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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상태 박사 칼럼

6.29선언,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민주화

by anarchopists 2019. 12.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7/01 15:56]에 발행한 글입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역사 속 6월 29일. ‘세상 참 많이 변했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 말은 상황마다 의미하는 것이 다르다. 1987년의 소위 노태우의 6.29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의 세계 곳곳의 모습은 많은 곳에서 독재와 압제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여성의 투표참여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독재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로 압제자들이 속속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민중들은 그냥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참고 견디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보여주었던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쉽게 아무렇게나 반발하지 않고 인내하고 착취도 감내해온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해자는 그것이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귀족은 무신정권을 중심으로 문벌귀족과 권문세족으로 구분한다. 이들은 5품이상의 품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고 흔히 귀족이라 불리지만 내부적인 모습을 보면 그 차이가 크다. 예컨대 사람은 99개를 가지고 있는 1개를 더 채워서 100개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 하나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일 것이다. 가진 자의 입장에서 1을 추가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빼앗기는 자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1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때문에 그네들은 들고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문벌귀족과 권문세족의 차이가 그렇다. 문벌귀족은 1을 채우고 싶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알아본 집단이고, 권문세족은 상대방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는 집단인 것이다.

6.29선언은 민주화 운동의 승리이지만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던가. 노태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무슨 대단한 민주화를 위한 고뇌나 결단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선언이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선배들의 아낌없는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누구에게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대중들의 희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소위 3김 시대의 당사자들은 역사 속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비록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기대를 자신들의 욕심으로 분출했기에 우리의 민주화는 더딘 여정을 가게 되었다.

지나 온 독재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우리는 이제 자신들을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에 가졌던 그 소신이 순수함이 지켜지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팔아서 권력을 잡지 말자는 말이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선열들을 상기해 보라.

매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대한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그 선언문을 누가 기초했던가? 최남선. 뼈를 깎고 살을 에는 심정으로 절실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 그 문장을 엮어낸 그도 결국은 우리는 친일파라 부르고 있다. 삶의 질곡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민족의 비운을 한 몸에 안고 있는 형상이기도 하다. 온갖 협박과 폭력에 나 자신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최남선을 무어라 단죄하겠는가. 다만 그의 의로움이 끝까지 지켜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질곡의 모순을 우리는 매년 3.1절 기념행사장에서 반복하고 있다.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되풀이 되는 실수를 살펴보면 똑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기에 반복되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데 나는 아니라는 오만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이 3김의 오만함 아닌가. 나 자신도 별난 인간이 아니고 똑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세상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착각은 버리자. 내가 아니면이 아니고 나도 열심히 일조할 수 있는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말없는 대중을 두려워 할 줄 알자.(2011.6.30. 김상태)

김상태 선생님은
김상태 선생님은 인문학(역사: 한국근대사)을 전공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외 기호일보 객원논설위원과 함석헌학회 학술위원을 겸하고 있다. 현재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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