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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가상(假象)의 생철학적 기적과 실존적 의미 서사(2)

by anarchopists 2019. 10.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7/09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가상(假象)의 생철학적 기적과 실존적 의미 서사(2)



“현대의 문제를 순 경제 정치적으로만 생각해서는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문제가 문제되는 근본 까닭은 사람은 물질로만은 살 수 없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인간이 된 점은 도덕적인 것이 그 인격의 핵심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함석헌, 앞의 책, 357쪽)
오늘날 삶의 질서와 척도는 경제적 힘과 가치, 즉 돈에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계의 근본 질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초월자에게 물질적 축적을 위한 발원을 하기 마련입니다. 물질적인 축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물질적 질서에 편승하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빅토르 프랑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꺼리를 던져줍니다. “사람에게는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소유하는 진정한 의미는 돈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 소박한 내 생각이다.”(Viktor E. Frankl, 앞의 책, 184쪽)


돈을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것을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가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적인 질서는, 인간적인 삶은 도덕적 가치와 인격에 있습니다. 모든 삶은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질적 토대 위에서 도덕이나 인격이 설 수 없습니다. 도덕과 인격의 구조 속에서 나눔과 베풂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도 다음과 같은 비판적 입장을 견지합니다. “사회주의는 제게 불평등과 불의, 억압, 차별, 모욕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부정에 대한 고양된 감수성을 의미합니다. ‘사회주의적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저 모든 잔인무도함에 반대하고, 그에 맞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먼저 노동력 구매에 필요한 돈이 부족할 경우 자본을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 구매 가능한 노동력이 구매 가치가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즉 작업 현장의 압력을 이겨내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제대로 음식을 섭취하며, 기술에 숙련되어 있고 품행도 방정한 등 산업에서의 고용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구비해야 하지요. 국가가 관리하는 보조금이 없다면 아무리 잘 나가는 자본주의 고용주라도 이 모든 지출을 거의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비용을 떠안았다가는 노동력 고용 비용이 기준을 훌쩍 뛰어넘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입니다.”(Z. Bauman, 조형준 옮김,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새물결, 2014, 32-33, 45-46쪽)


빅토르 프랑클의 다음의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니힐리스트들의 신랄한 냉소와 냉소주의자들의 니힐리즘에 반대한다... 그 악순환의 고리(circulus vitiosus)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 즉 폭로하는 자를 폭로하는 것... 폭로를 멈출 수 없는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진정성을, 즉 인간의 인간적인 것을 평가절하하는 무의식적인 경향만이 폭로된다.”(Viktor E. Frankl, 앞의 책, 196-197쪽) 인간적 세상을 위한 폭로. 폭로는 새로운 질서로의 편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기적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기적이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가치, 인격적 성숙을 우선으로 하는 인간적인 세상을 이루게 될 때, 그렇게 인정, 서술할 수 있습니다. 초월자의 역사 개입을 통해 시공간의 잉여를 확보함으로써 삶의 허무와 공백을 메우는 것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마술이나 요술도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공백은 존재의 낡은 질서 속에 계속 머무르는 것입니다. 낡은 질서는 바우만이 말하는 “인간 쓰레기”가 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기적을 받아들이는 심리는 나의 판단을 완전히 버리고 순전히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생명의 약진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함석헌, 앞의 책, 358쪽) 기적은 사적 이기심이나 이익을 벗어던지고 초월자의 뜻에 맡길 때 일어납니다. 이른바 “생명의 약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적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생명이 계속 살도록 맡기는 일입니다. 생명은 거듭 사는 것입니다. 생명은 쉬지 않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인생을 살라고 생각하라. 첫 번째 인생을 잘못해서 모두 망쳤는데,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도 지난번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라. 실제로 책임감은 그런 가상의 자서전을 거쳐 진짜 자신의 삶으로 옮겨 가게 된다.”(Viktor E. Frankl, 앞의 책, 193쪽) 의미의 연속, 의미의 질서가 깨지면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하나의 질서를 깨고 또 다른 질서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적은 그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실존으로의 도약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적 기적의 서사 구조나 종교 기적 서술이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실존의 변화입니다.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실존적 인식의 변화가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을 달리 실존적 의미 구조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 나의 의미, 관계적 의미를 새롭게 볼 것이냐에 따라 초월자의 뜻이 존재한다는, 내가 지금 존재해야 하는 초월자의 뜻/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럴 때 초월자의 뜻에 자신의 실존을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헤럴드경제, 2012. 10. 16. 작가 오원배의 작품)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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