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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32

국민 안 하겠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09 05:07]에 발행한 글입니다. 국민을 관두겠다. 현대적 개념의 자유주의와 시민 불복종과 혁명의 권리를 주장했던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로크"는 ‘자연법에 관한 시론’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므로 어떤 복종이나 종속도 인정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졌다고 주장했는데, 세속 권력과 교회권력 간에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당시의 유럽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로크는 자연상태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안정되며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계약서에 서명하듯이 "내가 자유와 권리를 일부 양도할 테니, 정부는 법을 세우고 질서를 바로잡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계약조건으로 국가를 만들고 정부를 승인하여 권력자에게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국가가.. 2019. 10. 29.
나홀로 볼링-자본을 위한 사회, 이것을 넘어서 관계-예술의 공동체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12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나홀로 볼링-자본을 위한 사회, 이것을 넘어서 관계-예술의 공동체 로버트 퍼트넘은 1960년대 이후 미국사회의 사회적 자본의 쇠퇴를 보면서 해당 논문을 쓰고 단행본을 마무리한다. 당시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쟁의식 바탕에서 자라난 세대들이 사회에 나오면서 기존의 단체들이나 조합들이 무너지는 현상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분명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적절했고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 또한 타당하다고 본다. 또 이를 현대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로 보기에 우리가 마주한 현상들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철저히 ‘당장’과 ‘자신’을 위한 사회적 인식이 다분해졌고 ‘미래’나 ‘후손’을 위한 걱정은 배부른 소리가 .. 2019. 10. 29.
스피노자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정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스피노자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정념 우리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사회에 태어났고 부모, 친척, 사회, 국가 등에 태어나졌다. 결코 현재 상황을 우리가 만들지도 선택하지 않았으며 환경 또한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개인들은 그저 그 상황에 지배적인 담론이나 정념에 끌려가는 현상이 발견된다. 마치 지금 우리가 지금 빚과 취업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희망을 삶의 이정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이런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 도대체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고 우리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결국 벗어날 수 없다면 그냥 이러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버리고 그냥 체념하는 것이 낫다.. 2019. 10. 29.
무소유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27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소유 현대인들은 수많은 것들을 소유하면서 살아간다. 이들에게 소유의 개념은 자명한 것이어서 마치 신의 계시처럼 받들고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인 마냥 여기고 있다. ‘니꺼’, ‘내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있어 모든 것을 이러한 관점으로 설명하고 판단한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것들에 무관심해지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편협해진다. 결국 모든 관심은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가에 집중되어 현대인들은 이해관계 이상의 관계를 가지기 어려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이젠 그러한 자신마저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존재가 결정되어지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특정 이미지를 자신에게 소유로 투영함으.. 2019. 10. 29.
농부, 그리고 자본주의와 계급분화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10/27 06:12]에 발행한 글입니다. 농부, 그리고 자본주의와 계급분화 WTO(世界貿易機構, 1993), FTA(自由貿易協定, 1995) 이후 한국농촌과 농업은 위축되고 망해가고 있다. 대한민국라는 국가의 단견적이고 미래적 경제가치에 무지(無智)한 농업원칙외적 강제행위(정책)로 농촌은 도시화되고 농민은 자본농/기업농으로 억지춘양 노릇을 하고 있다. 농촌의 도시화는 농촌을 생산지가 아닌 소비지로 전락시키는 짓거리다. 곧 농촌이 자본주의의 상업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농업의 자본화, 기업화로 농민들도 자본농과 기업농으로 타락하면서 도께비 춤을 추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농촌의 농민들은 사장님 아닌 사람이 없다. 죄다 사장(社長)이다. 곧 기업농의 사장이라는.. 2019.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