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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자본을 넘어 정신세계로의 상승과 이성의 시대(2)

by anarchopists 2019. 10.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7/14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자본을 넘어 정신세계로의 상승과 이성의 시대(2)



종교는 그러한 희망을 만들어주는 역할은 합니다. 종교는 인간 자신과 삶을 자각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력으로 라는 점입니다. 의식적 정신, 자기 의지라는 겁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내가 노력해서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그런 폐단이 많은데 신앙이야말로 자기 스스로 해야지 남의 것을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처음에는 모방해서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끝까지 모방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모방하면 그것은 죽은 것이지 산 것이 아닙니다.”(함석헌, 앞의 책, 361쪽)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가 맹목적으로, 자신의 의지도 저버린 채 모방으로 치닫게 되면 안 됩니다. 함석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모방은 모방으로 끝나야지 그 자체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종교는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지탱이나 유지가 아닙니다. 초탈과 돌파(breakthrough)입니다. 자신의 삶을 변형시키고 형태를 바꾸는 작업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상유지(status quo)가 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종교는 존재 변화입니다. 자본의 지배와 물질 중심의 문화 현상(현실)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하고, 자본의 신비화에 대항한 종교 창시자의 영성을 내면화하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한 발 더 나아가서 거기에 머물지 말고 신앙적 이성에 호소하고 자본의 공포와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자기 정신의 고양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흡혈귀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잡혀서 피를 빨리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그 힘이 은폐된 강력한 위협을 무화(無化)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초월자에 대한 근본성찰에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흡혈귀의 그것보다 더 두려워할 때에 죽음의 파국을 막을 수 있습니다. 흡혈귀의 생존 욕망은 인간 자신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자본을 숭고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자신의 내면적 이성의 숭고함이 파괴된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욕망하는 내가 무(無)가 되면 흡혈귀 역시 그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낼 대상을 찾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유의 최고의 자리가 자기의 자유를 부정하는 데 있다는 것, 즉 내가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무력하게 내버리는 것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비게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하느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함석헌, 위의 책, 361)

함석헌이 자신을 무력하게 내버려두라는 것은 자본의 숭고함과 신비함을 무력화시키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를 무력화시키고, 내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잠재울 때 타자의 욕망의 흐름도 와해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단순히 종교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인간의 본래성, 즉 자신을 무화시키는 것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라고 종용합니다.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항상 인간의 본질을 깨닫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워야 초월자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숭고함은 인간 바깥의 대상이나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흡혈귀적 욕망을 버리면, 내 안의 숭고 그 자체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의식의 바깥에 있는 대상을 욕망하려하지 말고 도덕적 이념의 근원인 자기 내면 정신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말합니다. “참 죽음은 자기를 죽이는 것, 스스로 기쁘게 죽는 것이어야 참 죽음인데 죽음을 죽음으로 알아서는 죽지 못합니다. 참 생명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함석헌, 위의 책, 361쪽) 죽어도 죽지 않은 길, 그것만이 우리가 흡혈귀 드라큘라를 멸종시키고, 타자의 권력 의지가 지칭하는 악마들의 종족까지도 의심하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찰로 경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신세계로의 상승”만이 우리의 참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은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이나 물질은 종교의 대립적 욕망입니다. 그 욕망은 인간을 계속해서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인간은 교화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프랑코 모레티의 말을 빌린다면, “공포의 변증법”입니다. 자본의 공포가 인간을 위협하며 죽이려 할 때에 거기에 굴욕적으로 도피하거나 정신적 무릎을 꿇게 되는 공포야말로 더 큰 공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 공포를 근본적으로 무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토대는 무엇일까요? 종교적 근본정신의 회귀입니다. 설령 진화심리학들이 “종교는 하나의 진화적 적응이 아니라, 다른 보편적인 심리적 적응들에 우연히 딸린 부산물로서 종교본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와 ‘너희’를 엄격하게 구별하여 내 집단을 챙기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동맹심리(coalitional psychology)가 종교적 헌신을 부수적으로 낳는다.”(전중환, 앞의 책, 217-220쪽)고 할지라도, 함석헌이 말하듯이, “우리의 양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를 먹음으로 산다.”(함석헌, 앞의 책, 362쪽)는 것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적 정신의 향유, 종교적 정신에 의한 저항, 종교적 사랑, 종교적 지혜, 종교적 자유가 자본의 환상과 강요를 부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정신의 양식(糧食)으로 먹었던 것, 성인(聖人)들이 생각했던 것, 성인들의 정신적 자취가 새로운 사회체를 구성함으로써, 영원히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서사의 발생처, 기원, 발생자의 그림을 그리는[Bildung, 교양] 서사의 체계가 온전히 체득되고, 종교 서사의 세계와 나의 생활세계가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것, 정신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흡혈귀의 양식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양식.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 안도 다다오의 작품(빛의 교회)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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