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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종교정신을 혁명하라

by anarchopists 2019. 12. 2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4/2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종교정신을 혁명하라!

종교가 지금처럼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교회나 성직자의 수각황망(手脚慌忙)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종교에 대한 사회의 냉소적인 태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종교가 종교로서의 역할과 기능, 본질과 목적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종교가 다시 개혁을 해야 한다는, 혁명을 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함석헌에 의하면 "혁명이 곧 종교요, 종교가 혁명"이다. "나를 고치면 종교다." "종교는 반성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각성하는 것이 종교다. 그것이 혁명이다. 뒤집어엎는 것만이 종교가 아니다. 종교나 사회를 고치기 전에 나를 고치는 것이 종교다. 그러므로 "참 종교는 반드시 민족의 혁신을 가져오고, 참 혁명은 반드시 종교의 혁신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혁명의 명(命)은 곧 하늘의 말씀이다. 하늘 말씀이 곧 숨, 목숨, 생명이다. 말씀을 새롭게 한다 함은 숨을 고쳐 쉼, 새로 마심이다... 혁명이란 숨을 새로 쉬는 일, 즉 종교적 체험을 다시 하는 일이다." 종교가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참 혁명을 이루어간다고 볼 수 없습니다. 혁명은 나날이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지 단말마적인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숨은 '가는 숨'이 아니라 '오는 숨'이어야 새로울 수 있듯이, 초월자에 대한 그 경험도 뿌리에서부터 새롭게 해서 삶의 새 숨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되돌아옴, 즉 반성이다. 제 근본을 생각하며 그 가장 순수한 바탈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명의 가장 높은 운동은 돌아옴이다. 생각이란, 정신이란, 창조주에게서 발사된 생명이 무한의 벽을 치고 제 나온 근본에 돌아오는 것이다."

종교는 지금 숨을 고르고, '바탈을 찾아야' 한다. 숨을 고르지 않고 질주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제 근본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함석헌은 "정신이란 것, 생각이란 것은 생명의 반사 혹은 반성이다. 하나님의 마음의 방사선의 끄트머리가 다시 저 나온 근본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 마음이란 것, 생각이란 것이다... 종교란 결국 반성이다. 생명에 저 나온 근본을 돌아보는 것이 종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종교가 저 나온 근본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죄 깜부기' 혹은 '죄의 병균을 없애야 한다'는 함석헌의 생각과도 통한다. 혁명의 대상은 항상 안에서부터 시작하거나 안을 살피는 데에 있는 것이지, 외부의 대상으로만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 역사의 거대한 흐름 가운데 있는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범과 공범을 나눌 수 없는 필연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은 안으로부터, 안의 혁명이지, 밖을 향한 밖의 혁명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혁명은 나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자-함석헌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위에 오는 절대의 명령"-에 의해서 못 견뎌서 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종교는 초월자에 의해서 사유되거나 숙고된 혹은 신앙적으로 결단이 이루어진 운동이나 반성조차도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는 혁명의 종교요, 반성의 종교가 아니라 여전히 신의 뜻을 빙자하여 성직자 자신의 영달과 명예와 계량․부피적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 혁명의 단초를 발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다시, 종교는 자신의 인격의 핵심이 인(仁)이요, 사랑이요, 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혁명을 위한 몸부림과 외침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개혁과 혁명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자신의 참, 자신의 인, 자신의 속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종교를 쇄신한다는 것은 종교 그 자체의 쇄신이 아니라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의 속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씨"로 되어 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혁명은 반드시 책임감을 느끼고 역사적 죄악을 제 몸에서 아프게 슬프게 회개를 해서만 새 역사를 지을 감격과 지혜가 나온다. 회개 아니 한 민족가지고 아무것도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감응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회개하여야 한다." 함석헌의 부르짖음이 단순히 한 특정종교의 비판이나 감정적 지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국민적 개혁이나 혁명은 결국 자신의 회개나 뉘우침이 없이는 호소력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자 한 것이다. 국민의 회개, 국가의 회개, 민중의 회개는 내가 먼저 죽어야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죽어야 모든 것이 산다,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진리다.

죽어서 새로운 내가 탄생하지 않는 혁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고서 혁명을 하려고 하니 혁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어찌 자신은 혁명하지 않는가.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왜 타자만 죽으라고 하는가.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왜 자신의 껍데기는 여전히 가지고 있으려 하는가. 혁명을 말하면서 왜 반혁명적 행위로 일관하는가. 이 모든 것들이 정신적 반성, 정신적 돌아봄, 초월자의 빛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왜곡된 타자의 시선만을 의식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고쳐야 할 것은 제도나 사회나 체제나 국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나 자신의 속마음이다
. "사람이 고쳐된다는 것은 정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 정신은 새 시대에 있다... 새 시대의 정신에 몸을 던지란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족했던 사람도 새 시대 새 역사의 일꾼이 된다. 그것이 정말 혁명이다. 그것이 정말 종교다... 참 종교는 참 전쟁이요, 참 싸움은 참 종교다... 참 싸움, 참 종교에 참여하면 참 사람이다. 내가 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이 나를 살릴 것이다." 우리는 함석헌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있노라면 혁명이란 한마디로 정신 혁명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종교로 치자면 영적 혁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참'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야 진리이고 차야 사랑이다.

역으로 말하면 참은 거짓을 비우고 한없는 새로움으로 돌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 새로움의 근원으로 소급해서 그 새로움의 원천에까지 다다라야 비로소 그 근원적 힘인 참이 나를 참되게 하고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보다 더 근원적인 혁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보다 진실한 종교라 하지 않을까? 내가 하지 않고 최초의 원본적인 순수 사유와 가장 근원적인 존재가 이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 혁명이라 하지 않을까? 종교는 새로운 정신에다, 순수한 정신에다 자신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신의 본원적인 것을 매순간 추구하려는 운동이 없다면, 어느 혁명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종교는 모두가 새로운 것을 마시고 숨쉬기를 원하는 것, 그 바탈을 찾아주는 것, 그것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2011. 04. 22,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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