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해세력

by anarchopists 2019. 1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14 06:2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해세력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2013. 2.12) 등으로 한반도를 들러싼 국제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3차 핵 실험을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 대사들이 김숙 안보리 의장 주재로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었”다(YTN, 2013. 2.14일자), 일본의 아베 총리는 “국제정세는 자꾸 변하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어떻게 할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공격 장비 보유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경향신문, 2013. 2.13일자), 또 한국군 관계자는 “700여명이 넘는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대테러작전은 불가능하다”, “개성공단을 점령하고 우리 국민을 지켜야하는데 이 경우 전면전은 불가피하다” 고 전면전(全面戰) 불사라는 말까지 하였다.(아시아경제 2013. 2.12)

인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로 가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정말 이 시대에 전쟁은 안 된다. 이런 생각에서 오늘은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해세력”은 누구인지를 《생각과 실천》 2(한길사, 2012.11)에서 함석헌의 생각을 발췌하여 올려본다.

함석헌은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에서 ‘나라’와 ‘국가’를 구분지어 설명한다. 나라는 사회적 의미의 전통적 나라를 말하고, 국가는 정치적 의미의 근대적 국가라는 설명이다. 곧, 함석헌이 말하는 ‘나라’는 인간성(인정과 의리)과 종교 신앙에 근거를 둔 관습법(불문법)으로 유지되는 전통사회를 말한다. 그리고 전통사회=‘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폭력을 모르는 성군 타입의 족장이거나 덕망을 갖춘 자라고 하였다.

함석헌은 전통적 사회 곧 ‘평화적 나라’에서 근대적 사회 곧 ‘폭력적 국가’로 타락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함석헌은 고대국가 이후 나타나는 정치적 영웅을, 참된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던 씨알의 ‘나라’를 도둑질한 권력자라고 불렀다. 함석헌은 바로 씨알을 무시하는 정치를 정부지상주의, 국가지상주의라고 불렀다. 함석헌은 이 국가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세력들이 바로 인류의 평화운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여기서는 함석헌이 말항는 한번도의 평화운동 방해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발췌해 본다. 함석헌은 평화운동의 방해세력으로 넷을 꼽았다. 1) 강대국의 권력자, 2) 독점자본가, 3) 약소국의 권력자, 4) 씨알들의 민족감정이다.

첫째, 함석헌은 강대국의 권력자를 폭력조직인 군대를 지니고 과학과 정보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정치세력으로 보고 있다. 곧, 막강한 군대, 첨단의 과학을 독점하고 있는 강대국의 권력자가 ‘힘의 강제’를 통하여 평화운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았다.

둘째, 그리고 강대국의 권력자 뒤에는 이들을 조정하는 독점자본가가 있다고 인식하였다. 이들 독점자본가는 판매시장의 확대를 위하여 시장의 영역을 두고 경쟁을 한다. 여기서 시장의 국경선이 생긴다. 그래서 시장국경선을 놓고 정치권력을 배후에서 조정 하여 전쟁을 부추긴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2003)은 대표적인 예다.

셋째, 함석헌은 또 평화운동의 방해세력으로 ‘약소국의 권력자’를 들었다. 약소국의 권력자들은 권력연장과 독점을 위하여 제 민족과 인민을 속이면서 강대국의 권력자에 빌붙어서 강대국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인식하였다. 함석헌은 이러한 약소국의 권력자를 ‘전쟁의 청부꾼’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강대국에 아부하면서 약소국인 자
국의 권력을 탐하는 전쟁의 청부꾼이 있는 한 약소국끼리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약소국의 권력자가 강대국 권력자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국의 이익을 배반하는 힘의 법칙이 존재하는 한 평화운동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함석헌의 주장은 오늘날 한반도의 남북관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뼛속깊이 친미주의자”인 이명박이 남한의 수장이 되면서 남북관계는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계속하였다. ‘연평도피격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직전까지 왔다갔다. 이는 민족의 이익보다는 강대국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반도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 또한 한반도의 군사적 이익보다는 동북아에서 패권을 지속시키려는 미국의 군사적 이익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넷째, 함석헌은 씨알들의 민족감정을 평화운동의 방해요소로 들었다. 그는 씨알들의 민족감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씨알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감정을 권력자들이 전쟁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인식이다. 때문에 씨알들의 좋은 민족감정이 오히려 평화운동에 방해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함석헌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국가주의는 무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민족주의는 권력자들이 악용하여 전쟁으로 몰고 갈 위협을 안고 있기 때문에 타파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타당한 논리를 갖는다. 그 사례를 우리는 여러 곳에서 보루 수 있다. 하나는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민족과 인종주의를 이용한 범. 둘은 근래 한국에서 박정희가 민족주의를 정치에 악용하여 ‘민족중흥’이라는 기치(旗幟)을 걸고 부패 자본주의를 조장하고, 남북관계를 긴장시키고, 나라사람들을 기만한 점이다.

함석헌의 이야기를 다시 음미해 볼 때, 이번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한반도 긴장상태를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평화운동의 방해세력이 누구인지 재삼 생각게 한다. (2013. 2.14, 취래원농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