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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분류없음

고개를 떨군 이성을 위한 변

by anarchopists 2019. 1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0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고개를 떨군 이성을 위한 변


  뭉게뭉게 비구름이 모여들고 낮게 드리워진 저 구름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저 구름들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일까? 이미 아득해져 버린 존재의 기억들은 마치 솜털처럼 물기를 빨아들이듯 존재자를 망각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푸른 들판은 나를 위로하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은 내 마음을 평온케 한다. 저 산 끝 언저리에 내려앉은 역사의 숨결은 나를 재촉하여 부르고 존재의 호명은 나를 흔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몰두하고 이성은 힘없이 좌초하고 만다. 무능력을 탓할 수 없으리만큼 이내 이성은 침묵을 하다못해 묵살을 당하는 것은 더 이상 사회적 이상에 기댈 수 없어 꿈꾸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 비판의 맑은 정신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우리 앞에 펼쳐진 자유이건만 사유의 오만함으로 가두고 난도질을 하려 하는 것은 아둔한 우리의 몰지각한 이성 때문일 것이다. 아니, 이성적 숙고가 아닌 동물적 본능에 따라서 세계를 파악하는 감각적, 이기적 에고가 아니겠는가.



  인식의 날카로움에 감성이 저만치 물러가고 그 감성을 객관화하는 인간의 올곧은 눈이 필요한 세상, 적어도 세계 안에 인간이 있다는 자각은 내 앞에 사물과 대상을 사사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욕망으로 눈이 멀어버리고 이성의 보편타당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 무슨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눈을 감아도 시간의 사태들은 어김없이 내 앞에 존재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응답에 이성과 윤리의 어깨는 성할 날이 없다.



  나의 의무가 엄밀하게 작용해야 할 타자가 사라져 간다. 세계가 모습을 감추고 있다. 감각은 위기를 알리고 있으나 인간의 의식은 늘 느리고 비겁하기만 하다. 존재의 발자국이 다 사라지기 전에 얼른 그 흔적이라도 주어야 할 터인데 기억은 가물거리고 손은 무디기가 짝이 없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삶의 귀퉁이에서 작은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는 것일까? 기대일까? 아니면 습관처럼 쳐다보는 낯익은 시선일까? 바람은 살아서 흔들어 주어야 한다. 바람마저 가지를 흔들어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리라.



  텅 빈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어디 시선 둘 곳을 찾아보지만 세계는 온통 어둡고 캄캄할 뿐이다. 눈은 떠있지만 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망막에 맺힌 상은 그 옛날 나를 품어주었던 계몽이라는 날개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엄습해 오는 공포는 너무나 낯설다. 이성은 그만 머리를 들고 앞으로 나아오라! 이성은 가슴을 펴고 전진하라! 낮게 드리워진 저 산구름은 그저 환영일 뿐이니 용기를 내어 태양을 향해 몸을 곧추 세워라!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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