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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권력의 통제로 사라진 말들을 되찾을 때가 아닌가

by anarchopists 2019. 1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04 07:46]에 발행한 글입니다.


권력의 통제로 사라진
말들을 되찾을 때가 아닌가

오늘은 권력의 통제로 사라지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독재적 권력에 의해 인권이 통제되고 억압을 받아왔다. 이와 더불어 우리말도 통제를 받아왔다. 이제 아름다운 우리말들을 되찾을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옛날에 우리 어른들 시절에는 일요일만 쉬다가 점차 토요일은 반만 일하고 쉬게 하는 제도(半空日)가 나오다가 지금은 2일(이틀)을 쉬는 제도가 나오게 되었지요.(주40시간근무제라고도 한다.) 한국은 1998년 2월부터 주5일근무제를 추진하기 시작해, 2003년 9월 15일 공포하고, 2004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인간은 일해야 먹고 산다. 그리고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게 인간의 본질이다. 그 일하는 것을 근대용어로 노동(勞動)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동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념(사상: 자본주의가 옳다, 사회주의가 옳다)문제를 가지고 나라를 두 동강 냈다. 그래서 북쪽은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남한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를 만들어 서로 지네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탓으로 세계에서 같은 겨레가 한 땅덩어리를 갈라가지고 사는 하나밖에 없는 민족이 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우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남한은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자본(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를 자본가라고 한다. 국가도 포함된다)들이 회사를 차리고 기업을 차리고 공장을 만든다. 그리고 돈이 적거나, 공장을 차릴 수 없는 사람(일반적으로 국가에서는 이를 국민이라 한다)들은 자본가가 만든 회사나 기업, 또는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을 시키는 자본가와 일(노동)을 하는 노동자 두 계급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계급이라는 말을 사회주의국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사회용어라고 해서 남한에서는 자본가를 부유층, 노동자를 서민층이라고 하여 계급 대신 계층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들이 정치논리나 이념에 의하여 왜곡(歪曲: 살과 다르게) 또는 변질시켜 쓰고(使用) 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와 사람은 하나다. 그런데 땅덩어리가 갈라져서 남쪽은 대한민국, 북쪽은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나라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대한민국 헌법에서는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에 포함시키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볼 때는 우리 영토 전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의미에서 남쪽은 남한(남쪽 대한민국=남한), 북쪽을 북한(북쪽 대한민국=북한)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북조선인민공화국은 자기네를 북조선(북조선인민공화국) 남한을 남조선(남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 땅덩어리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한반도’라고 부르고, 북조선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양쪽의 ‘용어사용’이 자꾸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기념하는 날을 ‘노동절’(勞動節, Labor Day, May Day)이 아닌 ‘근로자의 날’(Workers' Day)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국민통제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치적 이념, 사상의 문제다. 국제적으로 노동자의 용어가 맞는데 이 말을 북조선 사회에서 쓰고 있으니까. 남한의 정치가들은 공산국가에서 쓰는 용어를 못 쓰게 하기 위해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바꾸게 되었다.(1963년 노동법의 개정시 노동자를 근로자로 규정한다.)

이와 비슷한 예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양과 달리 옛날에 상대방을 호칭할 때 지식을 가진 상류층 계급에서는 사람 이름을 직접 부르고 않고 호(별호, 별명)을 만들어 호로 불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18세기 살았던 정약용 선생은 호가 다산(茶山)이었다. 그래서 친구나 이웃들이 정약용 선생을 부를 때, “정약용” 또는 “약용”아, “약용
선생님” 등으로 부르지 않고 “다산”, 또는 “다산 선생님”등으로 불렀다. 그리고 서민(이를 일반적으로 백성=농민이라고 하였음)사회에서는 일제시대 사회주의가 도입되면서 “동무”라는 호칭(상대방을 부르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는 사회주의를 탄압하면서 사회주의식 평등개념이 담긴 ‘동무’라는 말을 못 쓰게 하였다.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찾아 다시 ‘동무’라는 말을 널리 쓰게 되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 동무라는 말이 북조선에서 쓰는 사회주의 언어라 해서 의도적으로 못 쓰게 하였다. 또 있다. “인민”이라는 말이다. 남한에서 쓰고 있는 국민이라는 말은 원래 인민이라는 말이다. ‘국민’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천황이 통치하는 국가에 충성하는 백성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인민이라는 말도 북조선에서 쓴다하여 남한에서 의도적으로 안 쓰게 되었다. 정치적인 논리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참 나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대한민국 국가에서 노동자니, 동무니, 인민이니 이런 말을 못 쓰도록 법으로 막은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반공독재를 꾸려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이런 말을 쓰면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붙잡아가 때리고 감옥에 처넣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 다시 말하면, 나라사람들이 붙잡혀 감옥에 안 가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말들을 안 쓰게 되었다는 뜻이다. 참으로 우리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권력에 의해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사용통제가 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2013. 3.3 황보윤식)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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