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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포장마차 아줌마의 명언

by anarchopists 2019. 12.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2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포장마차 아줌마의 명언!

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거리에는 어깨를 옹송그린 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찬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텅 빈 가슴이 어머니 뱃속처럼 허해지는 저녁이었다. 마침 몇 몇 글쟁이들과 출판인들이 홍대 앞에서 만나자는 제의
가 들어왔다.

“어디로 갈까요?”

그야말로 번개처럼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랜만에 포장마차 어때요?”

일행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행은 따끈한 어묵 국물에 순대와 튀김 몇 가지를 시킨 채,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포장마차 주인의 얼굴이 예사롭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듯 우울해 보였다. 왠지 웃고 떠드는 게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아줌마, 장사는 어떠세요? 더운 여름보다는 찬바람 부니 조금 낫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넸다.

“그렇죠…….뭐…….손님은 없어도 좋은데 단속이나 좀 덜했으면 좋겠어요.”

아줌마 얼굴에 드리운 어두움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선거철이라 조금 날 줄 알았는데 아니로군요.”
“말도 마세요. 오세훈 시장 들어서면서부터 단속반에 시달린 걸 생각하면 몸서리 쳐집니다. 오 시장 되고부터 나 같은 서민은 더 죽어라, 죽어라 못 살게 되었어요. 미관상 보기 싫다고 포장마차 모두 쫓아내서 여기 뒷골목까지 온 건데. 여기도 편치 않아요. 허구헌 날 단속반이 뜨니…….살 수가 있겠어요?”

아줌마의 깊은 한숨에 찬바람보다 더 가슴이 시려왔다.

“포장마차 해서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내며 길바닥에서 산 세월이 삼십년이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어요. 여기 오는 손님들도 예전과는 달라요. 누구 하나 선심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묵 한 개씩을 먹어도 각 자 돈을 내지요. 예전에는 근방 회사에서 간식으로 가끔 떡볶이며 순대를 사 가곤 했는데 요즘은 일체 없어요.”

포장마차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서민 생활이 얼마나 힘든 지 피부로 느껴졌다.

“이번에 서울 시장 정말 잘 뽑아야 해요. 특히 우리처럼 가난한 서민은 더욱 그렇지요. 이번에도 잘못 뽑아놓고 후회하면 안 되죠.”

아줌마의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어떤 정치가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피부로 와 닿는 말이랄까.

예전에는 ‘나도 중산층’ 이라는 말을 누구도 거리낌 없이 했다. 그건 비록 돈이 많지는 않아도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도 중산층’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줄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나는 빈민층’이라는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날이 가면 갈수록 가벼워지는 주머니와 늘어가는 부채를 생각하면 ‘나도 중산층’이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서민은 허리끈 동여매고도 절절매는 세상이지만 부자는 콧노래 부르며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리며 사는 세상이다.
이런 와중에 ‘1억이 넘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피부샵에 다니는 시장 후보’에 대한 기사를 접하는 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다. 그런 후보가 서민 정책, 운운하는 것을 보면 분노를 넘어 내가 비참해 보이기까지 한다. 같은 세대를 사는 한 여성으로서 그런 피부샵이 있다는 것보차 모르고 산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면 너무 자존감 떨어지는 발상일까. 아무튼 기분이 묘했다.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더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요. 왜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이 엉뚱하게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선거만은 정말 나 같은 서민을 생각해 주는 시장을 뽑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집단 자살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라니까요.”

이 말을 하는 아줌마의 형형한 눈빛이 빛났다. 맞는 말이다. 아줌마의 말에 더는 보탤 것이 없는 지당한 말씀이다.

서울 시장, 잘 못 뽑아놓고 후회할 일은 이제 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 시민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마지막 카드는 바로 서울 시민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2011. 10.23,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httpcafe.naver.comslrdica43314(아래)와 통계청 자료를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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