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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함석헌학회] 생영-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3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06 07:13]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명-환경의 통정성 존재론
나. 통전성: 함석헌의 세계관 원리

(나1) 하나: 유기체와 무기체의 통전성
대부분의 생명-환경론자는 생명-환경의 자체 목적적 가치를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지속성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함석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다른 모든 사물이 가치에서 뿐만 아니라 통전적으로 하나임을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있다. 함석헌은 인간과 모든 사물과의 통전성을 단계별로 제시 한다: 나의 몸과 나의 마음; 나와 다른 사람; 사람과 다른 사물의 3단계를 통한 통전성이다.

함석헌은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하나라는 점을 인격성을 들어 주장한다. “몸과 마음에는 떼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인격은 몸ㆍ 마음이 하나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 내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야 한다”(전집 2-313) 는 것이다. 인격은 이원론에서의 몸만으로 구성될 수 없고 마음만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원론의 몸은 기계일 뿐이고, 이원론의 마음은 실체적이긴 하지만 현재와 같은 인간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행위의 주체일 수 있는 요건을 만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몸과 마음의 인격론적 하나론은 설득력을 갖는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하나 됨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분명하다: “남 속에서 나를 보는 것, 나를 위해 믿는 신앙이 아니고 장차 오는 세대를 위해 믿는 믿음이 정말 나를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나는 내 안에 있지 않고 장차 오는 인류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나간 모든 인류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전집 9-318). 이를 위한 지지는 여러 가지 논변에 열려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언어 공동체성 논변이다. 나의 세계 경험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존하지만 이 언어는 지나간 인류에 의해 구성된 것이고 나의 세계 경험은 장차 오는 인류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이나 나의 존재는 이러한 인간 연대성으로부터 독립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 통전성은 사람과 다른 모든 사물과의 하나 됨이다: “씨알은 전체요 또 부분이다. 하나님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지만, 그저 큰 알 속에 작은 알이 있고 작은 알 속에 큰 알이 있는 것이니라. 아니다. 크고 작음이 없느니라. 그저 알일 따름이다. 알에는 안이 밖에 있고 밖이 안에 있다. 밖의 밖이 안이요, 안의 안이 밖이다. 전체, 밖을 그리면 O 이요, 하나, 속을 그리면 • 이다”(전집 14-341). 이 인용문은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부분 씨알은 개인이지만 전체 씨알은 전체 우주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 참이라면 하나님과 나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일 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삶이고 생명인 것이다. 구별이 없는 것이다. “유물도 유심도 아니요 삶이다, 하나다.” “그러나 이와 저는 서로 딴 것이 아니다. 이는 저의 안에 있는 것이요, 저의 꽃이요, 저는 이의 뿌리다. 이와 저는 하나를 이루는 삶 그것이다. 우주는 삶 그것이다.” (전집 9-33) 함석헌의 이러한 은유들은 다음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뜻과 생명의 통전성에 의해 보다 선명하게 들어 날 것으로 생각한다.



(나2) 씨알: 뜻과 생명의 통전성
함석헌의 씨알은 민중으로 이해된다. 그 일차적 의미가 그렇다. 그리고 다른 요소들도 개입된다. 생명이나 뜻의 요소가 그의 씨알 개념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일차적 상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생명과 뜻을 동치적 연결 고리로 하여 씨알을 통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씨알의 통전성 구조는 함석헌의 “씨알이 뜻을 체현 한다”라는 사상 명제로 표현된다. “씨알”은 단순한 곡식의 씨에 대한 외연적 지칭어가 아니라 “뜻의 체현자”로서의 주체성과 수행성을 더불어 지닌 자를 나타낸다. 씨알은 뜻의 체현자로서 뜻과 생명을 동치적으로 구비하여 있다. 뜻 없는 씨알을 생각할 수 없고 생명성 없는 씨알을 상상할 수 없다면, 씨알은 뜻과 생명의 동치적 값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 까닭은 이유 없이 존재 없고 존재 없이 이유 없기 때문이다.

뜻의 체현자로서의 씨알은 현실의 악순환에서 고난에 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고난은 뜻의 체현자로서의 불가피한 속성이 되고 만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씨알은 그 생명성이 연장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씨알의 생명성은 “자기희생에 의해서만 자기 연장”이 가능하고; “자기를 포기함에 의해서만 가능”(전집 9-45~47) 하다는 것이다. 씨알은 자기 희생을 본질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씨알의 삶은 어리석게 속는 것이고, 참으면서 불행하고(전집 8-80), “고난”(2003: 15, 94)에 처한 삶을 살게 된다.

씨알을 역사의 문맥에서 바라볼 때 씨알은 고난 속의 백성이고 민중이다. 그러나 씨알은 자연의 문맥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씨알은 뜻과 생명의 동치적 체현자로서 또한 자연의 모든 개체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씨알들은 서로 주고받고, 같이 울고 느낄 때 부분의 합보다 위대해지고 부분은 전체 안에, 전체는 부분 안에 존재”(전집 14: 332~336) 한다는 개념은 일차적으로는 민중에 적용되지만 이는 또한 확장하여 자연의 모든 개체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함석헌의 인심천심(人心天心)도 일차적으로 인간에 적용되는 해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명제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지향할 때 오히려 확장된 해석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인간만이 생명으로서 뜻을 체현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만이 그러한 체현의 현장이 아니라 온 우주가 생명으로 가득 찬 뜻의 체현자인 것이다.(정대현 내일 계속)

정대현선생님은
정대현 선생님은 고려대에서 <지식개념의 일상언어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심성내용의 신체성》, 《필연성의 문맥적 이해》, 《지식인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과 템플 대학교에서 수학하시고 이화여대에서 인식론, 언어 철학, 심리 철학을 강의하셨다. 이화여대에 재직하시면서는 이화여대 창립 120주년 기념식에서 이화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06) 선생님의 저서 중,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1985)은 문화공보부 추천도서에, 《심성내용의 신체성》(2001)은 한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으로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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