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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환경

[함석헌학회] 생명-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by anarchopists 2020. 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5/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부터는 정대현 교수님의 글을
한 주에 거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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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환경의 통전성 존재론
-함석헌 사상의 함축

1. 문제제기
지난 겨울은 추웠지만 “춥다”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온난화로 인한 북극 빙판의 파괴로 북극곰의 새끼를 위한 먹이 사냥이 어려워졌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인간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가능하리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환경 조건은 모든 생명에 필연적이라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분명해지고, 생명과 환경의 가치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 함석헌의 씨알 사상이 또 하나의 빛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과 환경은 한동안 분리적인 주제로 간주되어 왔다. 생명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미미했을 때도 중요한 주제였다. 생명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인간 의식에서 보이는 “실체 주체성(subject)” 이나 그 주체자 성질을 부여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주체성은 행위의 결정적 주체를 함의하는 구조에서 인격성의 담지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생명은 환경과 독립하여 그 자체로 소중한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생명과 환경은 더 이상 분리된 주제로 남아 있기가 어렵게 되었다. “모든 생명에 ”행위 주체성(agency)“을 허용” 하는 것이 과거처럼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person)”이라는 이름으로 행위 주체성을 인간에게만 제한하는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행위 주체성의 사다리를 인간으로부터 동물, 식물에로 내려가고자 할 때 지속성과 단절성을 어느 단계에 설정하는가에 따라 생명-환경에 대한 입론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행위 주체성 사다리 확장”을 수용하는 어떤 생명-환경론도 일종의 유기주의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환경은 이제 동일 주제의 다른 양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다리 확장의 범위에 따라 유기주의는 차별화될 것이다. 이러한 사다리에서 함석헌은 가장 아래 단계에 까지 그 사다리를 밀어 내린다.

싱거는 행위 주체성 사다리를 동물에 까지 확장한다. 인종주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종족주의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 까지에서 끝난다. 동물의 생명체로서의 본질적 가치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의문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싱거는 고통과 쾌감의 능력을 가진 생명체만을 도덕적 가치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도덕적 행위 또는 지각(sentient)이라는 의식 또는 데카르트적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 이원론을 전제하고서만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김지하의 시(侍)는 생명에 대한 그러한 이원론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김지하는 해월 선생의 시(侍)를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으며 한 세상 사람이 각각 우주의 옮길 수 없는 전체 유출을 제 나름대로 알아서 실현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물질, 생명, 이성, 영성, 신성 또는 존재와 무등을 고립적 개별태 또는 대립적 존재로 파악하는 일체의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김지하의 생명관은 생명이 그 자체로 신성하고 외경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슈바이처의 종교적이고 영적인 관점과 상통한다.

장회익과 내스의 생명관은 보다 철학적이다. 장회익은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가장 포괄적인 생명의 체계인 온생명을 ‘나’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내스는 모든 생명체는 타자에게 유용한가와 독립하여 그 자체로 가치 있을 뿐 아니라 나는 나의 몸과 의식이상으로 모든 것을 포함하는 대아(大我, Self in the capital S) 라는 “심층 생태론(Deep Ecology)”을 제안한다.

테일러는 생명성을 생명체에 한정하는 관점으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간다. 테일러는 “의식이 있든 없든 모든 존재는 자기 보존과 행복을 향하여 움직이는 목적 지향적 활동의 단일화된 체계라는 점에서 동등한 목적론적 삶의 중심”이라 한다. 그러나 테일러에게는 남아있는 문제가 있다. 의식이 없는 존재가 어떻게 그러한 삶의 중심일 수 있는가에 대한 치밀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 물음의 변형은 다른 생명-환경론자에게도 적용된다. 생명을 생명체에 한정하는 경우에도, 예를 들어, 내스는 어떻게 개미나 굴이 관심의 주체가 되는가에 대한 조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다르다. 함석헌에게, 씨알은 물질 속에 와 있는 정신이고 유한 속에 와 있는 무한이다. 시간 속에 와 있는 영원인 것이다. 함석헌은 생명성을 유기체와 무기체 모두에 적용하여 “하나”인 것을 제안하고, 이들 씨알은 뜻과 생명의 주체로서 고난을 통한 역사와의 합일을 그려낸다.
이 글은 함석헌의 씨알 사상이 그려내는 세계관의 함축을 추적하여 그의 생명-환경 존재론의 구체적 윤곽을 들어내고자 한다.(정대현, 내일 계속)

정대현선생님은
정대현 선생님은 고려대에서 <지식개념의 일상언어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심성내용의 신체성》, 《필연성의 문맥적 이해》, 《지식인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과 템플 대학교에서 수학하시고 이화여대에서 인식론, 언어 철학, 심리 철학을 강의하셨다. 이화여대에 재직하시면서는 이화여대 창립 120주년 기념식에서 이화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06) 선생님의 저서 중, 《한국어와 철학적 분석》(1985)은 문화공보부 추천도서에, 《심성내용의 신체성》(2001)은 한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으로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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