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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학회] 함석헌의 기독교 비판과 순령주의 4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4/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기독교 비판과 순령주의(純靈主義)

2.2 1950년 대 중반 논쟁 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이해*

함석헌 선생님의 한국 기독교 비판이 교회 매체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많이 관여했다고는 하지만) 사회 일반 매체였던 『사상계』를 통해서 논쟁이 격화되는 동안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누가복음 17장 21절 말씀의 적용이 훨씬 더 강하고 직설적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칸트가『순수이성비판』1판 서문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비판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비판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강하게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함 선생님의 비판 작업은 칸트와 비슷한 노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칸트의 이성 비판은 이성 사용의 정당성, 곧 이성 능력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재판 과정이면서도 이성이 빚어내는 가상을 드러내어 이성의 건강을 회복하자는 의도가 그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기독교비판도 마찬가지로 한국 기독교의 비행과 잘못을 드러내면서 결국에는 한국 기독교가 앓고 있는 질병을 -이를 일컬어 ‘고혈압’(16: 118, 220 참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앙의 경화증’(16: 216)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고쳐 보자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왜 비판을 통해서 그러한 치유가 필요한가 묻는 이에게 함 선생님은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1956)란 글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종교는 믿는 자만의 종교가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이다. 종교로써 구원 얻는 것은 신자가 아니라 그 전체요, 종교로써 망하는 것도 교회가 아니라 그 전체다(16:104).

함석헌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는 ‘전체’라는 개념이 여기에 출현합니다. 저는 아직 이 개념, 이 사상을 함 선생님이 언제부터 쓰고, 펼치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개념임은 틀림없습니다 . ‘전체’란 여기서 사회 전체, 나라 전체라 보시면 크게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구원, 국민의 양심을 이끌어가도록 기대할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는데 -적어도 1950년대 이 시점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한국 기독교가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 함 선생님의 한국 기독교 비판의 동기입니다(16: 105 참조).

한국 기독교를 해방 후 10년이라는 시점에서 비판을 할 때, 함 선생님은 거의 모든 경우에서 보듯이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도합니다. 해방이 되자 기독교와 공산주의,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경험한 뒤, 한국 교회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쏟아내고, 이것을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면서 교파 분열이 이어지고, 그 다음으로는 신유를 강조하는 ‘성신운동’과 교회당이 늘어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흐름의 근저에는 결국 돈이 있다고 보고,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가, 맘몬의 교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앞에서 물(物), 곧 물신(物神)을 섬기는 세속적 무신론에 관한 얘기를 했던 것과 사상적으로 동일한 맥락입니다.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1956년의 저 유명한 논설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윤형중 신부와 논쟁을 해 가는 가운데 쓴「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사상계』1957년 6월호)는 글에 격한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윤 형중 신부가 가톨릭 교회를 일컬어 ‘불멸의 가톨릭’이라고 것에 대해서 함 석헌 선생님은 매우 격하게 반응합니다. 민중아, 하늘나라는 네 가슴 속에 있다. 불멸의 가톨릭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부도수표에 속아서 모든 정신적 자산을 내놓지 말라. 너는 네 불멸을 네 안에 찾아야만 불멸이니라. 인간의 자유를 뺏는 가톨릭이 불멸함이 인류의 수치일지언정 결코 자랑도 행복도 아니다(16:157). 함석헌의 가톨릭 비판은 관련된 글을 읽어본 분은 그 신랄함에 놀라게 됩니다.

