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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10

윤병렬,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 서광사, 2021. 윤병렬, 하이데거와 도가의 철학, 서광사, 2021. “존재는 텅 빔(無; Leere, Nichts)입니다!” 하이데거나 노장철학을 논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사적 사유의 맥락을 해체한 인물이요, 노자와 장자는 공자와 같은 정형화된 논법을 타파한 동양철학자입니다. 굴직한 한 사람의 철학을 다 우려내는 것도 버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아닌 이 둘을 조합한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철학자 윤병렬은 이 둘을 존재(Sein)와 도(道, Tao)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손쉽게 풀어 밝힙니다. 하이데거의 시원적 사유, 길(Weg), 침묵 언어, 무위, 초연한 내맡김(Gelassenheit) 등의 유비점들을 찾아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흐름은 매끄럽습니다. 서양과.. 2021. 6. 12.
Levi R. Bryant, 김효진 옮김, 존재의 지도, 갈무리, 2020. Levi R. Bryant, 김효진 옮김, 존재의 지도, 갈무리, 2020. “인간은 예외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존재론하면 형이상학이 생각날 것입니다. 존재론은 일반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분야입니다. 모든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공통적으로 지니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지어보더라도 브라이언트의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존재의 지도》(onto-cartography)라는 제목에 부제는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이라니 아리송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저자의 학문적 관심사나 그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을 단박에 깨닫습니다. 게다가 그의 문제의식을 독특하게 담아내는 것도 모자라 엄밀하게 풀이한 방식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 2021. 6. 9.
성서로운 삶을 향한 존재의 이해: 니체와 에크하르트로 읽는 성서 책소개 니체와 에크하르트 두 철학자의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요 저항의 몸-짓(poiesis)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두 사람을 해석학의 도구로 삼아 성서를 봄으로써 새로운 신앙의 쇄신을 갈망하는 필자의 포이에시스(창작적 언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종교는 그 본래의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매너리즘과 아비투스에 빠져 값싼 신앙언어만 생산함으로써 종교의 언어, 경전의 언어가 높은 이상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현실에서 새로운 저항의 언어와 사유를 가능케 하고자 한 저자의 성서해석학의 포이에시스적 시론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할 것이다. 목차 말을 열면서 종교적 현실언어의 종언과 종교경전의 해체적 해석 1장 종교의 순수한 시원을 향한.. 2020. 10. 8.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6/12 06:21]에 발행한 글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석헌의 말마디에서 “누구든지”라는 말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함석헌의 열려 있는 종교적 사유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어요. [......] 하나님의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있어요”라고 말한 그의 신앙관에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종교적 신념이 녹아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어도 믿는 줄 모르는 종교/ 의인도 하나 없고 죄인도 하나 없는/ 신자 아닌 사람, 사람 아닌 삶의 종교”라는 시구처럼 종교란 없이 믿는 듯이 믿어야 하고, 아니 믿는 듯 믿어야 그 경계와 구분을 초월하여 신과 합일.. 2020. 1. 16.
퍽퍽한 한해였다- 정신을 진화시키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을 탈구축하자!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을 애초에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또는 인식하기 위한 선험적 감성의 형식이라는 말한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I. Kant)이다.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미 공간과 시간이라는 보편타당한 형식이 주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2010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떠한 특수한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한국이라는 공간 혹은 세계라는 공간이 없이, 2010년이라는 시간이 없이 사건들을 파악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유는 공.. 2020. 1. 4.
가을, 생각하니 슬픈 가을이구나!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15 05: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을이 깊어갑니다...... 성락추풍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 제갈량이 생각이 납니다...... 그의 일생의 의미는 스스로 눈물로 썼던 출사표의 끝말 한마디로 다 될 것입니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后已: 몸이 부서질 때까지 노력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정성을 다하다-편집자), 그저 애를 써본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옳은 것을 위해서입니다. 목숨을 받아가지고 나온 이상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에 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양심이라고 합니다...... 그럼 옳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환한 것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바닥에 있습니다...... 유비라는.. 2019. 12. 3.
고개를 떨군 이성을 위한 변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고개를 떨군 이성을 위한 변 뭉게뭉게 비구름이 모여들고 낮게 드리워진 저 구름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저 구름들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일까? 이미 아득해져 버린 존재의 기억들은 마치 솜털처럼 물기를 빨아들이듯 존재자를 망각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푸른 들판은 나를 위로하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은 내 마음을 평온케 한다. 저 산 끝 언저리에 내려앉은 역사의 숨결은 나를 재촉하여 부르고 존재의 호명은 나를 흔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몰두하고 이성은 힘없이 좌초하고 만다. 무능력을 탓할 수 없으리만큼 이내 이성은 침묵을 하다못해 묵살을 당하는 것은 더 이상 사회적 이상에 .. 2019. 11. 18.
스피노자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정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스피노자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정념 우리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사회에 태어났고 부모, 친척, 사회, 국가 등에 태어나졌다. 결코 현재 상황을 우리가 만들지도 선택하지 않았으며 환경 또한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개인들은 그저 그 상황에 지배적인 담론이나 정념에 끌려가는 현상이 발견된다. 마치 지금 우리가 지금 빚과 취업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희망을 삶의 이정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이런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 도대체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고 우리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결국 벗어날 수 없다면 그냥 이러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버리고 그냥 체념하는 것이 낫다.. 2019. 10. 29.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탓하라!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5/01/27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차라리 그대의 마음을 탓하라! 산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산은 자신의 존재를 열어 밝힌다. 산은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면서 권태를 모른다. .. 2019.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