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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4.19 특별기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4.19혁명정신이다.

by anarchopists 2019. 12. 2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4/1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4.19혁명의 후예들이여,
자신의 정신을 혁명하라!

<역사>에 대한 프리드리히 니체((F. W. Nietzsche)의 어록들:

“우리는 삶과 행동을 위해 역사를 필요로 하지, 삶과 행동을 편안하게 포기하기 위해서 또는 이기적인 삶이나 비겁하고 나쁜 행동을 미화하기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삶에 이바지하는 한, 우리는 역사에 이바지하려 한다.”

“미래를 세우는 자만이 과거를 심판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따라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비역사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인 능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능력 안에 대체로 정당한 것, 건강하고 위대한 것,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한 말이다. 비역사적인 것이란 생명 자체가 태어나도록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흡사한데, 이 대기가 파괴되면 다시 그 생명은 소멸된다. 이것은 진리다: 인간이 사고하고, 숙고하고, 비교하고, 분리하고, 종합하면서 저 비역사적 요소들을 제한함으로써 비로소, 저 휩싸여 있는 자욱한 구름 속에서 한 줄기 밝은 섬광이 발생함으로써 비로소, 즉 과거의 것을 삶을 위해 사용하고 이미 일어난 일에서 다시 역사를 만드는 힘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과잉되면 인간은 다시 멈추게 되며, 비역사적인 것이라는 저 외피가 없다면 그는 시작하지도 시작할 용기를 갖지도 못했을 것이다.”

함석헌은 4.19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혁명의 과녁이 정확하게 ‘양심’을 겨냥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당연한 논리 주장인 거 같지만 매우 근본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회적 제도 즉 양심을 굳게 하거나 전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틀거지, 틀의 종(從)이 사람을 선천적으로 인간 양심의 작동 메커니즘을 억압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혁명이란 다른 것 아니고 사회제도 전체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면 혁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자고 하는 것인가?
함석헌에 따르면 혁명은 “뒤집어엎음”이다. 뒤집어엎는다는 표현 자체가 사람에 따라서는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로 들릴 수는 있으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본시 잘못된 체제를 뒤집어엎게 된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또 혁명은 “갈아치움”이다. 그러니 혁명이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을 갈아서 뒤엎어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을 한다고 해서 원칙도 없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함석헌은, “혁명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옳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그 혁명의 대의명분을 분명히 한다. 옳지 않은 혁명은 그야말로 치기 어린 반역에 불과하고 기득권을 얻기 위한 불완전한 또 다른 투쟁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에는 반드시 형이상학적인 모토가 필요하다. 함석헌은 그것을 혁명의 ‘명’(命)에서 찾는다. 명이란 무엇인가. 신의 말씀이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혁명을 운운하면서 어떤 종교적인 이념을 앞세우자고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함석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리, 원칙, 최초의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혁명의 정신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개혁·혁명의 표어는 늘 참으로 정의로 돌아가라는 것”, 혁명은 “명을 새롭게 하는 것”, “혁명이란 맨 첨 원리[第一原理]에 돌아감”이라고 피력하면서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혁명이 혁명답고 혁명이 성공하려면 그것은 맨 첨 원리,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보다 근원적인 원리와 보편적인 동의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제일원리인가? 함석헌은 ‘하나되는 것’이 제일원리라고 말한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고 나와 너가 하나되고 신과 인간이 하나되는 것이 제일원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이 바로 4.19혁명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정신을 널리 일깨워야 할 상황이 아닌가. 종교적 현실을 놓고 보면, 초월자에게 향해야 할 인간은 물질에 경도되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고, 백성을 계도해야 할 성직자가 타락하는 현상은 신과의 합일을 통한 제일원리를 지향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환경적 현실은 어떠한가. 원자력에 의존한 인간은 원자력 지배는 고사하고 오히려 원자력 맹신주의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방사능에 의해 자멸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과 인간의 삶은 과학기술문명으로 수치화, 계량화, 편의화(偏意化/便宜化), 피상화되고 있는 기계적 삶과 관계성의 상실을 놓고 보자면, 나는 있지만 너라는 존재는 가상이요 죽음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슨 제일원리에 입각한 삶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함석헌이 혁명이란 제일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면, 다시 말해서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이 4.19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한 때라고 본다. 정치적 측면에서만의 혁명이 아니라, 온 우주가 하나 되는 혁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감응’이다. 함석헌은 이를 두고 하나가 된 바탈[보편성, 통일성]이라고 말했다. 씨알의 감응, 씨알의 바탈이 이 우주의 현실, 이 땅의 정치, 경제, 자연, 교육, 복지 등의 현실에 대해서 분노하고 노여워하는 백성의 감정이 싹터야 한다. 그것은 상상이 아니다. 상상에서는 노여움이 나오려 해도 나올 수가 없다. “생명의 프로테스트[저항]”, ‘생명의 스스로 하는 폭발’이 생겨나야만 한다. 어디 역사가 그냥 생기던가. “역사는 노염 없이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밸도 없는가? 정치를 보고, 자본주의를 보고, 세계화를 보고, 자연환경을 보고,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 먹는 현실을 보고 왜 노여워하지 않는 것인가? 정말 정신의 배알이 없는 것인가?

이제 씨알은 민족의 배알, 역사의 배알을 갖고 생명의 꿈틀거림 속에서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씨알의 마음이 빗방울이 되어 제일원리로부터 벗어난 현실에 생명이 어찌할 수 없는 마음에서 일어난 도덕, 자연도덕을 알려야 할 것이며, 참과 사랑으로 씨알의 운동, 씨알의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4.19혁명을 계승하는 것은 학생의 순수한 정신과 공의로움을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한 정신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정신은 아무것도 섞인 것이 없이 맑아야 한다...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 욕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욕을 덜어내고 인간의 정신을 엉키게 만드는 모든 억압․강압체제들을 탈피함과 동시에 학생의 정신, 인간의 정신을 좀먹게 하는 모든 사회적 틀거지를 거부할 수 있는 생명의 밸을 고양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학생의 순수한 정신과 열정과 피로 이루어 낸 이 국가와 사회의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 후대가 4.19혁명의 선배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또한 나의 현재는 그들이 일깨운 정신의 역사적 재현(re-present)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하리라.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니체(F. W. Nietzsche)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역사가 기념비적 역사나, 골동품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 오늘의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비판적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4.19혁명-거듭 니체의 역사치료학적 입장에서 말한다면-은 역사라는 소모적인 열병에 걸려 있는 집단 기억에 대한 현대의 진부한 반복이나 혹은 도덕적 결벽증이나 과잉된 역사의식이 아니라, 일상과 현실을 치유하는 삶, 미래를 조형해 나가는 비역사적ㆍ초역사적 태도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2011. 04.19,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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