아, 인간! 역사 이래 소박한 민중은 무지한 탓으로 교활한 제사에 속아 얼마나 많은 허깨비에 속으며 가슴을 태우고 눈물을 흘려왔나! 잔인한 놈들, 가엾은 생명을 뵈지 않는 사슬에 매어두고 피를 빨아 먹으려는 놈들. 민중아, 너는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다. 네가 갈 곳이 있다면 네 본집이지. 네 정신적 본향이지, 아버지의 품이지. 지옥이 무슨 지옥이냐. 인간의 혼을 시들게 하고 비꼬이게 하는 이 고약한 제도를 들치우라! 귀족주의의 종교를 인간사회에서 몰아내라
!(16: 165)

가톨릭을 이렇게까지 비난하는 데는 근본적인 사상 대립이 있습니다. 민중과 민중이 아닌 이를 나누는 이분법이 개입될 수 있겠지만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대립으로 함 선생님 자신이 스스로 밝힌 것은 사회관, 인생관의 차이입니다. 함 선생님이 볼 때 가톨릭 사상은 “이 땅을 긍정하려는 이교주의”(16: 162)입니다. 다른 말로는 세속주의라고도 부릅니다. 함 선생님을 따르면 이 사회는 “전적으로 죄악적인 제도”이나 윤형중 신부는 “선한 것도 있다고 보는 태도”라는 것 입니다(16: 161). 그러나 함석헌 선생님은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여 “순령적(純靈的), 윤리적 종교를 가르친 것이 예수”이며 “조금도 인간적인 것을 긍정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으로 오는 은총을 받는 태도”에 서는 것이 복음이 말하는 태도인데, 가톨릭 교회는 이와 같은 “순히브리적인 것”을 이교적인 것과 혼합하여 된 교회라고 함 선생님은 보고 있습니다(16: 162-3, 16: 201 이하 참조).

그렇다면 길은 무엇입니까? 현재 앓고 있는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무엇입니까? 1956년글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는 죽은 듯 해 보이는 누에가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든지 교회당 밑에 깔려 있는 ‘생명의 씨앗’을 살려내자는 정도의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16: 119). 그러나 그 뒤에 이어 쓴 글에서는 구원은 “흙 속에 갇혀 고민하던 영혼이 그것을 박차고 나서 자유로워지는 일이고 ” “육적, 지적인 것의 완전한 부정”(16: 163)을 의미한다고 보고 ‘생명의 논리’를 배우자고 민중들에게 제안합니다(16: 165). 세속적인 것, 지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완전한 부정하고 혼의 자유, 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종교의 근본 의미로 보는 생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혼의 자유, 영의 자유는 부분적인 아니라 전체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함을 함 선생님은 강조합니다. 여기서도 철저한 정신주의를 만날 수 있습니다.

1971년에 쓴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글에서는 내면화를 대안으로 내세웁니다(16: 176). 내면화는 역사 발전과 생명 현상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역사는 이 앞으로도 다시금 더 내면화해야 한다. 더 승화, 더 영화(靈化)돼야 한다.”(16: 177)고 함 선생님은 말합니다. 그런데 내면화는 개인적인 영적 각성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맥락에서 함 선생님은 내면화와 그의 ‘전체’ 사상을 관련지웁니다. 역사적으로 전체만인 부족사회가 있었지만 개인의 자각이 생기면서 전체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 발생했고 역사는 다시 전체로 돌아갔으되, 개인이 “자유로운 인격으로 완전히 깨어 자진해서 협동체 의해서 되는 전체”(16: 178)에 지금 도달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이 옳은가 물론 논쟁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과 전체 사이에 변증법 관계가 형성되며, 이러한 전체를 지향하는 방식이 내면화의 방식이고 영화(靈化)의 방식이라는 사실입니다.(강영안, 내일 계속)

강영안 선생님은
강영안 교수님은 경남 삼천포에서 자라나셨다. 네덜란드(和蘭) 자유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주체는 죽었는가? 타인의 얼굴, 자연과 자유 사이, 철학은 무엇인가? 강영안 철학이야기] 등 주옥한 같은 철학 저서를 출판하여 한국 철학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윤실(기도교윤리실천워원회)의 총무와 대표를 역임하였다. 특히 기독교 서적으로는 사도신경강해에 해당하는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과 [강영안교수의 십계명 강의]를 출판하였는데 매우 권위 있고 박학다식한 기독교 지식과 논리가 용해되어 있습니다. 현재 학술연구재단의 역사철학단장으로 임명되어 대덕 한국연구원 역사철학 과장으로 파견 근무 중에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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