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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함석헌의 예언들 1

by anarchopists 2020. 1. 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예언들 1

[예언 1]"여럿이 아니다. 단 하나뿐이다. 군인이 제자리로 도로 물러가고 민정을 하는 일이다. 불안은 그것이 그리될 듯 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불안이다.(함석헌저작집4, 한길사 2009,18쪽)

만일 군사독재가 계속되면 앞으로 군사혁명이 또 있고 또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민중이 결국 노하는 날이 올 것이요. 주리고 눌린 민중이 격분하여 터지는 말이 오면 인간의 이성이 힘을 잃고 사회는 피와 물과 연기 속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함석헌저작집4, 한길사 2009, 25쪽)

함석헌의 에언은 적중했습니다. 17년 뒤,  전두환의 군사쿠데타가 왔습니다 이에 민중들은 분노의 함성이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독제를 통하여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는 권력내부의 모순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순식간에 권력의 공백기가 발생합니다. ‘박정희총살사건’(김재규에 의한)의 수사책임을 가지고 있던 보안사령부의 전두환이 이 기회를 포착합니다. 전두환은 재빨리 군부에 오랜 동안 부식해 놓았던 하나회를 중심으로 신군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친미반공정권을 승계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이것이 한국의 군사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기습적인 12.12쿠데타입니다.(1979) 이로써 정승화(계엄사령관)와 김재규를 제거한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의 권력까지 장악하고 군부독제체제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정권장악을 위한 첫 단계로 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합니다.


1980년 5.17계엄령 확대조치입니다. 당시 남한의 ‘자유민주세력’들은 더 이상의 군부정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군부의 친미반공정권 승계음모를 반대하는 시위집회를 연일 곳곳에서 열었습니다. 그러자 권력찬탈의 음모를 꾸미고 있던 전두환은 이를 군사폭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터져 나오는 민주화요구가 어느 한 지역에서 대규모로 폭발하도록 음모를 꾸밉니다. 바로 지역감정을 이용한 ‘광주’지역입니다. 전두환은 비열하게도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합니다. 광주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허위선전합니다. 그래놓고 광주시민들의 민중항쟁을 짓누름으로써 민주화 투쟁에 쐬기를 박으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삼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이 보여준 ‘5.18광주학살’의 원인이 됩니다.(1980)

‘5.18광주학살’ 뒤, 전두환 등 신군부는 권력기반의 안정을 꾀하려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반미ㆍ반군부적 성격을 지닌 모임과 단체, 그리고 그러한 인물로 지목된 자들에 대한 무차별 체포ㆍ구금입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아람회ㆍ한울회ㆍ금강회ㆍ오송회ㆍ부산 미문화원사건ㆍ강원도지역학생의 미성조기방화사건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아람회사건>은 일제시대 <105인사건>이 그러하였듯이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미심쩍다는 학생들의 신고만 가지고 사건을 ‘있었던 사실’로 조작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결국 함석헌의 예언대로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군인에 의한 군사독재는 또 다른 군사쿠데타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분노는 광주민중항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 피바다(군인에 의한 광주시민학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석헌의 예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시는 군인들이 힘에 의한 권력찬탈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습니다.(2010.10.18,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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