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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전미혜작가 단상

국민 안 하겠다.

by anarchopists 2019. 10.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09 05:07]에 발행한 글입니다.



국민을 관두겠다.

현대적 개념의 자유주의와 시민 불복종과 혁명의 권리를 주장했던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로크"자연법에 관한 시론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므로 어떤 복종이나 종속도 인정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졌다고 주장했는데, 세속 권력과 교회권력 간에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당시의 유럽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로크는 자연상태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안정되며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계약서에 서명하듯이 "내가 자유와 권리를 일부 양도할 테니, 정부는 법을 세우고 질서를 바로잡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계약조건으로 국가를 만들고 정부를 승인하여 권력자에게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국가가 국가로서, 정부가 정부로서 존재하는 이유와 원인, 원리를 따질 수 있으며, 만약 국가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승인해준 권력으로 국민을 성가시게 하거나 착취하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국가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 되므로 계약을 위반한 개인이 정부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하듯이 거꾸로 계약을 어긴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계약의 당사자인 개인들은 힘을 합쳐서 정부를 뒤집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혁명)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국가의 권력 행사는 국민의 재화와 이익을 보호하는 것에만 국한되어야 하며 어떤 정부도 개인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계몽적 영향이 큰 그의 사상들은 프랑스 인권선언과 미국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으며 서구 민본주의의 근본 사상이 되었습니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라"에 나오는 '우에하라 이치로'는 철저하게 국가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입니다. 이 소설은 우에하라 씨의 육 학년 아들 지로군이 화자의 시점에서 아버지 우에하라가 공권력의 횡포와 억압에 대항하여 의견과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적인 삶을 바라보며 차츰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에하라 씨가 국민의 의무인 국민연금 납부를 거부하여 집에 찾아온 구청 여직원과의 다툼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구청 직원은 국민연금 고지서를 건네면서 장기 요양 보험료도 내라고 하니, 우에하라 씨는 그럴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여직원이 국민의 의무라고 설명하자, 우에하라 씨는 소리칩니다.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소!"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사는 데서 그냥 살면서 국민만 안 하겠다는 그의 외침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해주는 것도 별로 없이 세금만 뜯어가는 게 국가라면, 그런 국가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국민 따위 관두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이 아냐. 오래전부터 국민을 관둘 생각이었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그는 국민이길 거부하면서 자녀들에게도 국가에 묶여 국민으로 사는 법만 배우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학교의 의무 교육 따위 받지 말기를 설득하며 자신은 프롤레타리아이므로 부르주아와 손잡지 말라고 합니다.

우에하라 씨는 그의 아들 '지로'에게 이 세상에는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만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는데, 노예제도와 공민권 운동 같은 평등한 구조는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그중의 한 사람임을 자처합니다.

그는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리에 편승하여 우민(愚民)으로 남기를 자처하는 시절에 자신의 소신을 위해 안정된 생활을 망설임 없이 걷어찬 매력 있는 남자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천부적인 자연권을 갖고 태어나지만, 예정된 수순대로 사회라는 조직에 편입이 되면서 마치 쇠사슬에 묶이듯이 사유재산 불균형이라는 불평등한 상태에 처하게 되고,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적 신분의 불평등으로 당연스럽게 사라지고 사람들은 돈을 벌고 지키는 데에만 급급해하는 물질만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본이 목숨이 되고 전부가 되는 이 시절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로크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고 시민 불복종을 외칠만한 순전한 국민도 못되고, 우에하라 씨처럼 국가와 자본가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여 국민의 역할 따위 집어치울 용기도 없는 까닭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꼬리를 떼어내는 도마뱀처럼 스스로를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자본의 규모가 커질수록 대다수 사람들의 빈곤은 심화되고 특정 부류의 부는 점점 극대화 되어가고 있지만 자본으로 인한 구조적 모순에 저항할 의지마저 잃어버린 채 부의 편중으로 인한 특정 계층의 향유를 당연한 계급 차이로 수긍하게 되어버린 참담한 상황은 어느새 이 시절의 당연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국민 관두고 싶습니다.(2014. 6.6, 전미혜)

전미혜 시인은
전미혜 선생님은
광주에서 '종이사랑'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과 문화센타 등지에서 종이공예를 강의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편 시인이다. 탁월한 시상과 글맛으로 시를 쓰고 있으며, 빛고을에서 유명한 시인이다. (그는 '평등사회만들기' 운동가로 학연, 지연, 학력 등을 통한 연줄 사회를 배척한다. 하여 일체 그런 이력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아래사진은 헤럴드 경제에서 퍼온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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