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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예술전공자의 현실, 암울 자체이다

by anarchopists 2019. 12.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1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

떠오르는 별들이 모인 명문 학교. 예술적인 감각이나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 공부한다는 학교로 유명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지난 몇 개월간 4명이 자살을 했다. 그런데 학교 측이나 관계자들이 쉬쉬하는 분위기인 듯싶어 안타깝다. 나는 그들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보며 ‘아. 똑똑한 별들이 빛을 발해보지도 못하고 떨어졌구나!’ 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이 죽은 이유가 “앞날이 막막해서. 이 길에서 밥 먹고 살 수 있나!” 란 절망감이었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이 젊은 예술인들이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죽은 학생 네 명 중 둘은 영상원 방송영상과에, 나머지 둘은 미술원 조형예술과에 재학 중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피디(PD)나 감독지망생들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그들은 입학할 때의 창대한 꿈은 사라지고 졸업할 즈음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생각에 잠 못 이룬 날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택한 마지막 길은 안타깝게도 죽음이었다.

한예종 전규찬 교수(영상원)의 말을 인용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예술이 소수 천재적인 사람의 업적으로만 기억되죠. 그런데 현실은 아니라는 거죠. 집단 노동과정이 수반됩니다. 당장 영화를 보세요. 감독과 배우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소위 말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이 학교를 나온 아이들 대부분의 미래는 영화 현장 스태프죠. 비정규직에다, 박봉에 시달리고, 미래는 불안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죠. 교육받은 내용과 현실 사이에서 엄청난 괴리를 느끼게 돼요. 결국 옛날 학생들처럼 연대할 줄도 모르고, 옛날처럼 분명한 적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의 저항이 자살로 나타나고 있어요. “

전 교수의 말대로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생각 했을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앞서 간 선배들의 모습 또한 면밀히 살폈을 것이다. 몇 몇 잘 나가는 선배 빼고는 대부분 주변인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며,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느꼈을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길과 '밥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시달렸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전공자의 현실은 암울 그 자체다. 예술전공자 상당수는 정규직 취업을 하지 못한다. 고정 수입이 없고 4대 보험에서 제외되며, 그나마 있는 수입수준도 매우 떨어진다.

지난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영화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영화산업노동자들의 평균 연소득은 1221만 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회사대표(평균소득 4186만 원)가 포함돼 나온 결과로, 감독(1518만 원) 이하의 현장 스태프로 한정할 경우 평균소득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문인들 또한 일 년에 원고료 백만 원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작품을 써 놓아도 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없다. 매년 신춘문예 출신에 각 문예지마다 신인 작가는 등단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다.

음악 전공자 역시 마찬가지다.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하지 못한다면 음악 강사로 여기저기 보따리장수를 하는 게 현실이다. 미술 전공자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학원 강사로 나가 코흘리개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있는 집안의 경우 유학을 택하긴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좁다는 얘기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수많은 예술가들의 목을 조여 왔다. 예술가에게 고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먹고 입고 써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 생활은 해결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요즘 남산도서관에서 서울 시내 학교에서 문학적인 재능이 있다고 뽑혀 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분명 문학적인 천재성을 갖고 있었다. 문학적인 영감도 반짝이고 책을 깊이 있게 읽는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아주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저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부모님이 돈 못 번다고 절대로 안 된다는데 어쩌죠?”

이 질문에 나는 한동안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말할 수도 없기에. 아픈 현실이다. 이 땅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가 아니면 과연 안 되는 것일까. 메아리쳐 오는 이 질문 앞에 누군가에게 목 놓아 답을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다시 한 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서 사라진 젊은 예술가들의 명복을 빈다.(2011. 10.12,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그림은 네이버 카페 combscomic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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