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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3.1절에 생각해 본다.-박정희 파시즘

by anarchopists 2019. 1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01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3.1절에 생각해 본다-박정희의 파시즘


“이 사회가 어디 지각이 있고 김정이 있고 의지가 있다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런던타임즈』도 우리보고 일본의 갈보라 하지요. 미국의 『타임』지도 우리를 일본 사람에게 갈보 노릇해 사는 나라라 하지요. 아, 인비목석人非木石)이라, 우리 가슴에 손을 얹어 봅시다."(《함석헌저작집》 8, 1979년 글, 119쪽)

만세(萬歲)

만세를 부르고 싶은데
부를 일이 없구나.
우리네 선조(先祖)들이 외쳐왔던
처절하고 비장하고 통쾌하고 감격적인 만세를
조국을 위해 정의를 위해 절대자(絶對者)를 위해 울분을 답답함을 풀기 위해
오늘 한 번 맑은 목청으로 외쳐보고 싶은데
최루탄에 기죽은 전후세대 우리들은 부을 일이 없구나.
엎어지고 짓밟히며 산천초목(山川草木) 들썩였던 기미년 삼월의 만세소리
아우내 장터에서 옥중에서 법정에서 종횡무진 터져나온 유관순(柳寬順)의
만세소리
해방된 날 기쁨에 겨워 불렀던 환희의 만세소리
말로만 듣고 배운 그런 모범적인
가슴 벅찬 만세를
가슴 후련하게 불러보고 싶은데
태평성세 부국안민을 누리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선
부를 일이 없구나.
미친놈 마냥
파고다공원이나 중앙청광장에서 두 팔 높이 들고
목청껏 한 번쯤 외쳐보고 싶지만
그날의 왜경에서처럼 왠지
말발굽이 겁이 나서 두려워서
국경일 기념식장에서나 대한민국만세를
세 번씩 따라 부른다.
잘 연습된 배우처럼
소리만 높고 팔만 올리고.

위 글은 박선균이 펴낸 《금지된 씨알의 소리》(1987)에 실린 1974년작 김가영의 시다. 이 시는 《씨알의 소리》에 실렸으나 전면 삭제된 바 있다. 1974년과 75년은 박정희 총통제(제제화帝制化)의 첫걸음을 디딘 유신체제가 들어서고 일체 유신체제를 비방하지도 못하게 했던 긴급조치 1호(1974. 1.8)가 발동하던 시기이다. 긴급조치1호의 내용을 보면,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로 되어 있다. 이중 무시무시한 말은 “처단”한다는 말이다. 일본 놈들이 독립군들에게 자주 썼던 말이다.

긴급조치 1호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헌법이라면, 유신헌법을 말한다.
유신헌법은 제4공화국의 헌법이다. 법조항은 전문과 12장 126조 및 부칙 11조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삼권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전면 부정되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박정희에 반대하는 비판세력의 일체 발언과 행동을 원천봉쇄하였다. 따라서 법률 유보조항을 두면서, 1) 국민기본권의 대폭 축소, 2) 입법부의 국정감사권 박탈과 연간회기 제한, 3) 통일주체국민회의 설치와 이에 의한 대통령 및 국회의원 1/3 선출, 4) 사법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재판소를 정치적 헌법보장기관인 헌법위원회로 개편, 5)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 부여, 6) 6년으로 대통령 임기 연장과 중임제한조항 철폐, 7) 헌법개정 절차의 이원화, 8) 지방의회 설치는 통일 이후로 보류” 등이다.

이 내용을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보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만든 대한민국 헌법(전부개정 1987.10.29.)과 대입하여 일반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신헌법은 1) 국민투표를 빙자하여 만든 파시즘체제이다. 이에 따라 파쇼적·독재적·비민주적 성격을 갖는다. 2) 박정희의 제제화를 지향한 첫걸음이었다. 만약에 김재규에 의한 죽임이 없었더라면 박정희는 군주체제를 위한 제2의 파시즘헌법을 국민투표를 빙자하여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3) 유신헌법은 파시즘체제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평등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곧 인권(사람)보다 국권(국가=박정희 이익)이 위에 놓이는 역사흐름의 뒤바꿈이 되었다. 4)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민주권을 대신함으로써 민주주의 원칙이 사라졌다. 5)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가 박탈되었다. 6) 자유롭게 재판을 받을 자유도 박탈되었다.

그래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분들이 800명이 넘는다. 이 때문에 당시 “전국토의 김옥화”, “전국민의 죄수화”라는 유행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박정희의 이러한 파시즘체제와 제제화 음모에 대하여 ‘민주청년학생연맹사건’과 같은 민주화운동이 박정희가 죽는 날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은 긴급조치에 항거하여 할복자살까지 하였다.(1975.4.11.)

3.1절이 다시 돌아왔다. 이날에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들려온다. “이 사회가 어디 지각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다하겠습니까” 박정희가 죽은 지 33년만에 제제화를 꿈꿔왔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결국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의 주인으로 들어갔다. 신라 진평왕의 딸 덕만이 왕궁을 떠나 야인으로 있다가 첫 여왕(선덕)으로 등극한 사례와 비슷하다. 김가영님의 시 3.1만세에서 나오는 유관순의 불의에 대한 저항정신을 계승하여 박정희 파쇼 때, 민주투사들의 저항이 있었다. 그들은 긴급조치라는 악법에 의해 고통을 받고 어떤 이들은 영어의 몸이 되는 바람에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 인생행로가 바뀐 자들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고 싶다. 이들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모두 국가(민주화)유공자로 전환하고 그들에게 상황에 따른 보상을 해주기를 94주년 3.1절을 맞이하여 부탁을 드려본다. (2013. 3.1 황보윤식)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아래 그림은 경향신문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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