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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부 논단

아직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아니다.

by anarchopists 2019. 12.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9/12 07:22]에 발행한 글입니다.


아직 민족주의를 버릴 때가 아니다.

역사발전은 지역과 나라에 따라 ‘발전단계’에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청동기의 발전이 세계4대문명 발생지역에서 기원전 5,000여 년 전에 발생하였다면, 여타지역은 그들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청동기 문명의 발생시기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근대의 발생도 진보적 그리스도교 윤리구조를 가지고 있던 유럽이 15세기부터 자율적으로 시작하였다면, 보수적 유교주의 윤리구조를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는 19세기에 들어와 타율적으로 시작한다. 근대로 들어오면, 국민국가의 성립과 함께, 민족과 민족주의 개념도 발생한다. 함석헌이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탈민족주의로 가기는 이르다. 그러면 근대의 개념으로써 탄생된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자.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는 민족개념을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강역을 중심으로 국가를 건립하고 민족을 구분해 왔다. 즉 중국은 그들을 화하(華夏)라 하였고 중국 변방의 민족을 (만이융적)蠻夷戎狄이라 하였다. 하여 중국은 일찍이 오늘날의 민족개념은 아니지만 자신들을 문명을 가진 민족공동체로 인식하고 여타민족을 야만인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근대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민족의식이 없었다.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민족개념이 언제 발생했는지를 유럽식 기준에 붙여 딱히 꼬집기는 어렵다.

어쨌든,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유럽의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성립 및 확산과정에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유럽으로 볼 때, 15세기 르네상스와 16세기 종교혁명, 17, 18세기 자본주의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스도교 보편주의에 눌러 민족의식이 발생하기 어려웠다. 네덜란드(그리스도교 신파)가 스페인(그리스도교 구파=가톨릭)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발생하는 30년 전쟁 끝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을 체결한다. 베스트팔렌조약은 유럽을 사회적·경제적·정치적·종교적 분야에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국경이 정해지고 국가별 주권이 존중된다. 이어 부르주아 상인계급이 이끄는 시민혁명을 통하여 봉건질서를 붕괴시킨다. 곧 시민혁명이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혁명이다. 시민혁명은 봉건적 특권계급을 타도하면서 국민주권론(國民主權論)을 대두시킨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내수시장을 발달시키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생성시킨다. 사상적으로는 개인주의 성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개인주의는 개개인의 특성을 억압하는 계급구조와 가톨릭 전통(보편주의)에 대하여 반발하였다. 이 결과 종교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파의 신앙이 보장되었다. 그리고 신교국가들이 독립하였다. 이렇게 국가 주권의 인정, 자본주의, 개인주의는 서로 융합되면서 1830년 프랑스의 7월혁명을 거친 19세기 말에 자각적인 민족주의를 탄생시킨다.이를 바탕으로 민족국가(民族國家) 또는 국민국가(國民國家)가 탄생한다.

아시아에서는 ‘역사민족’ 이 일찍이 있어왔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민족’의 개념은 유럽에서 발생하였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용어는 완전히 서구적인, 서구 중심적 개념이다. 민족이라는 용어에 담긴 개념은 단순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가변적인 공동체적 개념도 아니다. 민족은 대체로 혈연ㆍ지연이 같은 자연적인 요인에다 언어ㆍ역사문화가 같은 정신적 요인을 포함시켜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조상의 영토조건, 문화조건에 의하여 타의적으로 부모와 조상이 삶을 영위해 왔던 그 민족에 귀속된다.

민족주의는 발생하는 지역마다 그 성격과 특성이 다르다. 민족주의의 지역적 양태를 보자. 16세기 중세봉건체제의 ‘절대적 권력’과 ‘권위적 종교’에 대한 저항(르네상스ㆍ종교개혁)에서 ‘개별적 민족주의’가 대두한다. 이후 19세기 유럽 중심의 세계는 제국주의질서가 성립하면서 ‘반동적 민족주의’가 발생한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에서는 식민지ㆍ반식민지 상태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 민족주의를 발생시킨다. 즉 ‘식민지민족주의’이다. 따라서 유럽의 민족주의와 아시아의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서구의 ‘민족’과 ‘민족주의’개념으로 우리 민족과 식민지민족주의(지금의 통일 민족주의)을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탈민족주의가 구미지역에서 하나의 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역사적ㆍ민족적 상황이 다른 우리마저 맹목적으로 민족주의를 방기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 앞에 놓여있는 당면한 과제를 보자. 민족내부의 선결문제인 분단조국의 통일을 선결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외부로부터 오는 외세의 영토침략(중국이 노리고 들어오는 한반도 북지역의 중국영토화) 및 역사침략(독도, 만주에 대한)도 막아내야 한다.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곧 민족의 문제이다. 우리민족 대내외의 문제를 버려두고 세계경제의 기본토대가 변한다고 하여 민족의 생존문제까지 덮어둘 수는 없다.

한반도 남한의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과 그리고 그 안에 생존하는 모든 구성원을 압제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아직도 우리 민족이 분단세력 및 비민주적 정치와 자본권력으로부터 인권적 탄압과 민족적 분열을 강요당하고 있는 한, 한국 땅에서는 아직도 민족주의가 유용하다. 오늘날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곧 ‘통일민족주의’이다. 역사의 발전단계는 세계 각 지역이 서로 각각의 차이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면 아직도 우리 민족은 민족주의가 완성되지 못하였다. 우리에게서 탈민족주의가 일어나는 날은 민족이 통일하는 날이다.

즉, 포스터모더니즘으로 가고 있는 유럽과 달리 동북아는 아직도 근대국가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민족과 영토가 분단당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근대국가의 미완성 및 통일의 미완성 상태에 놓여있는 한국은 민족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근대미완성’ 상태에서 ‘포스터모더니즘’,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아직은 이른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외세를 극복하고 민족이 하나가 되려면, 남과 북이 공유하는 ‘동족적 통일민족주의’의 모태가 있어야만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통일민족주의’는 조국통일을 위한 징검다리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2011. 9.12,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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