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MB, 등거리외교를 아는지요.

by anarchopists 2019. 12.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1/01 07:50]에 발행한 글입니다.


MB, 등거리외교를 아는지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외교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한반도의 역사상 우리는 평화 유지, 전쟁억제, 나라의 안전을 위해 주변나라와 여러 형태의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대체로 우리 주변의 큰 나라인 중국과는 전통적인 친중국 정책, 곧 조공외교를, 그리고 주변 작은 이민족들과는 근린우호외교 또는 ‘역조공외교’을 써왔다. 그러다가 중국세력이 약해지고 주변 이민족세력(우리가 역사에서 말해왔던 오랑캐五囊犬)이 강해지면 등거리외교로 나라의 안위를 도모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인 조선조 17세기 초,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의 외교정책이다. 당시 조선은 안으로 왕권의 정통성문제로 왕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는 기득권세력(西人)의 ‘정신적 모태’인 명나라의 국가적 안위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기득권세력이 오랑캐라고 멸시하는 여진=만주족 후금(청)나라가 명과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이에 광해군은 기득권세력의 전통적인 친명배금(親明背金)외교를 버리고 명과 후금 사이에 등거리외교(中立外交)를 취하였다. 이러한 전술적 외교정책은 안으로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있었고 밖으로 명의 압력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후금의 침략을 막으면서 나라의 안위와 당시 백성들의 편안을 도모할 수 있었다.

조선의 근대가 되었다. 그때는 이 나라 정치외교상 격변기다. 일본을 포함하는 유럽열강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조선의 외교정책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내용이 전통적인 친중국외교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하여 유럽화하고 새로 부상하는 일본에 대한 친일본외교다. 결국 당시 조선의 왕, 고종의 무능과 그의 부인 민비(閔妃)의 교만으로 빗어진 친중국외교는 당시 변화하는 국제사회를 읽어내지 못한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이 결과는 조선의 멸망과 함께 ‘민족의 노예상태’가 되고 말았다.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웃 사람과, 나라는 이웃 나라와 등지며 살 수는 없다. 늘 주변과 관계를 적절하게 잘 유지해야만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근대 이후, 근대라는 이웃(유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그 중 대표적인 것이 중국)는 근대의 변화 속에서 ‘역사적·사회적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근대유럽과 이웃관계를 잘 유지한 일본만이 나라의 안위를 유지하며 나라를 부강시켰다.

현대에 들어와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중국은 사회주의 근대문명으로 내실을 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81년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중국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한다. 덩샤오핑은 낙후된 중국 사회주의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조치를 단행한다. 개혁개방정책은 정치ㆍ경제(20년 동안 평균 9%대 성장률)ㆍ사회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냈다. 이와 함께 발생할 수도 있는 대내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반제국주의’(反帝國主義), ‘반수정주의’(反修正主義)라는 방어적 전략을 수정하고 ‘국가방위와 대외개방의 통일”이라는 공세적 전략으로 바뀌게 된다.

이 결과 중국은 지금 종이호랑이가 아닌 살아있는 호랑이로 부상하였으며, 경제적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그리고 군사적으로 미국을 대적할만한 수준에까지 오고 있다. 나아가 외교적으로 중국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다시 노리는 경계까지 왔다.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아직도 정치경제면에서 미국의 앞잡이다. 미국이 먹고 남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하는 수준이다. 곧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식민지’노릇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내놓을만한 이념이나 사조(思潮)조차 없이 미국식 ‘퍼먹고 놀자 주의’에 빠져 있다. 문화적으로는 더구나 더 그렇다. 완전히 타락하고 부패한 미국식 자본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일국의 대통령이 외국의 의회에 나가 박수를 45번이나 받고 5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이 나라 권력형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미의회 의원들 앞에서 한국 대통령의 45분 연설에 1분 꼴로 45번의 박수를 받았다는 보도는 미국의 정치인(대통령과 미 의회 의원들)들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가지고 놀았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곧 대학생이 유치원생을 가지고 놀았다는 그런 기분이다.

미국은 그들의 국가적 이익과 관련된 ‘한미FTA의 한국의 국회비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제어할 굳건한 한미동맹(제주강정의 해군기지, 평택 미공군기지 건설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발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의회에서 행한 연설 내용을 토막별로 보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상하원 의회 지도부의 각별한 노력과 의원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례 없이 신속하게 통과시켜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
한다고 했다. 또 “한국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동시에 성취”했다.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는데 미국의 도움과 방위공약은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자기비하적 발언에 박수가 안 나올 까닭이 없다.

“GM의 한국 자회사는 쉐보레를 한국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판매 개시 6개월 만에 27%나 판매량이 증가했다.” 이런 말은 미국인들에게 신나는 이야기다. 또 “동북아시아의 경제적 활력이 지정학적 변동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세력균형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면서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미국의 지도력은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고 했다. 완전 미국 찬양 발언이다. 이는 미국찬양대회 나온 유치원 어린이의 웅변내용과 같았다. 미국의 의회의원들은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잘 한다고” 박수를 많이 쳐주었다. 이명박도 유치원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으리라 생각한다. 이 나라 인민들은 굴욕을 느끼는 데 말이다. 제발 이제는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신민지 나라’ 노릇을 하는 발언은 그만 두었으면 한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패권놀음에 우리가 어떤 외교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1. 11.1,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