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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함석헌학회] 생명-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4

by anarchopists 2020. 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07 06:2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영-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나3) 고난: 역사적 통전성
함석헌의 역사관은 “하나”와 “씨알”이라는 주제의 세계관과 어우러져 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기체와 무기체의 통전성을 통하여 인간사만이 아니라 자연사를 포함하고 뜻과 생명의 동치성으로 인격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역사관에는 셋째의 요소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것은 “고난”이라는 주제이다.

함석헌의 고난 주제는 인간사와 자연사를 아우르는 통전사의 핵심 개념이다. 그러나 그의 고난 주제는 표면적 자명성에도 불구하고 난해하다. 그의 세계관의 다른 요소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절에서는 그의 고난 주제에 주목하여 어떻게 고난 개념이 역사적 통전성의 핵심 개념일 수 있는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함석헌의 고난 개념은 그의 “하나”와 “씨알”의 형이상학을 관통하여 설득력을 부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함석헌의 “하나”와 “씨알”의 형이상학은 정체적 존재론이지만, “고난”의 주제가 도입되면 그 생명성을 통하여 그의 형이상학은 역동적으로 된다. 함석헌은 자연의 진화론과 역사의 발전론을 함께 수용한다. “고통은 영원한 얼의 수정(受精) 작용, 민중이 영원한 얼로 수정이 되어야 미래의 역사가 있을 수”(전집 4-76) 있는 것이다. “고난은 죄를 씼는 것”(뜻역사 463) 처럼 “수난은 결코 약한 자의 일이 아니요 강한 자의 일”(뜻역사 482) 인 것이다. "내가 고난을 당함은 . . 내 죄 값으로도 아니요 나를 시련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주 자신에 그것이 필요하므로, 즐거움으로 그렇게 하고 싶으므로 하시는 것이다."(전집 11-157) 한국사가 고난사인 것은 한국사가 “세계의 짐”을 지고 “불의의 값을 지는 자”(뜻역사 478) 이기 때문이다. 세계인은 한국사 고난의 “하수구에 감사”(뜻역사 479)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을 통한 역사 발전의 궤적에서 보인 생명성에 도달하면 “나와 남이 없습니다. 하나”(전집 8-60; 2-68; 2-216) 인 것이다.

함석헌이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난 개념은 많은 학자들이 주목하여 보다 천착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이란 무엇인가? 고난은 어떤 경험이기에 그렇게 종요한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하나의 해석을 제안하고자 한다. 고난은 고통을 포함하지만 고통으로 대치될 수 없는 개념이다. 고통은 신체적이지만 고난은 정신적이다. 두 개념의 구성적 조건에서 그러한 대비를 제안하고자 한다. 타자가 야기 시킨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 고통 경험은 개인적 차원인 것이다. 고통 경험의 요소에 타자가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은 다르다. 고난 경험은 타자가 필연적으로 그 요소로 들어 가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1) 학교 선배 겅씨는 학교 후배 넝씨로부터 겅씨의 넝씨의 평가에 대한 불만으로 뺨을 맞았다.


