영호] 함석헌는 말한다.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세계역사는 위대한 교향악이다. 왜 함석헌은 민족주의는 아니라고 말하는가. 역사가로서 그는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기 때문이다.(전집4:69) 그는 사회와 역사의 진화를 신봉한다. 직선적 진화가 아닌 나선형적인 진화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민족주의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민족국가 시대에 제 노릇을 못하고 민족전체가 남의 종이 되었다.(전집14:111) 그는 세계주의를 말하고 세계화를 예측했다. 그렇더라도 민족이 할 역할은 남아있다.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 없는 역사, 문화는 없.. 2020. 2. 2.
[김영호 제9강]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정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3 13: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추모 학술모임 발표강연] 함석헌과 간디의 공공(公共)정신 간디와 함석헌은 평생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간디와 함석헌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정신과 교훈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철저한 공공(公共)정신이다. 이들은 평생 일관되게 사사로운 삶이 아닌 공공정신으로 살았다. 함석헌이 비록 공‧사 대립을 초월한 경지까지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도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넘어 그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삶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들의 인생은 사인으로서 남긴 것이 없는 무집착, 무소유의 생애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1931)에 간디는 그의 소유물을 이렇게 열거했다. “나는 비렁뱅이 수도사다. 내가 .. 2020. 2. 2.
[박종강-제1강] 마하트마 간디의 변호사생활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25 09:01]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20주기, 간디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박정강] 간디의 변호사생활 들어가며 간디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영국지배에서 인도를 독립시킨 인도건국의 아버지이자 물레를 돌리면서 비폭력저항으로 인도를 독립시킨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다. 그러나 실상 간디의 출발은 변호사였고 변호사활동을 통해 사회개혁운동을 해 온 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인류역사상 자유롭게 독립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바로 간디다. 즉 간디의 사회변혁운동은 실정법에 대한 대응을 토대로 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은 간디가 변호사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간디는 변호사로서 남아프리카에서 철저한 단련.. 2020. 2. 2.
[박종강 제6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03 09:28]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 서거20주기, 간디 서거 61주기 추모학술마당 강연내용-박종강] 간디가 바라던 세상은? 당초, 간디는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였으나, 법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 줄 전혀 몰랐다. 간디는 이때 변호사였던 프레더릭 펜거트의 조언을 받는다. 펜거트는 간디에게 변호사가 각별할 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직하고 근면하면 된다는 조언을 한다. 그런데, 사실 간디는 이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타고난 점을 가졌다. 한편, 펜거트는 간디의 독서범위를 점검하고 “자네는 일반 독서가 부족해. 자네는 세계를 몰라. 그것은 변호사에게 필요한 것이네, 자네는 인도역사조차도 읽지 못했단 말이야. 변호사는 인간성을 알아야하네. 사람의 얼굴을 .. 2020. 1. 31.
[이거룡 제2강] 길을 묻는다-간디와 함석헌의 회통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6 08:27]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거룡, 제2강] 2. 간디와 함석헌의 회통 함석헌이 간디의 이름을 들은 것은 ‘스물이 한 둘 넘어서'인 3.1운동 무렵이었다. “간디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3.1운동 후였습니다. 우리가 그 비폭력 반항(非暴力反抗)을 하던 그 해가 마침 간디가 인도에서 대대적으로 비폭력 운동을 일으킨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문으로 잡지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단편적인 것이었고, 1923년 일본에서 로망 롤랑의 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의 생애와 그 운동의 대체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29년 간디의 일본 방문이 예정대로 성사되었다면 두 사상가의 만남이 .. 2020.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