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이 나라에 '인격의 종교'가 있는가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8 06:5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비판5]


“종교가 할 일은 위에 있다. 위란 영이요 진리다”

종교는 있는가. 도발적인 질문이 필자를 비롯하여 종교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물론 종교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재차 묻고 답변을 구하여 종교의 유무․진위를 따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보편적으로 종교라면 응당 그렇고 또한 그렇게 할 것이라는 통념적 접근으로 보자면 종교가 있다라고 답변하기가 애매모호하고 확신을 갖고 그리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故 이태석 신부나, 故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의 가치를 구현하고 그 가치가 참되다는 것을 일깨워준 분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을 갈망하며 그 좌표를 보여주는 분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을 공감했던 함석헌은 종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미래의 종교는 인격의 종교, 논리의 종교이기 때문에 맘의 종교요, 맘의 종교이기 때문에 깨달음의 종교이다. 능력이나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깨달아서 맘이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종교는 노력의 종교일 것이다.”(
73-74)

인격, 논리, 맘, 깨달음이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그의 종교 관념은 위와 아래가 뚫리며 초월과 내재가 일치되는 존재 현현을 의미한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고, 논리가 통하는 사회, 맘으로 깨달아지는 종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훈련해야만 되는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함석헌은 종교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듯하다. “앞날의 종교는 점점 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되어갈 것이다.”(74) 당연한 진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종교는 그가 전망하는 것처럼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되어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종교는 눈앞에 당장 있어야 할 것을 욕망하는 종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즉물적 사고(卽物的 思考)에 사로 잡혀 있는 종교가 과연 정신적이고 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영을 지향한 존재다. 한없이 올라가잔 것이 인격이다. [...] 영(靈)! 그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는 세계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인생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종교다. 그것은 늘 모험이요, 늘 돌격이요, 늘 비약이다. [...] 이제 앞으로 인류는 영의 세계를 향해 무한한 항해를 할 것이다.”(74-75)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종교는 인격이고 비약으로서 무한을 향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교가 무한을 향한 도약을 단행하고 있는지, 결단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가 영으로의 비약을 실증적으로 객관화하지 못한다고 하면 종교는 사라지고 다만 종교성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의 종교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함석헌은 말한다. 새 시대의 종교 그림을 그리라고 말이다. 또한 새 종교를 꿈꾸라고 말한다. “새 종교를 꿈꾸는 것이 새 종교 [...] 새 시대의 종교의 꿈을 그려보자! 거기에 무한이 있다.”(76) 그러나 새 시대의 새 종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새 종교를 만들 맘으로가 아니라 기다리는 맘에서, 졸지 않고 깨는 일이 곧 새 종교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59)

새 종교의 그림을 그리는 맘, 꿈을 꾸는 맘이 있어야 한다. 이른 바 ‘기도’다.
마음으로 빌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종교, 새로운 혁명을 꿈꾸는 것은 다만 꿈을 꾼다고 꾸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미 품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종교를 꿈꾼다고 하는 것이 ‘탐욕스러운 천당주의자들’(이명현, 에세이: 보통사람을 위한 철학, 까치, 1986, 24)의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롭다고 하는 것은 지금을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는 부정과 부단히 전제가 없는 시원(始原, arche)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다. 종교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은 종교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는 소박한 믿음을 넘어서야 하고 지금의 종교 모습을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즉 종교의 시원인 그 전제 없음의 존재에까지 다다라서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순수한 신앙 빛깔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종교에게 필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비는 맘으로 인격의 도약을 모험적으로 감행한다면 어찌 초월자가 만나주지 않으랴.

(역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매일매일 땅의 것만 생각하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언제나 너 혼자만 생각하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전혀 아들, 딸답게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지 마라.
제 이름만 내려고 발버둥 치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하지 마라.
오직 황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지 마라.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고 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하지 마라.
여전히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하지 마라.
죄인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매일 죄지으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하지 마라.
악을 뻔히 보면서도 피하려 하지 않으면서.

“아멘”이라 하지 마라.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남미 우르과이 농촌 어느 작은 교회 벽에 붙어 있는 글-
(2011/02/18,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