겅씨의 뺨 맞은 신체적 고통은 물론 넝씨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뺨맞은 고통의 경험에는 넝씨의 인격성이나 관련된 명제성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필요가 없다. 지하철에서 옆 승객이 올린 손이 우연하게 부딛쳐도 같은 종류의 뺨 맞은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겅씨의 뺨맞은 고난은 다르다. 겅씨의 이 고난은 넝씨로 부터 분리할 수 없다. 넝씨에 대한 학문적 평가, 제도적 임무의 수행,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 등의 요소들이 인격적으로, 명제적으로 개입되어서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난의 경험인 것이다. 겅씨의 이러한 고난의 경험은 지하철 승객으로부터 야기된 뺨 맞음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종류의 그 사건에 본질적인 경험인 것이다. 고통 경험에는 명제적 내용이 없지만 고난 경험에는 명제적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고난 경험은 뺨맞은 고난 같은 우연적 경험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고난 경험은 보다 통전적이어야 한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바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한 개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 기회는 주변의 은혜라는 개념이다. 내가 나의 의지로 결심만 하여 수행하면 도덕적일 수 있다는 칸트적 관점에 반대하는 것이다. 독재자, 권위주의자. 가부장제도, 깡패, 강도 앞에서 나의 의지는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도덕성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아야 나는 도덕적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나일 수 있는 계기가 유지되어야 나는 나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난은 내가 나일 수 있는 계기가 타자에 의해 박탈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계기를 박탈하는 자는 독재자나 강도 같은 종류의 사람만이 아니다. 어떠한 이웃도 그러한 계기를 알게 모르게 박탈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비도덕적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없는 인간 조건은 편재적인 것이다. 이러한 비인간화의 구조에서 나는 그 비인간화가 배태하는 “하수구”가 되고 나는 그러한 비인간화 세력의 “짐을 지는 것”이다. 그 세력의 “죄의 짐”을 지는 것이다. 비인간화의 정도에 비례하여 나의 고난의 질과 양은 결정되는 것이다. 나의 인간됨을 거부하는 상대방의 비인간성은 나의 고난에 의하여 역으로 “구원”을 받는다. 나의 고난은 상대방의 사람됨의 잠정적 유예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는 나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

함석헌은 이러한 고난을 인간 역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씨알의 가능성을 가진 우주의 모든 종의 역사에 그러한 고난의 능력을 부여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고난 없이 생명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체 뿐만 아니라 비생명체의 개체 종들도 그의 통전적 사고에 의하면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유지와 진화를 겪는 것이다. 씨알의 생명성은 씨알의 “자기희생에 의해서만 자기 연장”이 이루어지고, “자기를 포기함에 의해서만 가능”(전집 9-45~47) 한 성질이다. 씨알은 자기희생을 본질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씨알의 삶은 어리석게 속는 것이고, 참으면서 불행하고(전집 8-80) 스스로 “죽어라 하고 자르”(전집 2-299)는 삶이다.


함석헌의 역사적 고난 개념은 함석헌의 “하나”의 형이상학을 조명한다. 함석헌은 역사란 사실 기록이 아니라 “사실이 가지는 뜻”이라면서 모든 사람은 서로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 생명”인 까닭에 “역사는 하나다”라는 형이상학적 비전을 제시한다.(뜻역사 41) “역사는 하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하여 자라는”(전집 9-14) 것이다. “역사는 하나다. . .역사적 기록은 뜻의 드러냄”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이러한 언명을 이해할 수 있는 구조는 바로 그의 고난의 개념이라고 믿는다. 그의 고난 개념에 의하면 인간이, 생명체가, 무기물이 모두 상대방의 짐을 지면서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위한 이러한 고난의 구조 속에서 모두는 “하나”라는 연대성 속에서 묶여져 있(뜻역사 37, 41)는 것이다.

함석헌의 역사적 고난 개념은 함석헌의 “씨알”의 형이상학도 설명한다. “씨알이 뜻을 체현 한다” 라는 명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고난이 우주 역사의 궁극적 범주라면 그러면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씨알은 그러한 궁극적 범주에 따라 삶을 사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늘 외에는 일 것이 없는 씨알만이 진정한 고난의 범주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자들이 고난을 겪지만 씨알의 개념적 한정성에 의해 씨알은 뜻의 배타적 체현자가 되는 것이다.(정대현, 내일 계속)

정대현선생님은
정대현 선생님은 고려대에서 <지식개념의 일상언어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심성내용의 신체성》, 《필연성의 문맥적 이해》, 《지식인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과 템플 대학교에서 수학하시고 이화여대에서 인식론, 언어 철학, 심리 철학을 강의하셨다. 이화여대에 재직하시면서는 이화여대 창립 120주년 기념식에서 이화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06) 선생님의 저서 중,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1985)은 문화공보부 추천도서에, 《심성내용의 신체성》(2001)은 한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으로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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