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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FTA에 대한 비판적 인식 1

by anarchopists 2019. 12.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2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선과 삶의 지향성

1.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생태적 행복의 문제

김씨는 오지 섬에 살고 있다. 그래도 필요한 우편물은 언제든지 받아볼 수 있어서, 가끔 그것을 통해서 세상 밖의 소식을 곧잘 알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잘 날아오던 우편물이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그날 저녁 건너편 내륙에 살고 있는 박씨네 마을에서는 때 아닌 난리가 났다고 주민들이 아우성이었다. 이유인즉슨 그 마을에 미국 모회사의 유해폐기물이 매립되었는데, 그 바람에 주민들이 환경오염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근의 병원으로 진찰을 받으러 갔지만, 주민들은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병원은 의료보험민영화에 따른 보험지정기관이 아니라면서 진료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그날 오전에 구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인 박씨의 아들도 한 외국 기업의 회사와 법적 실랑이를 벌이면서 몹시 화가 나있었던 터라 이러한 일들이 예삿일로 보이지 않았다. 외국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국내법이 아닌 국제법령을 통해서 허가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던가. 옆 마을에서는 외국계 대형할인마트가 입점한다고 해서 온 동네의 마트와 골목가게들이 그 피해를 어떻게 하면 줄일까 연일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어제 뉴스에서는 농산물 수입과 관련하여 쌀수입개방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협상발언에 농부들은 이제 더 이상 농사를 짓니 안 짓니 하는 논란부터 시작해서 일찌감치 농지변경을 해서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농민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시청 광장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수입해서 국민들의 먹거리에 심각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들이 나와서 시위를 하고 있었고, 국내 육류업계나 소비자들이 바짝 긴장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지 않았는가. 김씨의 얼굴에 수심이 그득했다.

위의 이야기는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 본격적으로 발효되었을 때를 가정하여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사건들을 나열하여 엮어 본 것이다. 알다시피 FTA란 경제 활동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다. 예를 들자면 상품에 대한 시장 접근성을 비롯하여, 농산물, 제약, 시청각, 컴퓨터, 에너지, 관광, 금융, 전자상거래, 투자, 지적 재산권, 노동, 환경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그 영역은 방대하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지구 생태적 시각에서 보자면, FTA체결은 궁극적으로는 농업의 죽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농업은 모든 국가 경제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농업의 사양(斜陽)과 죽음은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더욱이 나라의 농사를 접어두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수출을 빌미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30%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훗날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심각한 먹거리 종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먹거리 종속국이 된다면, 지난 광우병 사태와 유전자조작식품(유전자조작 콩이 식용으로 수입되어 종자용으로 둔갑할 때의 환경적 위해성을 생각해 보았는가!) 등에 속절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우리의 먹거리조차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래서 안전한 먹거리, 안전한 식품 공급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은 “농업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인식과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FTA와 관련하여 먹거리로부터의 주체성, 먹거리로부터의 자유, 먹거리로부터의 해방을 고민해야 할 절박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땅은 자신의 것이 없으면서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을 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땅은 가난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주기만 할 뿐 경쟁(競爭: competere, concurro 라틴어가 의미하듯이 '나란히' 목표지점에 들어감을 의미한다는 것, ‘함께’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있다)이란 알지 못한다. 경쟁을 조장하는 자본의 욕망, 여전히 배부르지 않은 인간의 탐욕이 땅을 황폐하게 만든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의 현실 앞에서 인간의 자연과 역사 전체를 부정하기를 원하는가를 정직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라 함은 주체로서의 인간의 역사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자연이라는 장에서 태동되지 않은 인간의 역사와 발전이란 있지도 않았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FTA라고 하는 것의 근원적 실체에 직면하여서 지금 우리 세대가, 그것도 지구 경제의 특정 선진국 20%의 이익을 위한 무책임한 불공정 협정이라면, 더더욱 미래 세대에게 주어지는 생태적, 경제적 혜택은 무엇인가를 물어야만 한다. 더불어 그 혜택 혹은 인간학적인 의미에서 행복이라는 총합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약자, 그리고 자연 생태계를 포함한 지구 전체의 총합을 의미하는가를 철저하게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만일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행복한 소수'들은 그 다음 단계로 헌법의 개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과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조항의 폐지를 요구할 것입니다”(송기호, 한미 FTA 핸드북, 녹색평론사, 2007, 163쪽)라는 주장이 제기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예측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전지구적 자본에 대한 항복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대항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편드는 영성,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그리스도교적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여겨진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영성은 단지 삶의 확신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로 지구화가 깨트리려고 하는 공동체적 삶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지배 세력이 부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영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정의에 대한 추구를 철저화하는 영성이다. 이것은 사람들과 공동체들에게 자기 존엄성의 척도와 인간 존재의 완전한 의미를 지니고 서로 어울려 살도록 하는 영성이다”(Oscar S. Suarez).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쇄국을 풀어야 한다면, 굴욕적인 수동적 개방을 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FTA를 체결하는 즉시 모든 경영과 경제, 혹은 헌법과 삶의 철학까지도 선진국 특히 미국의 표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무역협정은 무한경쟁의 원리를 내세우면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행정과 법은 곧 삶의 절대적 카논(canon)이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FTA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를 넘어선 주체적 삶의 문제요, 인간의 정신 혹은 영성의 문제라는 것을 직시해야만 한다(2011/06/20,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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