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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철학

생명-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5

by anarchopists 2020. 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명-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다) 성(誠) 개념: 통전적 세계관의 고리
함석헌의 깊은 통전성은 존재론적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해, “물질, 정신 할 것 없이 생명의 바닥을 흐르는 어떤 힘, 어떤 뜻”이라는 함석헌의 통전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함석헌의 의미와 생명의 동치적 연결성은 어떤 구조에서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말해진 그대로 두고, 숙고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구조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시도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절에서는 『중용』의 성(誠) 개념이 함석헌의 통전적 세계관의 존재론적 고리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하기 위해 정성성(誠) 개념의 구조에 주목하고자 한다.
'성(誠)'은 다음과 같은 항목의 여러 가지를 일상적으로 뜻 한다: 헌신, 전념, 진심, 진지성, 진실, 정직, 청렴, 강직, 온건, 절제, 적절성, 예절, 균형, 평정, 무편견, 객관성, 존경, 경외, 말조심, 참되게 하는. 성 개념은 표면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誠)' 글자의 어원적 요소를 고려할 때 그 다양성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자 '성(誠)'은 ‘언(言)’과 ‘성(成)’의 합성어이다. ‘언(言)’은 언어, 뜻, 원리, 논리, 본질, 목표 등을 나타내고, ‘성(成)’은 성취, 완성, 도래 등을 의미한다.

성(誠) 개념은 동북아 전통에서 『중용』을 통해 선명하게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성(誠) 개념의 인간적 관점의 일상적 의미에 주목하기도 하지만, 성(誠) 개념의 어원적 의미에 무게를 주는 것이 『중용』의 철학에 일관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요 명제 중 3개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이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20장(이기동 212));


성(誠)은 자기 자신을 이루는 것이고 도(道)는 자기를 인도하는 것이다. 성(誠)은 물(物)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성(誠)하지 아니하면 물(物)이 없다.
(誠者 自成也, 而道 自道也 誠者 物之終始, 不誠 無物, 25장(이기동 224));

그러므로 지극히 성실한 것은 쉼이 없다. . . 이와 같은 것은 나타내지 아니해도 빛나고 움직이지 않아도 변하며 작위 함이 없어도 이루어진다.
(故 至誠 無息, . . 如此者 不見而章 不動而變 無爲而成, 26장(이기동 228)).

이러한 명제들로부터 성(誠) 개념을 현대어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통전성(integration)” 이다. 통전성 관점의 시각으로부터 성(誠) 개념을 몇 개의 명제로 구조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1) 한 사물의 성(誠)은 그 사물이 다른 모든 사물들과 상호작용하는 문맥에서 그 사물의 본래적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이다.

이 문맥에서 통전성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는 3인칭 관점으로부터의 풀이이다. 둘이나 그 이상의 요소들을 일관되게 종합 또는 조화하는 행위이다. 둘째는 1인칭 관점으로부터의 해석이다. 타자 체계에 들어있는 요소들을 자아 체계로 도입-조정하고 자아 체계에 들어있는 요소들을 타자 체계에 흡입-흡수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통전성에 대한 3인칭 해석은 절대주의적 질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나 1인칭 해석은 다원적이면서 상호적이고 공동 담론적인 구조를 지닌 다는 의미에서 선호할 만하다. 그렇다면 “통합자(integrator)”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편재적이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그 주변의 사물들과 정보 교환을 하는 통합자가 된다. 데카르트 전통은 이러한 통합자를 “mind”라 불러 그 기능을 인간에게 국한하였지만, 자사(子思)는 “성즉리(性卽理)”라 생각하여 통합하는 어떤 개체도 “마음”의 능력을 갖는 것으로 『중용』에서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표현할 수 있는 성(誠) 개념의 또 하나의 요소이다.

(다2) “마음”이란 인간 같은 단일 종류의 사물이 아니라 정보처리를 하는 다양한 복합성의 모든 사물의 능력을 지칭한다.

