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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인간의 끝모를 타락, 어디까지일까?

by anarchopists 2019. 12.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2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끝 모를 인간의 타락, 어디까지일까?

“어떤 일이 일어나건 우리는 길을 잃었다.
우리 세계는, 나의 세계는 치료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 Eliade)

현대 생활세계에서 무엇이 인간의 타락일까요?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현대의 타락을 두 번째 타락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의 생활세계에 대한 성스러움, 자연과의 조화 등이 상실된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 물론 첫 번째의 타락은 신화적 의미에서 인간의 낙원을 상실한 타락이겠지요. 타락이라는 말이 어쩌면 종교적인 개념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지금의 환경문제를 보면 인간 심성에 대한 종교의 해석학적 시원을 반드시 운운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악한 본질을 가늠케 합니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자기, 자기 가족, 자기 부족, 자기 마을, 자기 국가 등 "자기"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그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칠곡에서 일어난 고엽제 매립 문제만 해도 우리 한반도는 항상 전쟁의 난리 통에 있었고, 전쟁이 없다 하더라도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전쟁을 준비하는 것조차도 전쟁 중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니까요. 혹자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혹은 전쟁의 참상을 미리 방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을 위해서 우리 땅을 빌려주어야 하고, 설령 그것이 한반도를 지켜내는/지켜주는 중요한 우방적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우리의 배려가 타자의 땅에다 오염물질을 묻어버리는 행위조차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타자의 땅이라고는 하나 진정한 의미에서 과연 그것이 타자의 땅인가 하는 의문을 들기도 하지만, 땅은 엄마이고 엄마로서의 땅이 아니 존재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면 타자의 땅이건 아니면 자신의 앞마당이건 땅으로서의 엄마에게 죽으라고 사약을 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환경과 전쟁, 땅과 전쟁과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모든 전쟁은 땅[흙/地], 바다[물/水], 하늘[바람/風]을 통한 불[火]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방세계가 다 고통이었습니다. 각 나라의 육해공군은 화력(火力)을 통해서 적을 제압하였으니 그야말로 모든 물질의 근원을 총동원해서 싸움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지수화풍의 집합체이면서 그 지수화풍을 수단으로 지수화풍을 죽여 왔으니 그것이 타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문명발달의 기원은 불의 발명에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줌으로써 그 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신화는 불이 갖고 있는 현실성 보다는 그 위험성과 상징성을 더 강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듯합니다. 불은 신화적으로도, 종교적으로 심판을 의미할 때 자주 등장하고는 합니다. 반면에 불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도록 하는 성스러운 매체 구실도 합니다. 그 양면성을 지닌 불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역사의 운명이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발생한 원자력 핵발전소 문제만 하더라도 그 문제의 근원은 불을 잘 다룰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다가는 불로 시작한 인간의 문명이 불로 막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마[水魔/水神], 풍마[風魔/風神] 만큼이나 화마[火魔/火神]도 얼마나 무서운가를 인간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고엽제 매립과 관련된 사건은 인간을 비롯하여 지수화풍 전체에 걸쳐 심각한 오염을 가져올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이미 그 후유(의)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땅과 물, 공기는 오염이 되어 또 다른 인간에게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면 이번에 매립된 고엽제(55갤런 드럼통 250개, 약 5만 2천 리터)로 인한 피해는 얼마나 될까요? 나뭇잎을 고사시키는 고엽제, 각종 암과 신경계를 손상시키는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는 고엽제,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고엽제(인근에 낙동강이 있으니 또 한 번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끝끝내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욕망하는 카인과도 존재일까요? 그 타락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고라도 이 세계를 억지다짐으로 쟁취하고 싶은 파우스트적 욕망은 원초적인 타락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억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모네레'(monere)가 '기억한다'는 본뜻 이외에 '경고한다'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제라도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교훈삼아 생활세계 곧 이 땅의 미래를 예측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을 성스럽게 여기고 사물 하나하나에 거룩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에덴에 대한 기억은 영원한 꿈으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2011. 6.22,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구굴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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