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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구청장들, 의류수거함은 쓰레기통이 아니오

by anarchopists 2019. 12.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23 07:48]에 발행한 글입니다.


의류수거함일까?
아무거나 버리는 쓰레기통일까?

얼마 전 일이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듯 헝클어지고 부스스한 머리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뒤뚱거리며 앞서 걷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뒤를 따르던 나는 희한한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발길을 멈춘 곳은 재활용용으로 설치된 의류수거함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마치 작업 개시 직전의 도둑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탐색 중이었다. 나는 왠지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왠지 찜찜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뿔싸. 그녀가 그토록 무겁게 들고 온 가방 속에서 나온 건 재활용 옷이 아니라 온갖 허접쓰레기들이었다. 너덜거리는 운동화에서부터 옷걸이는 물론 검은 봉지마다 무엇인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녀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쓰레기를 수거함 속으로 마구 쑤셔 넣고 있었다. 그녀가 의류수거함으로 집어넣은 것 중에 과연 얼마나 재활용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별로 건질 만한 물건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날 의류수거함 속으로 자신의 양심을 마구 던져 버리는 아주머니를 보며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오늘도 여전히 동네 의류수거함은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의류수거함 관리를 놓고 싸움까지 벌어질 정도로 사업성이 좋다는 소문도 있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 설치한 의류수거함을 관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고도 했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의류수거함 속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을 잘 정리해서 동남아 등 구제시장에 팔면 만만치 않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 의류수거함은 볼품사나운 쓰레기통으로 변신하고 말았다. 온갖 광고 문구들로 가득 찬 스티커들로 난장판이고, 여름에는 그 곁을 지나면 음식 냄새까지 진동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동네 입구에서 의류 수거함을 발견하면 절약의 상징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흉물처럼 보여 심란하다. 왜 이렇게 의류수거함이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을까. 그건 내가 목격한 것처럼 양심을 저버린 시민들에게도 일차적인 문제점은 있을 것이다. 쓰레기봉투 값 아끼자고 공공의 적이 될 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찔림조차 없는 사람들이 비단 그 아주머니뿐일까. 아마도 나를 비롯해 누구라도 단 한번이라도 그런 유혹을 느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의류수거함의 관리 체제가 너무 소홀하다는 점이다. 주무부서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의류 수거함에 대한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 싶다. 지난 여름에 의류수거함에서 너무 음식 썩는 냄새가 나서 수거함에 붙은 관리자에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바쁘기도 하지만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더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 후로도 의류수거함은 쓰레기통처럼 방치되고 있다.

내게 쓸모없는 물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아나바다’ 운동일 것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의류수거함이 흉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심히 안타깝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을 쓰레기통으로 착각하는 몰상식한 행위를 하는 아주머니가 더는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개인의 잘못된 양심이 온 국민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서 측의 무심함 또한 만만치 않아 씁쓸하다. 시작할 때의 그 열정과 홍보의 열기만큼 꾸준한 관리 및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다고 온 동네마다 의류수거함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담당 부서가 나서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2011. 11.22,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코리아헤럴드 2011. 9.21일자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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