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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서경식 선생님의 “언어의 감옥에서”(돌베개, 2011)를 읽고

by anarchopists 2019. 12.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6/03 05: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서경식(徐京植)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재일조선인 2세대 학자다. 그의 글을 대해 본 독자들은 잘 알겠지만, 냉철한 비판력과 치밀한 논리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모어와 모국어를 구분하면서 자신은 모어를 사용할 수 없는, 마치 일본인으로 취급받고 있는 한국사회의 배타성-"언어 내셔널리즘은 배타적 내셔널리즘의 강고한 기반이다"-을 명료하게 짚어내면서도, 애정 어린 마음을 가지고 일본사회가 우리나라를 바라보고 있는 인식의 태도를 냉혹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의 당시 역사와 지금의 현실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차치하고라도 양비론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조차도 하등 다를 바 없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제자였지만, 다시 유대인 난민 정치철학자로 미국에서 평생을 보낸 한나 아렌트(H. Arendt)의 논조를 내세우곤 한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킨 행위의 죄는 개인에게 물어야 하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집단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한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롯하여 그들이 내세운 전쟁론과 위안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연 일본이라는 국가 혹은 국민은 과거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더 나아가서 과거 베트남 참전이나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타자인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그 역사적 성찰을 유도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여전히 해묵은 논쟁을 하고 있는가 하고 반문하면서 이른바 '화해의 폭력적인 레토릭'을 말할지도 모를 우리나라 정치인과 지식인을 향해, 그는 역사의 되물음과 책임은 반드시 중요하다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만 니체(F. W. Nietzsche)가 말하듯이 기억의 아픔, 역사의 치유, 인간의 건강한 삶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왜 귀화하지 않으세요? 나는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이 강해서가 아니다. 계속되고 있는 식민주의에 저항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늘날 정치경제적 열강들의 식민주의에 저항하던 힘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양상은 달라졌지만, 문화적․언어적․경제적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서경식과 같이 좀 더 이성적 잣대를 들이대는 지식인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도 달라질 수 있도록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가. 세계와 자본, 그리고 우리가 밟고 있는 선진국의 전철인 식민지 개척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책은 이렇게 많은 물음을 연거푸 던지게 하는 문제작임에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내 귓전을 감도는 한마디의 구절은 이것이다. "혁명은 정치적인 실천이라는 좁은 범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불복종을 관철하려는 일상의 자세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진지하게 고뇌하며 새겨야 할 말이다.

* 오늘은 김영호 선생님의 개인사정으로 서경식 선생님의 독서후기를 올립니다.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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