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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6

질병 이후 격변의 시기, 인간의 망각과 애매모호한 사유: 자연이 답입니다! 질병 이후 격변의 시기, 인간의 망각과 애매모호한 사유: 자연이 답입니다! 이 마뜩치 않은 상황에 무릎을 꿇었다는 데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메시지에 내려앉은 인간 이성, 또 다른 하나는 미생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존재. 모호한 인간의 이 스탠스를 분석하고자 하는 필자 자신도 혼란스럽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미생물로 인해서 이동은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매우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항변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득도를 하여 인간사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파했던 부처의 혜안을 뒤로 하더라도, 우리가 언제부터 고.. 2020. 5. 5.
서평: Paolo Giordano, 김희정 옮김,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은행나무, 2020. 서평: Paolo Giordano, 김희정 옮김,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은행나무, 2020. “저기, 이거 혹시 불법 아닌가요?” “아이, 아저씨 말하면 안 되는데……” “아니, 그래도 좀 ……” “무슨 불법이요?” “저, 그러니까 뭐 국보법 같은 거……” “그런 거 생각하면 사랑 못 하십니다.” “그건 그렇지만 …… 전 자꾸 국가와 뭘 하는 거 같아서……” “그러니까 눈을 뜨지 마시라는 거예요. 눈 감으면 국가도 싹 사라진다니까요.” “예……” 이기호, 「국기 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2」,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문학동네, 2006 중에서 코로나19는 세계화의 문제이며, 숫자는 관계를 읽어야 할 지표이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화가 진행된 시대는 국경도, 지역도, .. 2020. 4. 22.
퍽퍽한 한해였다- 정신을 진화시키자.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을 탈구축하자!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을 애초에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또는 인식하기 위한 선험적 감성의 형식이라는 말한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I. Kant)이다.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미 공간과 시간이라는 보편타당한 형식이 주어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2010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떠한 특수한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한국이라는 공간 혹은 세계라는 공간이 없이, 2010년이라는 시간이 없이 사건들을 파악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유는 공.. 2020. 1. 4.
생각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묻다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0/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묻다 “사유한다는 것만큼이나 더 큰 불안이 오늘날 어디 있겠는가?”_마르틴 하이데거 요즈음 서점가에는 대선을 앞두고 각 대권 후보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이른바 정치가의 ‘생각’을 풀어 놓은 책들이 인기다. 후보로 나온 것도 주목을 받는 터이지만 그들의 정치관을 활자로 인쇄한 책이 특수를 누리고 있으니 더욱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대중들이 책의 표제어가 드러내주는 정치인들의 생각과 인간됨을 읽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표심을 품고 있는 대중들 자신의 “생각”이다. 대선 후보자들의 생각이 자리 잡은 터를 간파하고 유.. 2019. 11. 11.
희생양 메커니즘과 정의(正義) 사유(思惟)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5/2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희생양 메커니즘과 정의(正義) 사유(思惟)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는 존재입니다(함석헌, 함석헌전집, 영원의 뱃길 19, 한길사, 1984, 302쪽). 어쩌면 모든 생명적인 것들(숨탄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함석헌이 말하고 있는 것이 종교적인 의미에서 영혼의 생명일 수도 있고, 그것을 넘어선 다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오히려 함석헌의 생명적인 것은 다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영혼의 생명성만 아니라 생명적인 것들의 본질인 본래적 생명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 살고자하는 욕구, 그것은 단지 영혼의 사안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명적인 것의 직접적 현상은 무엇일까요? 말.. 2019. 10. 30.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처세술(에페 5,15-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08/20 01:47 ]에 발행한 글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처세술(에페 5,15-20) 종교인들은 감히 자신을 신자라고 말합니다. “나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나는 불교 신자입니다”, “나는 무슬림입니다”, “나는 ... 신자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들은 자신이 어떤 일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종교인들의 일반적인 정체성 발언을 몹시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 살지 못할 바에야 그냥 예수님, 하나님, 알라, 부처님, 공자님 등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겸손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사도 .. 2019.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