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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생각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묻다

by anarchopists 2019. 1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10/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묻다



“사유한다는 것만큼이나 더 큰 불안이 오늘날 어디 있겠는가?”_마르틴 하이데거



  요즈음 서점가에는 대선을 앞두고 각 대권 후보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이른바 정치가의 ‘생각’을 풀어 놓은 책들이 인기다. 후보로 나온 것도 주목을 받는 터이지만 그들의 정치관을 활자로 인쇄한 책이 특수를 누리고 있으니 더욱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대중들이 책의 표제어가 드러내주는 정치인들의 생각과 인간됨을 읽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표심을 품고 있는 대중들 자신의 “생각”이다. 대선 후보자들의 생각이 자리 잡은 터를 간파하고 유권자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세우려면 주체적이고 사려 깊은 생각이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이란 스멀스멀 피어나는 깨달음, 혹은 깨우침이다. 그런 생각은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생각 가운데로 나를 앞세우고, 생각 안에 놓여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생각한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行爲]이 아니라 생각-해야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유-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몸으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확연히 드러나게 하기 위하여 생각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마음을 열어 놓는다는 것은 무방비 상태로 무작정 세계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하나의 사물, 하나의 현상에 머물거나 매몰되지 않고 빠져 나옴과 동시에 자신을 그 사태에 끼워 넣어 항상 깨어-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자기 보존의 본능과 자기 욕구 충족으로 인해 매우 이기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 다만 생각이지 생각-함이 아니다. 생각은 일순간의 욕구와 욕망으로 세계에 시선을 두었다가 거두어들이는 단순한 스침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표피적이다. 여기서 더 들어가야만 생각-함이라는 실제적인 사유 방식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함이 없이 타자의 생각만을 읽어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주체적 생
각-함이 선행되고 난 후에 타자의 생각 읽기와 타자와의 생각-나눔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생각인지 타자의 생각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욕구와 욕망으로 인해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라 단정 짓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대중들이 그 생각을 알아보겠다고 이미 활자화되어 있는 고정된 문자를 읽는다면 행간을 잘못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의 생각을 먼저 묻고 생각-함이나 깊은 사유-행위를 통해 사태를 판단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각은 대상으로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생각으로 존재하게 하여 생각 자체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생각 소비 행위는 인간의 생각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생각의 생각다움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끊임없는 투쟁(Streit)이 있어야 하고, 타자와의 생각 다툼과 균형 속에서 탈은폐적인 사유의 밝힘이 있어야 한다.


  생각은 길어 올려 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생각은 숨어 있지 않음이다. 그러나 생각은 밝음 가운데 드러나기 위해 숨어 있어야 한다. 밝힘과 숨김의 모순된 역설이 생각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이 처한 운명이다. 생각은 그러한 운명 속에서 발버둥 치면서 결국 밝음으로 나와 새로운 역사를 전개해야만 한다. 생각의 수립은 실존의 과제이다. 생각의 일어남(Geschehen)과 되어감(Werden)은 인간의 원천을 새롭게 하는 가능성이다. 따라서 생각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정립이자 자기-객관화이다. 그것이 없이 타자와의 관계적 진리 발현과 새로운 역사 개현 혹은 도약은 불가능하다. 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의 대상성에 따른 주체적 정립이 없이 타자의 세계로 뛰어듦은 자칫 근원(Ursprung)으로서의 생각의 터를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생각은 언어요 행위이며, 체험이자 역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의 근원, 그것의 시작은 자기 생각(의 정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생각은 감사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감사요,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 곧 증여이다. 이 생각을 지금 포기하고자 하는가.
  생각 곧 자기 주체로서의 생각(의 정립)이 없는 곳에 (정치의) 현재도 미래도 없으리라.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뉴시스, 뉴스1, 헤럴드경제, 경향신문).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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