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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종교여, 환상을 버리고 이성을 가져라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종교비판4]

“종교도 점점 이성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위의 함석헌의 말을 좀 더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성적이라 함은 감정을 무시하잔 말도 아니요, 영적인 면을 몰라서 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 중요한 일을 하는 고로 그것을 이성의 빛으로 비추어주어야 한다는 말이요, 영계(靈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일은 감정에 취해 감정이 고조된 것을 영으로 속단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아니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62-63)

종교사나 철학사를 보면 이성과 감성의 두 다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쪽의 무게 중심을 많이 두느냐 하는 것도 쟁점이었지만, 기나긴 역사를 지나오면서 학자들은 이 둘을 조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사실 인간이란 이 두 가지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둘이 조화된 것이 건강한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종교는 지금까지 이성보다는 감성 혹은 감정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그것을 신앙적 감정으로 높이 승화시키려고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대한 신앙의 편중은 과도하게 이성을 밀어내고 신앙적 감정에 충실하여 무비판적 사고를 강요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앙적 행위라는 것도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적 감정에 몰입하여 타자 혹은 타종교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없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칸트적인 맥락으로 볼 때, 배려심이라는 것도 어쩌면 타자에 대한 의무에 입각한 나의 실천이성의 발로여야 마땅하다. 그것이 아닌 동정이나 연민에서 싹튼 것이라면, 그것은 윤리나 도덕적 감정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앙적 행위를 드러낼 때 자신의 신앙적 신념은 비판적 반성에 의해서 숙고된 것이어야만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함석헌의 말을 빌린다면, “이성이란 다른 것 아니요, 나 외에 남이 있음을 알고, 물질 외에 정신이 있음을 알고, 이제 외에 과거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존재 외에 절대가 있는 것을 아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 아니고 종교를 생각할 수는 없다”(64).

다시 말해서 종교적 이성이란 먼저 타자를 배려하거나 절대와 정신을 우선으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성의 막다른 골목에는 신앙이 기다리고 있다. “생명은 자기 본래 가지고 있는 영성에 의하여 그 장벽 밖의 세계를 직감한다. 그것이 신앙이다”(64). 함석헌은 종교가 이성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칸트처럼, 인간 이성의 인식에 한계를 긋고 도덕적 삶을 위해서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신의 여지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종교는 자신의 신앙적 행위를 통해서 신이 지금 여기 있음(postulatio)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인생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을 건져주잔 것이 종교건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더구나 거기 서로 쟁탈전까지 하는 종교에 인생은 지칠 대로 지쳤다. [...] 미래의 종교는 이 지친 인생을 다시 일으키는 종교여야 할 터인데, 그렇기 위하여서는 그 분열된 인격을 재통일하는 새 인간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민초들의 삶은 힘들어 가는데 종교는 그 인생을 싸매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민초들에게 신의 여기 있음을 인식하도록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종교는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꾀하고 화해하는 인간관을 정립해야만 한다. 이성을 멀리하고 신앙 일변도로만 가지 말 것이며, 신앙을 멀리하고 인식의 한계 너머에 있는 영계를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성을 끝까지 추구하면서 반드시 남을 배려하는 종교, 그러면서도 절대를 추구하는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과 같이, 이성은 환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드(id, 개인의 본능적 충동)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고 말한 프로이트의 의도는 허구를 분쇄하고 현실에 눈뜨려고 하는 이성의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한다(Erich Fromm, 현재라는 이름의 환상, 김진욱 옮김, 오른사, 1980, 24-25).

종교가 환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이성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을 통해 종교는 자기 자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종교의 자기 인식과 신인식, 그리고 그에 대한 신앙 감정이 공동체의 감정이라고는 하나, 각기 체험의 방식과 내용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성을 통한 객
관화와 자신의 신앙을 반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사회 사이의 상호 불가공약성(혹은 통약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별개의 공동체가 되어 영원한 평행선을 긋거나 종교의 신앙 감정과 실천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사회와 소통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종교에서 이성이 중요한 이유는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다름 아닌 이성이기 때문이다. 성직자의 도덕적 문제, 종교의 비리 등은 결국 종교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데서 드러나는 병리적 현상이다. 이제 종교는 서로 말이 통하도록 해야 하며, 공동체 내외부의 사태를 철저하게 따질 수 있는 이성적인 건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종교는 자기 종교의 실존적 성실성 즉 현재의 자기 존재의 물음과 그 해답을 성실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야만 더 이상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 <공야장>편에는 후목난조(朽木難雕) 라는 말이 나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가치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나온다. 지금의 종교나 종교인이 이런 평가를 받을까 심히 두렵다(2011/02/17,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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