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은퇴자들의 허망한 눈빛,
그들만의 문제일까
그들만의 문제일까
내 고향은 경기도 양평의 끝자락에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아직도 물을 끓이지 않고도 마실 수 있을 만큼 청정 지역으로 유명하다.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면 고향을 찾는다. 예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는데 요즘은, 중앙선 복선전철을 이용한다. 덕분에 시골에 내려 가 가랑잎처럼 말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친정어머니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복선전철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중앙선 전철을 탈 때마다 안쓰러운 풍경을 목격하게 되는 건 유감이다. 전철 안에 탄 손님들은 대부분 등산객이다. 중앙선이 어느 역이든 산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일 대낮에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왠지 가슴이 아릿해진다.
아직은 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나이. 그렇다고 중년으로 보기엔 너무 애매한 은빛 물결 출렁이는 머리. 새로 마련한 듯한 깔끔한 등산복 차림. 얼핏 들리는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도 금방 퇴직 한 오십 대 후반 정도의 남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나마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전철이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네나 나나 낙동강 오리 신센데 이렇게 산이라도 오를 수 있으니... "
몇몇 남자들이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락없이 갓 은퇴한 중노인들이었다. 잠시 후, 말을 마친 사람이나 듣던 사람 모두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무도 허망한 눈빛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결혼 해 자식 낳아 키우며 오십 중반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오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은퇴. 그 순간부터 원하지 않아도 노년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이 땅의 수많은 가장들. 가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정작 자신을 위해선 아무런 준비 없이 현역에서 물러난 남자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인생 제 2막을 향해 또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방비 상태로 은퇴를 하게 된다. 오죽하면 중앙선 복선전철에 탄 삼분의 이 정도가 노년도 아닌 그렇다고 중년도 아닌 중노인들일까. 참으로 서글픈 풍경이었다.
저들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 주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묻고 싶었다. 졸업하고 3,40년 넘게 자신의 분야를 일궈 온 인재들을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내 몬 이 사회는 과연 건강한 것일까.
열심히 살아 온 저들을 등산복을 입혀 전철로 내몰기 전에 획기적인 계획안을 세워 인생 제 2막을 시작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아주 시급히, 그리고 절실한 문제다. 우린 그동안 노후정책에 대해 무성한 말잔치만 벌여 온 것 같아 안타깝다.
은퇴를 한 신사가 공공 사무소에 가 서류를 떼는데 직업란에 '무직'이라는 단어를 써 놓고 한동안 멍했다는 말이 특정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노후대책을 개인의 문제로만 떠미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은퇴 후에 연계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일본처럼)이 시급할 때다. 청년 취업 대책 못지않게.
더는 고향을 내려 갈 때 햇볕 쨍쨍한 평일 날 복선전철에서 허망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들의 얼굴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일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은퇴자들은 산을 찾는 즐거움보다는 무엇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재취업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일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권세 높은 정치인들 또한 나이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2011.2.8., 박경희)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다움에서 따온 것임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면 고향을 찾는다. 예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는데 요즘은, 중앙선 복선전철을 이용한다. 덕분에 시골에 내려 가 가랑잎처럼 말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친정어머니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복선전철이 고맙기 그지없다.
아직은 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나이. 그렇다고 중년으로 보기엔 너무 애매한 은빛 물결 출렁이는 머리. 새로 마련한 듯한 깔끔한 등산복 차림. 얼핏 들리는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도 금방 퇴직 한 오십 대 후반 정도의 남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나마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전철이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자네나 나나 낙동강 오리 신센데 이렇게 산이라도 오를 수 있으니... "
몇몇 남자들이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락없이 갓 은퇴한 중노인들이었다. 잠시 후, 말을 마친 사람이나 듣던 사람 모두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무도 허망한 눈빛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결혼 해 자식 낳아 키우며 오십 중반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오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은퇴. 그 순간부터 원하지 않아도 노년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이 땅의 수많은 가장들. 가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정작 자신을 위해선 아무런 준비 없이 현역에서 물러난 남자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인생 제 2막을 향해 또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방비 상태로 은퇴를 하게 된다. 오죽하면 중앙선 복선전철에 탄 삼분의 이 정도가 노년도 아닌 그렇다고 중년도 아닌 중노인들일까. 참으로 서글픈 풍경이었다.
저들에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 주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묻고 싶었다. 졸업하고 3,40년 넘게 자신의 분야를 일궈 온 인재들을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내 몬 이 사회는 과연 건강한 것일까.
열심히 살아 온 저들을 등산복을 입혀 전철로 내몰기 전에 획기적인 계획안을 세워 인생 제 2막을 시작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아주 시급히, 그리고 절실한 문제다. 우린 그동안 노후정책에 대해 무성한 말잔치만 벌여 온 것 같아 안타깝다.
은퇴를 한 신사가 공공 사무소에 가 서류를 떼는데 직업란에 '무직'이라는 단어를 써 놓고 한동안 멍했다는 말이 특정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노후대책을 개인의 문제로만 떠미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은퇴 후에 연계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일본처럼)이 시급할 때다. 청년 취업 대책 못지않게.
더는 고향을 내려 갈 때 햇볕 쨍쨍한 평일 날 복선전철에서 허망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들의 얼굴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일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은퇴자들은 산을 찾는 즐거움보다는 무엇이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재취업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일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권세 높은 정치인들 또한 나이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2011.2.8.,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다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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