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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부 논단

함석헌의 미신인식과 비판적 검토

by anarchopists 2019. 1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2/02 05:4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미신인식과 비판적 검토

[함석헌의 미신인식]

함석헌은 “지금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迷信입니다”(함석헌저작집 4권, 200쪽)


“우리에게도 철학은 있다. 숙명철학 팔자철학이다. 종교도 있다. 샤머니즘 무당종교 이것은 20세기에 부끄러운 일이다. (기성세대=무식한 민중)은 숙명관에 곰보가 되고, 무당종교에 이상심리가 된 민중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망한 민족이다." (저작집 13권, 66쪽)

“그런데 오늘 우리 민족은 밤낮 싸움질만 하고 변변한 나라 만들지 못한 민족이다. 생각은 옅어지고 좁아지고, 큰 계획도 없고, 깊은 연구도 없고, 구차하게, 게으르게 더럽게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66) 왜 이렇게 됐습니까? 이 나쁜 사상, 어리석은 미신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을 뿌리에서 뽑아 고치지 않는 한 어떤 노력을 해도 어떤 새 시대가 와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저작집 13, 66)

국회의원 출마에도 굿, 관리 승급할 때도 굿, 애기가 앓아도 굿,....섭섭이에 균이 들어 있고. 십이지장에 벌레가 박혀 있는데 아무리 영양 있는 것을 먹으면 소용있어요? 우리 모든 이론과 학설과 기술을 소용없이 만드는 것이 이 미신입니다.”(68~69)

“종교와 철학은 따로가 아니다. 철학을 따져 올라가면 믿음에 이르는 것이고 참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철학이 나올 것이다. 철학을 반대하는 종교, 아무 뜻 모르고 맹신하는 종교, 그것은 미신이다.”(저작집 13권, 72)

“샤머니즘은 아직도 마법종교요 교리가 없습니다. 윤리적 계명도 없고 신비적 체험도 없습니다. 미신입니다.”(13권 73)

[미신은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인가.]
이렇듯 함석헌은 무당이나 샤머니즘을 미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함석헌이 말하는 무당이나 샤머니즘이 철학을 가진 믿음이라면 곧 미신이 아니다 라는 해석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신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에, 일부 그리스도교인의 훼불(毁佛)행위의 근본원인은 불교를 미신과 우상숭배로 보는 잘못된 신앙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리고 종교 및 신앙지식의 부족함과 맹목적 신앙관을 가진 일부 목사들의 사주(미신이 있다고 믿는 그릇된 설교?)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미신을 포함하는)에 대하여 조금 이야기해 보자. 종교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전문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간단히 말해 보자. 종교가 처음 생기게 된 근원적 배경은, 인간의 무지(無知)에서 생겨난다. 구석기시대는 종교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는 신석기에 이르러 농경생활을 하게 된다. 신석기인은 농경생활을 하면서 먹거리(食糧)를 얻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들 신석기인들은 자연의 현상 중에 움직이는 것에 주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이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있고 또 구름이 있다. 자연의 과학적 변화에 몽매했던 신석기인은 이러한 움직이는 자연의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저들(태양, 구름, 비, 바람)이 없으면 농사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농사는 삶 그 자체였다. 따라서 농사가 잘되고 안 되는 것은 이들 자연의 조화에 달렸다고 인식하였다. 그래서 신석기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되는 이들 태양, 구름, 바람을 두려운 존재(神)으로 받들게 되었다. 여기서 태양신, 바람신(風神), 비신(雨神), 구름신(雲神), 생겨났다.(《三國遺事》 권1 〈紀異〉 古朝鮮條) 이것이 신앙발생의 초기 모습이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신석기인은 이들 자연신을 위대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부락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자연물을 조각하고 그렸다. 위대한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의 표시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바위그림(岩刻畵)과 벽화에 태양신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결코 미신이 아니다. 저들 신석기인의 숭고한 신앙이었다. 태양신을 조각하거나 그림을 그린 것은 우상이 아니다. 저들의 돈독한 신심의 표현이다. 순수한 휴머니즘의 발로다.

신앙은 시대와 문화의 변천과 함께 변한다. 곧 신앙(종교)의 진화다. 따라서 토착신앙 위에 다른 종교가 들어와서 앞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신앙행위를 미신과 우상으로 매도한다면(대체로 새로운 신앙이 들어오면 앞의 신앙을 파괴하고 그 위에 새 신앙의 상징물을 설치한다. 이것을 문화 또는 신앙의 중복현상이라 한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신앙과 종교는 그 시대 인간의 ‘삶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즉, 그 시대에 필요한 신앙이었다. 그리고 고대국가를 비롯한 국가주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가난과 억압의 설움을 받고 살아가던 피억압층의 희망이었다.

국가가 나오기 전 휴머니즘의 부활이요, 미래에 대한 상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신앙행위를 미신으로, 그리고 그들의 종교문화로 남아 있는 신앙대상물을 우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어차피 역사와 문화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가는 것이기에 앞 시대 사람들의 사고는 낮을 수밖에 없다. 앞 시대의 문화를 전승 받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는 것이기에 자기 조상의 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문화가 진보적으로 진화한다는 논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이 이점을 몰랐을까. 함석헌 자신도 “무릇 민족성이라는 것, 민족신앙이라는 것은 역사의 살림을 해오는 동안에 생긴 일종의 정신적 분위기입니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오늘 생각하고 내일 생각한 것이 가라앉고 엉켜서 되는 것입니다.”(저작집 13권, 67쪽) 또 “사람끼리도 흩어졌다가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이러는 거지요. 끌어안고 이러는 것이 조금 발달하면 댄스가 돼요 그래서 옛날 종교치고 댄스 없는 종교 어디 있어요. 무당은 반드시 춤을 잘 춥니다. 본래 만나는 것이 좋아서 이러니까 서로 하나다. 하나 됐다. 이거 좋아서 그러는 데서 무당이라는 게 나온 거요”(저작집 13권, 265쪽)

이렇게 함석헌도 고대 신앙을 ‘삶의 행복’, ‘만남의 희망’ ,‘기쁨’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샤머니즘과 민간신앙은 결코 미신이 될 수 없다. 늘 어느 시대 발생하던 신앙은 개인의 행복이요, 휴머니즘(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타인과 공존을 중시하는)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미신이란 개념은 뒤에 나온 종교가 앞의 종교를 크지 못하게 하려 데서 만들어낸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함석헌이 우리의 전통적 샤머니즘과 민간신앙에 대하여 ‘미신’ 운운한 것은 서양신앙인 그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2013. 1.18,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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