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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환경

4대강 개발을 즉각 중단하라

by anarchopists 2020. 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17 07:32]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부터

"4대강 개발을 즉각 중단하라"
(원제목: 가믐과 홍수는 강의 생명현상이다)는
제하의 글을 연재합니다.
공동 집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집필(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분과장 (동국대학교 교수) 오충현
(관동대학교 교수) 박창근
(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 지관스님
(부산가톨릭대 교수) 김좌관
(생태지평 부소장) 박진섭
(부산대학교 교수) 이병인
(경상대학교 교수) 최광수
(내일신문 기자) 남준기


글을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강과 생명현상

1) 강과 문명

2) 생태계를 이어주는 강
3) 생태계의 연결을 차단하는 개발



2. 4대강 사업과 생태환경의 위기

1) 위기를 맞이한 우리의 4대강

2) 형용모순으로 치장한 정부의 4대강 사업
3) 생태계의 필연적 악영향



3. 강을 위한 개발의 원칙

1) 유황 보전의 중요성

2) 개발과 거버넌스



4. 4대강을 살리기 위한 실천방안

1) 4대강 사업의 속도 조절

2) 지금은 거버넌스의 시대


1. 강과 생명현상

“한낮에 왕이 입을 열어 한밤중이라고 말하면, 현명한 사람은 달이 보인다고 말한다.” 페르시아 시의 한 구절을 『생명의 강』의 저자들은 인용한다. 2003년에 발간한 그 책의 저자들이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을 향해 도열한 이 땅의 지식인을 염두에 두고 그 시를 거론했을 리 없다. 이집트의 독재자 자말 아브단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자 평소 적절성을 의심한 사람 대부분이 돌연 순종적인 태도를 연출한 데 대해 한 익명의 관료가 그 구절을 들어가며 비아냥거렸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산샤 댐과 남수북조사업,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예를 들며 “민주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수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중앙에서 결정해서 아래로 내려 보내는 정책결정 방식을 사용”한다는 걸 덧붙인 『생명의 강』의 저자들이 새판을 위해 책 내용을 수정한다면 시방 한국의 4대강(섬진강을 포함하면 5대강)에서 한겨울에도 꽝꽝 언 강물을 파헤치는 (토건) ‘살리기’ 사업도 조명할지 궁금한데, 사실 우리나라의 상황은 과거의 이집트, 얼마 전의 리비아, 최근의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 공안당국의 서슬 퍼런 사찰이 횡행했던 군사독재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 우리의 지방정부와 현자들은 공안당국에 의한 신체적 두려움보다 금전적 약삭빠름에 의지해 알아서 제 양심을 판다. 돈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텐데, 막대한 액수의 연구용역을 머리에서 지운 일부 토목학자와 사운을 좌우할 광고수입을 포기하는 몇 안 되는 언론사는 학생과 독자 앞에서 떳떳하려고 애쓴다.


I. 강과 문명



1980년대 초, 생태조사를 위해 치악산 구룡사를 간 적 있다. 완행버스에 몸을 싣고 바라본 산기슭에 좁은 길과 작은 마을은 우리 몸의 세포조직으로 보였다. 세포조직이 실핏줄을 따라 더 큰 조직으로 이어지고, 조직이 장기를 만들며, 장기가 체계적으로 모여 몸을 구성하듯, 동네나 마을은 세포조직, 면이나 읍은 더 큰 조직, 군이나 시는 장기가 된다면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반도는 몸이구나 싶었다.

대여섯 개의 지붕이 이마를 맞댄 동네는 이삼십 여 집들이 오밀조밀 모인 마을과 좁은 길로 연결되었고, 조금 넓어진 마을길은 버스길과 이어졌다. 버스길을 따라 치악산 기슭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며 장이 서고 동네와 마을 사람들은 농산물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가파른 고갯길을 이리저리 감돌던 버스는 치악산 주민들을 원주에 내려주고 도시에서 온 관광객을 구룡사로 실어다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길은 작고 큰 강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산은 강을 막지 않지만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볕을 내려 보내는 태양을 지구가 돌고, 공전과 자전을 하는 지구 표면에 비가 내리는 한, 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빗물을 흐르게 한다. 유사 이래 한 차례도 거스르지 않았다. 덕분에 생태계는 다양해지고 다양한 생태계에 다채로운 생물종이 억겁의 세월 동안 어우러졌다. 강은 물이 흐르는 물리적 장소에서 머물지 않는다. 강을 따라 다양한 생태계가 연결되며 사람의 문화도 역사도 흐르며 이어진다. 덕분에 사람도 강에 기대어 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1890년대 중반, 국세가 기울어가던 조선을 4차례 방문한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제물포에서 배를 내려 한양까지 조랑말을 타거나 작은 배로 노량진으로 가야했다. 노량진에서 강원도 영월까지 더 작은 배를 이용하며 거슬러 올랐고, 백인 여성을 구경하러 구름처럼 모이는 여인네들이 건네주는 달걀과 푸성귀를 먹으며 조선의 백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만났다. 비숍 여사는 멈추지 않는 한강이 있기에 한반도를 가로질러 원산으로, 원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기며 조선 민중의 삶과 문화를 풍부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강의 물고기도 적잖게 맛보지 않았을까. 수많은 보와 댐, 강변의 도로가 한강의 흐름을 차단하는 지금, 당시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구 표면에 가장 늦게 나타난 인류는 대략 만 년 전 경작을 시작했다. 지금은 사막으로 바뀐 ‘비옥한 초승달 지역’, 다시 말해 나일 강에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서 농사가 비롯된 것이다. 이는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지중해문명을 끌어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일찍이 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작은 수렵채취 시절 몰랐던 편견을 인류 최초로 열었다. 필요한 농작물이라며 심고, 농작물을 심어야 할 자리에 뿌리 내린 식물을 잡초라며 뽑아 버렸다. 심은 작물을 갉아먹는 곤충을 해롭다며 쫓아냈고, 해충을 잡아먹는 동물을 이롭다고 반겼다. 농작물을 추수하면 먹을거리가 잠시 넘친다. 그로 인해 수렵채취 시절 자연스레 조절되었던 인구는 정착지에서 점차 증가했다. 증가한 인구는 예전처럼 통제할 수 없다. 이때부터 인류 사회에 계층이 발생했다. 편견은 점차 혹독한 차별로 이어졌을 것이다.

늘어난 인구를 효율적으로 통솔하는데 중앙 집중적 권력이 효과적이었다. 농사짓는 자들을 부리며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확장되는 경작지에 물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권력자는 농사꾼을 동원해 경작지 일원의 강을 관개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 했지만 인구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늘었고 물이 모자라면서 땅마저 메말라갔다. 인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다.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고.

농사를 위해 강가에 정착한 인류는 강을 오염시켰다. 농사로 부분적으로 오염시키다 이제 산업으로 광범위하게 오염시킨다. 농사짓던 시절, 잠시 오염되었던 강은 사람이 비키면 이내 회복되었지만 산업이 오염시킨 강은 여간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농사짓던 시절에는 강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건만 시멘트로 칠갑을 한 도시에서 산업이 거듭 확장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자연에 편견을 도입, 농사용 보로 가로막으며 강을 이리저리 교란하던 사람은 댐으로 물의 흐름을 아예 정체시키더니 그것도 모자랐는지 이제 ‘살리기’를 빙자하곤 대형 보로 만든 거대한 호수에 담아두려 한다. 우리나라의 현 시점의 이야기다. 생태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금력과 권력의 이해관계를 위한 개발이다. 강에 생명이 흐르지 않으면 생태계의 산물인 인류도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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