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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칼럼

책방이 사라지는 문화거지의 나라

by anarchopists 2019. 12.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27 08:52]에 발행한 글입니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는 말은 이미 구닥다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책방보다는 오색찬란한 단풍의 유혹을 따라 관광 열차에 몸을 싣기 바쁘다. 열차 안에서라도 시집을 읽는 낭만적인 모습을 볼 수 있나 싶어 두리번 거리지만 아니다. 그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멍하니 밖을 응시하는 사람들 뿐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 일 년에 단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통계를 보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통계가 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는 문화의 거리라 일컫는 대학로에서만 거의 30년을 살아 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대학까지 마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사를 한 적이 없기에 대학로의 변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만 해도 대학로에는 전문 책방을 포함해 서 너 개 정도의 책방이 있었다. 아이들 손 잡고 책방 나들이 가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나가보니 단골 책방이 문을 닫아 버렸다. 셔터가 내려진 책방 앞에서 나는 너무 허망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몇 년 새에 대학로에는 책방이 단 한 곳도 없게 되고 말았다. 뒷골목 으슥한 곳에 작은 책방 한 군데가 있긴 하지만, 그 곳은 단골손님들만 찾는 곳이다.

책방이 있던 자리에는 술집이 들어섰다. 문화의 거리 대학로라면서 정작 대학로에서는 문화의 숨결을 느낄 만한 곳이 없다. 그저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는 유흥업소만 늘 뿐이다. 책방 주인들은 턱없이 비싼 월세에 비해 수익은 쥐꼬리라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이리라.

비단 대학로만 책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터넷 서점이 할인가로 책을 판매하면서부터 동네 작은 책방은 기를 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형 수퍼에 밀려 구멍 가게 문 닫듯 작은 책방 역시 견뎌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 되는 장사는 걷어치우는 것이 상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많았다면 이토록 책방이 자취를 감추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먹고 살기도 힘든 데 책 살 돈이 어디 있냐고. 돈이 없어도 책은 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책은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이 바로 그 곳이다. 내 돈 내고 책을 안 사도 무슨 책이든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이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요즘은 동사무소나 마을금고 등에도 비록 작긴 하지만 책을 비축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남산도서관에서 문학 영재들을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서관의 면면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남산도서관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서관 답게 성인을 위한 문학 강좌는 물론 인문학 공부하기, 작가와의 만남, 숲해설가를 통한 자연 체험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회원이 원하는 책은 신청만 하면 새로 주문해 놓는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회원이 보고 싶은 책을 도서관이 구입해서 빌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 역시 찾는 사람만 찾았다. 일반 시민들은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조차 인식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먹고 살기 힘든 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냐고 큰소리까지 치며. 이해는 된다. 그러나 독서는 먹고 사는 것 이전의 영혼을 살리고 죽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라도 ‘책 읽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국민 운동이 불같이 일어 났으면 좋겠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는 말은 진부한 것 같지만 영원한 진리다. 책을 통해 지혜와 명철은 물론 사업의 길을 찾아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내 주위에는 일찍이 명퇴를 한 후, 걸음마 걷는 아이처럼 책 읽는 훈련을 쌓은 뒤, (그 분은 밥만 먹으면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곤 했다.) 나중에는 글 쓰기까지 시도하더니 급기야 작가로 등단까지 했다.

머리에 살구꽃은 하얗게 피었지만 그 분은 노년의 쓸쓸함이라든가, 무료함에 젖어 있을 새가 없어 보였다. 늘 책을 가까이 하면서 청년처럼 사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운 분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 가을이다.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계절 이 가을에, 많은 이들이 책 속으로의 깊은 여행을 떠나길 간절히 빈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한 몽테뉴의 말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말이다.
(2011.10.27,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중 사진 위는 네이버 블로그(책과함께 하는 여행)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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