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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부 논단

함석헌-국가지상주의는 독소다.

by anarchopists 2019. 12.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0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국가는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함석헌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현실의 정부는 언제나 정직한 대표자가 아니고 사사 야심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민중은 늘 제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지배자들은 자기네의 야심을 감추고 변명하기 위해 ‘국가’를 내세우지만, 국가주의는 결국 폭력주의다” 그러면 국가의 본질과 변천에 대하여 인민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고대 역사에서는 그래도 국가구조가 단순하여 인민들을 짓누르는 착취도구가 단순하였다. 정치권력에만 속박 당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고대 중반기에서 중세로 들어오면 국가라는 울타리를 타고 인민을 착취하는 지배구조가 하나 더 생긴다. 종교다. 아시아는 불교이고 유럽은 그리스도교다. 종교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이용하여 권력과 친밀하게 밀착(불교는 호국볼교, 왕실불교화, 그리스도교는 “기존 권위와 권력에 대한 사회적 복종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의무다” 라 하여 현실권력에 대한 복종을 미화한다)한다. 그리고 이 두 지배권력은 인민에 대한 착취를 분업화한다. 곧, 정치가는 현실적 착취를, 종교는 내세적 착취를 담당한다. 그래서 이제껏 종교는 사랑ㆍ평화ㆍ천당이라는 관념세계를 만들어 내세의 운명을 매개로 물질적 착취를 합법화해왔다. 그러니까 종교권력이 발생한 이후,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인민들 입장에서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으로부터 이중 압제를 당해 온 셈이다.

근대에 들어와 산업혁명(1760년 이후)과 함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발생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합된다. 그래서 국가의 양태는 자본주의국가로 둔갑한다. 인민들로 볼 때 그들을 지배하고 압제하는 존재가 더 늘어난 셈이다. 자본의 힘이요, 자본가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사는 인민들은 이제 정치가와 종교가, 그리고 자본가, 이 세 지배층에게 삼중으로 속박과 구속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라는 도구는 정치가ㆍ자본가ㆍ성직자들이 인민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가지고 그들의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재건축해 내고 있다. 이렇게 현대 국가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인민들은 권력과 종교 그리고 자본의 힘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어 있다. 곧 국가권력(정치, 자본, 종교)은 합법화된 인민에 대한 폭력 그 자체이다.

우리는 지나온 세월 국가폭력을 많이 경험하였다.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국가(권력)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데 많은 방해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국가주의를 극복할 때가 왔다.”, “ 국가지상주의는 독소다”라고 함석헌이 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국가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함석헌은 “자발적인 양심의 명령에 의해 성립”되는 공동체주의(같이 살기)를 주장하였다. 《함석헌저작집》 2권, 한길사, 2009, 285쪽(이하 저작집); 저작집 3권, 191~216쪽 참조; 저작집, 8권, 74쪽; 저작집 13권, 147~148쪽.

평등ㆍ평균ㆍ자치의 ‘공동체주의’다. 국가주의(폭력적 억압정치, 독재적 권위정치)를 극복하고 인간자율에 의한 평등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역사 속에서도 많이 있어왔다. 곧 農民起義다. 역사 속의 농민기의를 통하여 미래사회의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농민기의는 역사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농민의 난'을 말한다.
옛날 동아시아에서는 왕(王)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권력 위주로 역사서들이 써졌다. 그래서 기전체(紀傳體)가 역사서(史書)의 중심된 서술형식이 되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폭력적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을 민란 또는 농민의 난(亂: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윗전에 대드는 逆賊의 의미) 등으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지배권력 중심의 역사인식이 무비판적으로 오늘날에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제 역사기록은 달라져야 한다. 역사를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게 아니다. 민중(원래 民衆은 人民으로 씀이 옳다)의 입장에서 보면 민란은 분명 지배층의 못된 짓거리에 대한 자유(=正義)와 평등의 항거였다. 따라서 난의 의미가 아닌, ‘사회정의를 위한 자유와 평등의 항거’라는 의미에서 기의(起義)라고 씀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인지는 모른다. 함석헌은 국가라는 울타리, 자본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권력과 타협하여 인민을 정신ㆍ물질적으로 이중 속박하는 종교라는 울타리까지 모두 거두어서 역사박물관으로 보내자고 했다. 인민에게 있어서 국가주의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무익한 울타리일 뿐이다. 이제 인민을 가두고 속박하는 울타리 속에 갇혀 살지 말아야 한다. 인민은 그들의 삶의 방법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바로 지역공동체요, 자치공동체다. 국가주의의 대안은 함석헌이 말하는 주체적으로 ‘같이 살기’(공동체주의)이다.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이글은 2011년 6월 부산아카데미에서 발표된 내용을 재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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