데카르트와 자사 전통의 차이는 분명하다. 데카르트는 사유와 물질의 구분을 논리적으로 구성한다고 간주하였다. 인간은 몸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 없이는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은 인간에 우연적이지만 생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다른 사물에도 적용하여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동물을 포함하여 다른 사물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원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양상논리는 결점이 있다. 체화된 인간은 이 현실세계에서 생각하지만, 몸이 없는 다른 세계에서도 생각한다면, 그 가능세계에서 몸이 없는 사람들을 구별하는 표준은 무엇일 것인가? 자사는 세계에 대한 통전적 관점을 유지하여 인간과 모든 다른 사물들과의 지속성 가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3) 성(誠)이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다른 사물의 마음의 능력이다.

지속성 가설은 지지될 수 있다. 진화론이 종의 기원을 설명한다면 지속성 가설도 그 설명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몸의 진화만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진화도 그 진화론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역사는 다른 사물의 역사와 지속적인 것이다.

(다4) 만일 진화가 적자생존의 종의 역사를 나타낸다면, 그러면 역사는 지능과 정의의 생활양식의 진화도 표현한다.

진화론은 낙관전 이론으로 보인다. 진화과정의 생존자의 관점으로부터 구성된 이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화과정에서는 갈등과 고통이 물론 있었다. 그러나 진화과정의 총체적 결과는 생존자들이 더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태를 나타낸다. 자연을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본다면 결과적 조화, 우주적 조화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성(誠)의 관념은 이러한 내재적 낙관주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5) 한 사물의 성(誠)이란 그 사물이 특정한 시간의 주변 사물들과의 관계 문맥에서 최선을 실현한다.



성(誠) 관념은 갈등 요소를 배제하지 않는다. 성관점의 가치는 필요하다면 오히려 날카로운 불평이나 거창한 지진을 요구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종국적 조화나 평화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전성에 대한 3인칭 해석과 1인칭 해석의 차이에 대해 더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론은 온전한 통전성을 수용할 수 없다. 이원론자가 통전성을 수용한다고 하면 그것은 3인칭 통전성의 어떤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부분적 통전성일 것이다. 몸과 마음의 통전이 아니라 마음의 여러 현상들 중에서의 통전이나 물질 세계에서의 여러 현상들의 통전일 것이다. 부분적 통전성은 틀리지 않지만 3인칭 이라는 점에서 온전하지 않다. 통전성 개념을 사용하는 학자들의 글들에서도 이원론과 독립하여 이러한 부분적 통전성이 언급된다.

대부분의 유기성 존재론은 통전성을 수용한다고 믿는다. 유기성 존재론이 통전성 개념의 이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개념의 구조와 맞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통전성은 3인칭적이다. 유기성 존재론이 전제하는 절대주의적 유일 체계의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통전적 세계관은 1인칭적이다. 함석헌은 유일 체계와 다원 체계의 구분에 대해 논의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상의 여러 체계에 대한 유연성과 개방성을 통하여 어떤 형식의 다원주의를 전제한다. 그가 통전성 개념을 제시하였을 때 그는 1인칭적 해석을 시사하면서 사용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의 고난의 개념 또한 이러한 1인칭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식물이나 바위가 어떻게 1인칭적 해석자가 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이원론 전통 안에서 묻는 것과 통전성 구조 안에서 묻는 것의 차이를 명료화하는 데서 대답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원론 전통 안에서는 식물이나 바위가 1인칭적 해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바위가 정성성의 능력을 갖는다면 그리하여 마음의 주체자가 된다면 정성성의 존재론 안에서 바위는 주변 환경과 더불어 정보의 상호적 처리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바위는 주변의 빛, 습도, 온도, 바람, 기압 등의 조건에 반응하여 자신의 유지와 또한 그 주변의 환경의 유지를 위한 적응, 변신의 정보처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바위와 그 주변 환경은 다원적 체계의 담론 구조에서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정대현, 내일 계속)

정대현선생님은
정대현 선생님은 고려대에서 <지식개념의 일상언어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심성내용의 신체성》, 《필연성의 문맥적 이해》, 《지식인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과 템플 대학교에서 수학하시고 이화여대에서 인식론, 언어 철학, 심리 철학을 강의하셨다. 이화여대에 재직하시면서는 이화여대 창립 120주년 기념식에서 이화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06) 선생님의 저서 중,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1985)은 문화공보부 추천도서에, 《심성내용의 신체성》(2001)은 한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으로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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