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학회] 함석헌의 한국기독교 비판과 순령주의 1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22 06:31]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부터는 지난 4월 16일 <함석헌학회> 창립
기념학술발표 내용을 연속으로 싣습니다.
먼저 강영안 교수의 글부터 싣습니다.
많은 구독 바랍니다.


함석헌의 한국 기독교 비판과 순령주의(純靈主義)

1. 왜 함석헌인가?: 개인적인 이유

함 석헌 선생님께 빚진 마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 어른께 무슨 빚을 졌느냐고 물으시겠지요.글을 배운 적도 없고 무슨 총애를 받은 적도 저에게는 없습니다. 저는 함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없습니다. 대학 시절 일부러 찾아 갔더라면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을 터이지만 그렇게 하지를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운 일입니다. 함 선생님께 무슨 빚을 졌느냐고 저에게 다그쳐물으시고픈 분이 계시겠지요.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걸음이 빨라진 것이라고 말이지요. 지금은조금 느려지긴 했습니다만 우리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 갈 때면 늘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선생님, 좀 천천히 걸어가시지요.” 학생들이 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제 걸음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이게 사실은 함석헌 선생님 때문입니다. 아니, 함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 받은 영향이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입니다.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가을인지, 겨울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때, 지금은 지도에서 없어진 경남 삼천포, 이제는 그냥 사천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시골에서, 정말 거의 아무 것도 없는 그 시골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나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누나가 사온 책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최초의 지적 눈 열림이고, 충격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고 신약성경을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란 책은 저에게 세 가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걸음이 빨라진 것이 하나이고, 책 첫머리에 나오는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라는 셸리의 시구가 두 번째이고, ‘열 두 바구니’란 제목을 달아 모아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함 선생님의 반성이 세 번째로 저에게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셸리의 저 시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늘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시구를 제목으로 달고는 이어서 함 선생님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나같이 이렇게 막힌 가슴 속에서도 무슨 스완 송이라도 나갈 것이 있겠는지 모르지만 만일 아무 것도 없다면 이 구절이라도 부르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이 글을 읽을 때는 ‘스완 송’이라는 것이 뭔지 몰랐습니다. 한참 뒤에야, 슈베르트의 슈바넨게장(Schwanengesang),『백조의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다시 초서(Chaucer)와 세익스피어, 그리고 플라톤의 『파이돈』까지 소급되어 간다는 사실을 훨씬 뒤에야 알았습니다.『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즐겁고도 기쁜 죽음과 관련해서 ‘백조의 노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조는 죽기 직전 가장 아름다움 노래를 부른다는 전설이 고대 희랍 전통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백조는 아폴론 신이 가장 아끼는 새 일뿐 아니라 시인과 예술가를 상징하기도 하는 새입니다. 시인이기도 하신 함석헌 선생님은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셸리의 저 시구를 자신의 ‘스완 송’으로 부르겠다고 하신 것이지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지만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란 시구는 저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겨울 산을 바라볼 때마다, 벌거벗은 나무 가운데 이미 발그스레한 봄빛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자공에게 “하늘이 무슨 말씀 있으시더냐? 사철이 돌아가고 있고 만물이 자라고 있지만,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天何言哉)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이 가운데서 겨울이 지난 뒤 봄이 오게 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공의로우심, 여상(如常) 하심을 읽어냅니다.


걸음 얘기를 했습니다만, 함 선생님의 책을 보면 그 어른께서 걸음이 빨라진 얘기가 나옵니다. 만세 사건이 있은 뒤, 조선 땅에는 강연회 행사가 많았는데, 김 미리사(1879-1955) 여사의 강연을 듣고 걸음이 빨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본래 뜻이 약하여 실행하는 힘이 아주 부족하다. 이 날까지 격언, 좌우명하는 것을 만들거나 써 붙이거나 해 보지 못했다. 나의 잘못을 알아 결심하고 고쳐 본 것이 없다. 누가 묻기를 수양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무 대답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걸음걸이 하나만을 내 성격과는 다르게 내가 힘써서 해 본단 하나의 일이다. (...) [김 미리사 여사가 말했다] “우리나라 청년 걸음걸이가 모두 잠자리 잡으려 가는 것 같습니다.” 듣고 나니 나보고 한 말 같아서 그것만은 참말 그 이튿날부터 실행을 하였다. (...) 지금도 다른 칭찬은 듣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걸음이 빠르단 말은 듣는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삼중당, 1964, 87-88). 이 말을 듣고는 저의 걸음도 바뀌었습니다. 함 선생님의 글을 읽고 중학생이 할 것이 뭣이 있었겠습니까? 정당을 조직하겠습니까? 교회 개혁을 하겠다고 운동을 하겠습니까? 실행할 수 있는 것이 걸음걸이 바꾸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빠른 걸음이 심장에 좋지 않다고 해서 요즘은 좀 천천히 걷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함 선생님이 보시면, 잠자리 잡으려 가느냐고 물으시지 는 않으시겠지요.


세 번째 저에게 남은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성입니다. 물론 어릴 때 유년 주일 학교라는 곳을 방학 때마다 참여했지만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닌 지는 중학교 1학년을 포함해서 채 2년밖에 되지를 않았고 신약성경을 몇 번 열심히 읽었다고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저의 이해가 제대로 잡힌 게 도대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교회에서 몇 번이나 듣고 복음서에서 몇 번이나 읽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끝난 뒤 남은 부스러기 열 두 바구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시는 함 선생님의 글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늘 듣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계속 하는 얘기도 늘 듣던 얘기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렴풋이 저는 교회 신앙과 다른 방식의 기독교 신앙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저는 계속 교회를 다녔고 교회에서 성경을 배웠고, 그런 전통에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기성 교회에 대해서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는 저에게 없었습니다. 지금도 장로교회, 그것도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마도 아직도 편견을 가지고 있을 법한, 고신측 또는 고려파 교회 장로로 교회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대로 곧장 ‘아멘’ 하지 않는 버릇을, 아마 이때 벌써 어느 정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그러면서도 기독교회의 근본 가르침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믿든 대로 저도 소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조금 배웠다고 해서 옛날사람보다 우리가 마치 훨씬 더 지혜로운 것처럼, 옛날 사람들이 모르던 과학적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삶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신앙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함 선생님의 글을 접했고, 제가 가진 기독교 신앙 때문에 나중에 대학생이 된 뒤에는 함 선생님께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분의 글을 읽고 그 분의 생각을 좀 정확하게 이해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강영안 내일 계속)



강영안 선생님은
강영안 교수님은 경남 삼천포에서 자라나셨다. 네덜란드(和蘭)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주체는 죽었는가? 타인의 얼굴, 자연과 자유 사이, 철학은 무엇인가? 강영안 철학이야기] 등 주옥한 같은 철학 저서를 출판하여 한국 철학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윤실(기도교윤리실천워원회)의 총무와 대표를 역임하였다. 특히 기독교 서적으로는 사도신경강해에 해당하는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과 [강영안교수의 십계명 강의]를 출판하였는데 매우 권위 있고 박학다식한 기독교 지식과 논리가 용해되어 있습니다. 현재 학술연구재단의 역사철학단장으로 임명되어 대덕 한국연구원 역사철학 과장으로 파견 근무 중에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