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4대강보다 민생이 먼저다-以食爲天(이식위천)

by anarchopists 2020. 1. 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4대강보다 민생이 먼저다

이식위천以食爲天

1. " 요새는 식량이 부족하고 날씨조차 고르지 못해서 흉년 들 것을 걱정해 그 때문에 민심이 어지러운 듯이 말하는 이가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것을 안정시키려고 미국, 일본에서 식량원조 온다는 것을 무엇같이 커다랗게 내놀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다. 민중의 맘을 딴 데로 끌어서 문제를 피해보려는, 약은 듯하면서도 어리석은 짓이다. 민(民)은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고 옛사람들이 말했지. 하지만 그것은 백성을 먹여만 주고는 짐승처럼 부릴 수 있던 옛날이야기지, 오늘은 그럴 수 없다."

2. 미국에서 쌀 가져오게 된 것을 무슨 외교에 큰 성공이나 되는 듯 말하지만 아예, 그만둬라, 네가 아니라도......어디서도 식량은 구해올 수 있다. 이 발달된 교통, 세계가 하나인 이 근대경제에 잘만 하면야 천재지변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느냐. 문제를 잘못 잡지마라.(함석헌, <꿈틀거리는 백성이라야 산다>, 《함석헌저작집》 4권, 한길사 2009, 18쪽)

위 글은 함석헌 선생님이 1963년에 쓴 글입니다. 45년 전 쓰신 글이 오늘날에도 딱 떨어져 맞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이 글을 쓰시기 이태 전에 친일파 군인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1961) 그리고 혁명공약을 발표하는 등 말도 안 되는 부선을 떨면서 사회가 안정되면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2년이 자나도 민정이양을 하지 않은 채 군사독재를 계속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함석헌 선생님이 군인들의 정치음모에 대하여 한 마디 한 대목입니다. 오늘은 함 선생님이 말한 이식위천(以食爲天)과 민생에 대하여 한 마디 하고자 합니다.

중국의 역사서 《自治通鑑》(자치통감)에 보면, 진시황(贏政)이 세운 진(秦)나라가 멸망할 무렵에 서로 나라를 차지하려
고 귀족출신 항우(項羽)와 하층민 출신 유방(劉邦)이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우는 강직하고 직설적이며 맑은 성격이어서 정치적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주변에 인물(참모진)이 많이 모여들지를 않았습니다. 이 말의 뜻을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 Niccolo; 1469~1527)가 쓴 《군주론》(君主論)에 비유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치꾼은 비도덕적이고 사악해야 한다. 그리고 인색하고 잔인해야 한다. 자기의 권력과 세력을 팽창ㆍ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도덕성ㆍ종교심ㆍ논리성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라고 정치꾼의 참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우처럼 맑은 성격은 정치꾼(참모진)이 모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유방은 달랐습니다. 군주론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정치꾼입니다. 그는 모사와 배반, 그리고 음모와 기만, 음흉과 야비함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악한 정치꾼들이 그 주변에 많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 대조적인 두 사람이 이제 중국천하를 두고 다투고 있을 때입니다.

때는 기원전 204년의 일이다. 항우의 우세한 병력이 하남성 잔류현과 외황(外黃) 땅과 수양(脽陽) 등 17성들을 공격하여 모두 함락시켰습니다. 이에 유방은 성고(成皐)의 동쪽지방(오창)을 포기하고 공(鞏)땅과 낙양(洛陽) 땅으로 가서 항우에 대항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방의 참모 역이기(酈食其)가 말렸습니다. “신이 듣건데, ‘知天之天, 王事可成’(지천지천, 왕사가성;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나라를 이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 ‘왕자이민위천(王者以民爲天), 민자이식위천(民者以食爲天)’이라고 했습니다. 무릇 오창(敖倉)은 오래 전부터 곡식을 많이 쌓아둔 곳입니다. 그래서 군량미가 풍부합니다. 그런데 항우가 형양(滎陽)성을 함락한 뒤 오창을 적졸(適卒; 죄를 지은 자로서 군사가 된 자)에게만 맡기고 동쪽으로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는 일입니다. 지금이 바로 초(항우)를 깰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히려 유리한 형세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이는 크게 잘못되는 일입니다. 천하는 두 영웅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초한(初寒)이 양립하게 되면서 천하의 백성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을을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데, 급히 군대를 출동시켜 형양을 함락시키고 오창을 차지하여 군량미를 풍족하게 한 뒤, 차례로 초의 땅을 먹어들어 가십시오. 그러면 천하의 백성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갈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하니 유방은 역지기의 말에 따라 오창을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는 중국천하를 손에 쥐게 됩니다.(자치통감 권10, 漢高帝 3년 추7월조, 개혁출판사, 183쪽)

위 중국역사 이야기에서 역이기가 유방에게 말한 ‘王者以民爲天, 民者以食爲天’은 《史記》(사기), <列傳> (열전) 중니편(仲尼篇)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 뜻은 임금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고, 백성은 하루 먹을거리(곧, 끼니)를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를 오늘날의 시대개념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국가는 민중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고, 민중은 먹고 살 수 있어야 국가의 존재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정치하는 꾼들을 보면, 가관(可觀)입니다. 국가구성원인 인민의 민생은 뒷전이고, 윗전을 비롯하여 정치꾼들이 죄다 제 뱃속만 차리기 바쁩니다. 마치 대한민국은 정글의 법칙만 난무하는 것 같습니다. 서민의 삶은 어찌 되었던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에 지들끼리 부지런히 ‘먹고 보자’는 식입니다. 중세 유럽의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을 읽은 탓일까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야채 값이 천정부지(天頂不知)로 오르는 이유에 대하여 정치꾼과 언론꾼들이 “기상이변으로 둘러대는”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채소 값이 오르는 진짜 이유는 4대강 개발 때문입니다. 4대강 개발로 강변의 근교농업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상이변으로 호도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화가 납니다. 그래서 요즈음 항간에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지도 모릅니다.(2010. 10.18,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